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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숨기기까지…재혼했다고 유족연금 박탈, 한해 1000명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웨딩타운. 뉴스1
50대 여성 A씨는 1997년 남편이 숨지면서 매달 약 30만원의 유족연금을 받았다. 그러다 2009년 다른 남성과 동거를 시작했다. 전 남편의 유족연금은 계속 받았다. 국민연금공단이 이들의 관계가 동거인이 아니라 사실혼이라고 의심해 조사에 나섰지만 A씨는 "동거인"이라고 맞섰다. 현행 국민연금법에는 유족연금을 받다가 재혼(사실혼 포함)하면 연금이 소멸(박탈)하게 돼 있다.
그러던 중 '동거인 남성'이 2019년 숨졌고, 그 이후 법적 분쟁이 생겼다. 재판부가 동거가 아닌 사실혼이라고 판결했다. 사실혼 시작 시점을 2009년으로 적시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를 근거로 A씨가 2009~2019년(11년 5개월) 받은 유족연금 4403만원 환수에 착수했다. 3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3.1%)이 가산됐다. A씨는 사실혼 남편 사망으로 '2차 유족연금'이 생겼는데, 연금공단은 지금까지 1758만원을 환수했다.
사별 후 재혼 막는 유족연금
4년 반 4920명 연금 소멸
분할연금은 재혼해도 수령
"소득 낮으면 계속 지급을"

22명 재혼 사실 숨기다 적발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A씨처럼 사별 후 재혼(사실혼) 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유족연금을 받다가 적발된 사람이 2020년~올해 6월 22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에 사실대로 신고해 유족연금이 소멸한 사람은 4920명이다. 매년 1000명 넘게 나온다.
차준홍 기자
사별 후 재혼할 때 유족연금을 박탈하는 이유는 이렇다. 이지현 국민연금공단 연금사후관리부장은 "(사망한) 배우자의 유족연금을 받다가 재혼하면 전 배우자의 유족이라는 신분 관계가 단절된다. 재혼하면 새롭게 상호 부양 의무자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재혼하면 경제 수준이 나아진다는 가정이 깔렸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텐데, 이런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사실 유족연금은 그리 크지 않다. 5월 기준 1인당 월평균 35만 8262원이다. 국민연금 1인당 평균액(65만원)의 55%에 불과하다. 기초연금(33만 4810원)보다 약간 많다. 유족연금은 국민연금 수급자나 10년 이상 가입자(가입자였던 사람) 등이 숨지면 배우자·자녀·부모 등에게 지급한다. 대부분 배우자에게 간다. 사망자가 받던(받을) 연금의 40~60%가 나온다. 올해 5월 기준 약 100만 9848명이 받고 있다. 여자가 90.9%여서 '여성 연금'으로 불린다. 이들이 재혼하면 언제든지 소멸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의 퇴직 유족급여 수급자 7만 8511명(2022년)도 마찬가지다. 사학연금·군인연금도 그렇다. 사별 후 재혼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이다. 지난해 3498건이다. 유족연금 소멸을 우려해 재혼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혼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A씨 같은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차준홍 기자

이혼·사별에 따라 연금 갈라져
이혼한 후 전 배우자의 연금을 나누는 분할연금은 다르다. 재혼하더라도 연금이 소멸하지 않는다. 종전에는 소멸했으나 2007년 법률이 개정되면서 계속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배우자와 이별하는 원인이 사망이냐 이혼이냐에 따라 연금의 향방이 달라진다. 보건복지부와 연금공단은 이렇게 설명한다. 유족연금은 남은 자의 생계를 돕는 사회보장 성격이 강하고, 분할연금은 연금 재산을 나누는 재산권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유족연금 소멸을 없애려는 시도가 없던 게 아니다. 2018년 8월 금태섭 전 의원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적이 있다. 금 전 의원은 당시 "재혼 시 유족연금 수급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혼인과 비(非)혼인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여 사실상 혼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혼한 배우자는 재혼해도 종전 기여분을 인정받아 분할연금을 계속 받는다. 하지만 사별한 배우자가 재혼한 경우 연금 형성에 기여한 것에 대한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분할연금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 의원은 유족연금 소멸을 없앨 경우 5년 동안 484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재정 지출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뜻이다.
차준홍 기자

연금 형성에 기여한 점 무시
헌법재판소에서도 치열하게 맞붙었다. 2022년 8월 헌재 전원재판부는 유족연금 소멸 조항의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5대 4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재혼해서 새로운 부양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재혼 상대방 배우자를 통한 사적 부양이 가능해져 더는 사망한 공무원의 유족으로서의 보호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4명의 재판관은 "사별 전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구성해 연금 형성에 기여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유족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족연금 수급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은 합리적 입법으로 볼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또 재혼 후 부양받을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생활 보장의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혼 배우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김선민 의원실의 박상현 보좌관은 "이혼이나 사별이나 생계 부양자가 없어지는 점은 같다. 유족연금 액수가 얼마 되지 않는 마당에 이렇게 박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당사자의 월 소득을 따져 전체 가입자 3년 치 평균 소득(A값, 올해 299만원) 이하이면 소멸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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