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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죽을 힘을 다해 산다

이기희

이기희

있다가 없어지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처음부터 없이 살면 힘든 지 모른다. 사랑도 불태우다 꺼지면 재가 되지만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은 그냥 그렇다. 원래 내 것이 아닌 것들은 남의 것이다. 내 손에 없다고 한탄 해도 소용없다.
 
세상에 이런 일이!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여파로 비와 강풍이 몰아쳐 16시간 지속되는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먹거리가 쌓여 있는 냉장고와 냉동실은 음식이 상할까 봐 문 안 열기 작전으로 버티며 하루 종일 라면 끓여먹고 연명했다.
 
허리케인 ‘헐린’이 미국 남부 멕시코만 해안 지역을 강타하면서 곳곳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허리케인(Hurricane)은 대서양 서부•카리브 해•멕시코 만이나 북태평양 동부에서 발생하는 강한 열대 저기압으로 태풍처럼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한다. 이번에 미국을 강타한 헐린의 경우 시속 241㎞ 강풍을 동반해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60만여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다.
 
허리케인이 미 중서부를 강타할 확률이 낮아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내다 혼 줄이 났다. 한풀 꺾이자 ‘산 사람은 먹어야 산다’며 김치찌게를 끓여 주린 배를 채운다.
 
정전(Power outage)이 발생하면 적막강산!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인터넷이 끊기고 텔레비전 유튜브 불통으로 모든 것이 깜깜해진다. 손전등 찿아 화장실과 긴급 상황 발생할 곳에 촛불을 배치했다. 반나절은 인내심 테스트 하며 버텼는데 해가 기울자 불안 초조 공포가 밀려온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삼거리 동네에 전기가 들어온 건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이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대나무 평상에 누워 별을 헤다가 옥이 언니가 꾸며낸 이야기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체 리듬에 온 마을 사람들이 충실했다.
 
폭우가 지나가길 학수고대하다 지쳐서 각박할 때 용기를 주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읽기로 한다. 딸 졸업 선물로 간 파리여행 때 마레(Marais) 지구에 있는 빅토르 위고의 집을 방문했다. 사랑, 용기, 희생, 인간 본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이며 서양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 평가받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이 곳에서 집필했다.
 
1851년 12월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 1808~1873)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정을 선언하자, 반정부 인사로 찍힌 위고는 벨기에로 피신했다. 이 망명기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깊이 있는 때였고 파리에 돌아온 후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시기에 집필됐다.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헌신과 사랑을 담은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은 200여 나라에서 출간됐다. 불멸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시대를 정의하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소설은 역사는 무엇이며, 누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누구에게 일어나며, 개인은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는 잠자네. 비록 그의 운명이 기구했지만 그는 살았네. 자기의 천사가 없어지자 그는 죽었네. 올 일은 오고야 말았네. 마치 낮이 지나 밤이 오듯이.’ 비와 먼지로 퇴색한 주인공 장발장의 묘비에 적힌 4행시로 레 미제라블은 끝을 맺는다.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낡은 전등의 가는 철사줄이 아니라 ‘태양으로 연결된 빛’이라는 생각을 한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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