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손질 필요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
여성들이 일과 양육·가사노동의 이중부담을 진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 여성은 교육 기회 확대에 따른 학력 신장과 급격한 산업화로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법과 제도가 미비해 일과 가정의 양립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많은 맞벌이 여성은 아직도 매일같이 ‘육아 전쟁’을 치른다. 양육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미루거나 둘째 아이를 갖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소득 직장여성들은 출산과 양육에 따른 경력 단절을 특히 우려한다. 이들은 결혼의 기회비용이 행복 편익보다 높다고 생각해 아예 비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통계청이 2023년 발표한 ‘저출산과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자. 2019년 기준으로 맞벌이 부부의 하루 무급 노동(가사노동·육아 등)시간이 남편 54분, 아내 3시간 7분이었다. 남녀가 무려 2시간 13분이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맞벌이 가구의 하루 유급 노동시간은 남편이 5시간 50분, 아내는 4시간 37분이었다. 유급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아내가 남편보다 하루에 1시간 정도 더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맞벌이 여성들에게는 집안일의 양과 시간이 이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이들 통계에서 여성의 가족생활 전반에 관한 계획과 정보수집 등 ‘기획 노동 시간’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자녀의 사교육 책임을 아내에게 지우는 경우가 많아 아내는 좋은 유치원·학원 찾기, 과외교사 정보 수집 등 학업 관리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실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중소업체에 근무하는 여성이다. 그들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도 어려운 데다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가사도우미에게는 시급 1만5000원(4주 기준 283만원)을 지불해야 하니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문제는 이번 시범 사업은 법무부 인증기관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고용하는 형태로 진행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한국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어렵다. 이들이 받은 비전문취업비자(E9) 대신 전문직종비자(E7)를 활용해 각 가정과 직접 계약하는 ‘가사 사용인’ 형식을 취한다면 ILO 협약에 위배되지 않고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비자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조치가 없으면 주로 중상층 이상 가정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번 시범사업 가정이 서울 강남권에 많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시범 사업 신청 동기도 보육과 자녀 영어교육에 방점이 있다고 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 도입이 출생률 증가에 도움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장·전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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