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월급 얼마 줄건데요?" 에이스 조폭 당황시킨 그들
“젊은 사람들이 합법적인 일을 해야지, 왜 이런 일에 끼어든 거예요?”
“그냥 돈 좀 벌려다 보니….”
동생뻘 되는 모습을 한 조폭들의 구구절절한 개인사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동안 조사한 범죄 사실에 대한 질문에 이들은 풀 죽은 목소리로 “예”라는 대답만 이어갔다.
몸집도 좋지 않은 이들이 조폭에서 맡은 일은 이용자 모집, 프로그램 관리, 수익금 정산, 현금 인출이었다. 요즘 조폭계에선 몸이 아닌 머리 쓰는 조직원이 필요하다. A 경감은 “과거 갈취 등 고전적 조폭과 달린 온라인 도박 등 지능형 사업에 뛰어든 21세기형 조폭계에는 인터넷에 능숙한 20대 MZ 세대가 대거 가담하는 추세”라며 “조직원 선발도 SNS를 통해 이뤄져 MZ세대 유입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폭으로 유입되는 MZ세대…10~20대 38%
지난해 검거한 조폭 범죄 피의자 수는 3231명으로 지난 10년 사이의 최고치였다. 이 중 20대는 1030명에 32%로 가장 많았다. 조폭(검거 기준)은 2018년까지 30대가 가장 많았는데 이듬해부터는 20대가 30대를 앞질렀다. 10대 조폭의 비율도 2013년 2%(52명)에서 2022년 6.5%(210명)로 상향세다. 10~20대 조폭을 합하면 전체의 38%를 웃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관리 대상 조폭 중 10~20대 비율과 검거된 조폭의 10~20대 연령 비율이 비슷하다”며 “이는 소수의 젊은 조폭이 주로 검거되는 게 아니라 10~20대 잠재적 범죄자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취재하며 만난 전‧현직 조폭과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덩치가 크고 떼 지어 다니며 패싸움이나 하고 난동을 부리던 전통적 의미의 조폭 시대는 쇠퇴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의 일진급 학생을 관리하며 포섭하는 영화 속 관행이 일부 남아 있지만, 조폭 가입을 위한 신체적 문턱은 낮아졌다.
조폭의 주업이 폭력‧갈취‧협박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등 ‘고수익 저위험’ 사업으로 전환한 탓이 크다. 실제 업소 갈취는 지난해 24건으로 2013년(146건)에 비해 6분의 1 토막으로 떨어졌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요즘 조폭들은 인터넷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행세를 한다. 그러다 보니 조폭에 대한 젊은층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거부감도 약해지고 있다. 조폭이 불특정 다수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MZ, 조폭 가입 물으며 “월급 얼마예요”
첫째, 의리보다 내가 우선이다. “가족적 의리가 약하다. 조폭 세계의 가족보다 돈을 우선한다.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기성 조폭은 ‘형님·아우님 주변’을 보호했다면, 최근 젊은 조폭들은 ‘자신’을 보호한다.”
둘째, 돈 벌어야 형님 소리 듣는다. “과거처럼 초년병 조폭들의 합숙 문화가 현저히 줄었다. 돈은 조폭 가족 사업이 아니라 개개인이 알아서 번다. 돈 못 버는 형들은 ‘형님’ 취급받기 어렵다. ‘돈 있는 형님’을 좇아 ‘라인 갈아타기’가 흔해졌다.”
서울청 강력수사대에서 조폭을 수사했던 윤철희 구미서 수사2과장은 “최근 20대 조폭은 자기를 소개할 때 ‘OO파’가 아니라 ‘OO형님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게 아니라 돈 잘 버는 형님 아래에 있다고 소개한다”고 했다. 부산 사하구의 폭력조직원이었던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요새 20대 조폭들은 조직에 들어올 때부터 ‘월급 얼마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본다"고 전했다.
10~20대 조폭…“전과 쌓이는 악순환 가능성”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의 지적이다.
" 젊은이들이 한번 빠져든 조폭 생활에 맛을 들인 채 전과가 계속 쌓이다 보면 범죄의 늪에서 평생을 허우적대야 한다. 조폭 세계를 강력하게 분쇄함으로써 MZ세대가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높은 진입 장벽을 세워야 한다. "
석경민.최선욱.양수민(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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