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들과 신뢰부터 회복해야 [김성탁의 시선]
요양병원엔 주로 고령 환자나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머문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중한 증상을 보이면 전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일반적이다. 의료 기술을 익혀야 할 젊은 의사들이 요양병원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이후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현주소를 거론한 것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핵심 키를 이들이 쥐고 있어서다. 정부가 여러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한 대학병원의 경우 전체 의료진 900여명 중 전공의가 450명이나 됐다. 의대 교수 등이 당직을 서지만 전공의 의존도가 너무 높아 공백을 메우기 힘들다.
전공의 이탈을 두고 의술을 펼치겠다는 이들이 어떻게 환자 곁을 떠나느냐는 비판이 거센 것도 사실이다. 의사 수가 늘면 좋은 측면도 있을 건데, 밥그릇 지키려고 그러느냐는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그들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공의 비율이 서구 대학병원은 10% 정도인데 국내 빅5 병원은 50%가 넘었다. 젊은이들의 시간과 노력을 착취해야 버티는 구조였다. 필수과 의료진은 이런 구조가 지속할 수 없으니 바뀔 것이라 기대했으나 역대 정부 모두 눈을 감았다. 현 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 제시에 앞서 증원부터 내놓는 우를 범했다.
전공의 복귀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의대생들은 수업 거부에 이어 휴학계를 낸 상태다. 전공의들이 정체돼 있으면 위가 막혀 의대생들이 올라갈 곳이 없다. 의대는 선후배 위계가 강하고, 나중에 전공과를 정할 때 성적뿐 아니라 선배들의 평가가 반영된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대응이 한 몸일 수밖에 없다. 내년에 증원된 의대생이 입학하겠지만, 이런 구조 때문에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업거부 인원만 늘어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위주로 바꾸겠다지만 전문의는 전공의가 있어야 배출된다. 기존 의사 중 뽑으면 되지 않느냐 싶겠지만 급여가 높아 병원이 감당할 수 없고, 은퇴한 개업의가 지원할지 모르나 대학병원에서 원하는 대상은 드물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우선 증원 관련 조치가 필요하다. 의료계가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를 요구했지만 수시모집까지 진행돼 현실성이 떨어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2026학년도 증원을 원점 재논의 또는 유예하는 안을 정부로서는 검토해봄 직하다. 한 의대 교수는 “대통령실이 의료계가 합리적 안을 제시하면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지만 전공의들은 뒤통수 맞지 않을까 걱정한다. 의료계가 0명을 주장하진 않을 테니 신뢰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대형병원 전공의 대표들을 소환하는 조치 등을 멈추고, 개원의들의 모임인 의사협회보다 전공의들과의 대화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젊은 의사들의 현역 입영 경향까지 뚜렷해 전문의도, 공보의도, 군의관도 부족할 판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에게 ‘낙수과’라는 인식을 갖게 해버린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과 함께 성실한 의료 행위에 따라붙는 소송 위험을 줄여주는 법안 마련도 제시하면 좋겠다. 필수과 의사가 일할 환경을 만든다면 전화위복이 돼 미래에 심장·흉부외과 등이 인기과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전공의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라는 입장을 처음 밝힌 것은 다행이다. 국민연금 개혁 등에서도 그렇듯 젊은이들의 노력에 과도하게 의지해온 구조를 개선할 대안을 잘 찾아야 한다.
김성탁(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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