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누구인가? <Ⅰ>
따라서 공통의 국적 혹은 시민권은 본질상 위계와 차별의 철폐가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다. 안전과 보호, 권리와 의무, 자유와 평등을 필수 요건으로 삼는 근대 시민권이 신민·거민(居民)·유민(留民·流民)·족민(族民)·영주민·주민이 아닌 시민·국민(됨)의 자격과 요건인 까닭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다. 만약 한국인이든 누구든 일본 국가의 국적과 시민권을 가졌다면 당연히 같은 시민이나 국민 자격을 부여받아야 한다.
당시 한국인들은 국적의 동일성에 근거하여 일본인, 일본 국민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누렸는가
한국인은 제국의 신민이었지만, 일본인과 동일하게 일본 헌법 및 국적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은 전혀 아니었다. 당시 일본 국적 사항과 국적법(법률 제66호)은 일본 헌법의 위임법률(대일본제국헌법 제18조)이었다. 언필칭 입헌국가·법치국가였음에도 일본은 한국인에 관한 한 헌법과 법률을 적용하는 대신 관습과 조리에 근거한 국적 취득으로 간주하였을 뿐이다.
호적도 구별되었다. 일본인(내지인)은 내지 호적에 등재된 반면, 합병 이후 조선호적령(총독부령 제154호)에 따라 조선인은 조선 호적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조선인은 내지(일본) 호적으로 전적(轉籍)할 수 없었고, 일본인도 조선 호적으로 전적할 수 없었다. 혼인과 입양 등을 통한 전적만 가능하였다. ‘국적’법은 적용하지 않고 ‘호적’령은 따로 만들 만큼 두 시민권이 엄격히 구분되었던 것이다.
권리와 의무는 국적과 더욱 거리가 멀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거주자는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헌법과 국적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기본권 박탈이었다. 한국은 식민지와 강점지에 적용되는 참정권의 두 유형, 즉 ‘식민본국 대표 구성을 위한 선거권 및 피선거권 부여’나 ‘식민·강점 지역 자체 대표 구성을 위한 참여권 부여’에 모두 해당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참정과 자치를 향한 청원은 거부되었다. 당시 열혈 친일세력들이 완전 동화(同化)를 위해 일본국민 대우를 해달라고 청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인들은 국권은 망실되고 일본의 헌법과 국적법도 적용되지 않는, 권리도 의무도 없는 이른바 ‘비국민적 국민’이었다. 이론적으로 한국인은 ‘국권 없는 국민’이자 ‘주권 없는 국민’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일본 강점과 한일관계의 이런 특수성이 아니다. 일본의 한국 강점과 “한국인은 일본 국적·국민이었다”는 주장이야말로 ‘상식’과 ‘국제법’과 ‘국제규범’의 완전 위반이다. 상식과 국제법에 비추어 일본의 한국 강점은 원천 무효다. 시효의 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점이 훨씬 더 중요한 본질을 구성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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