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면 안 보이는 의사들…응급실은 밤이 더 두렵다 [폭풍전야 응급실]
같은 날 오후 경기 수원시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 응급실. 입구에는 ‘한시적 축소 운영안내’가 붙어있다. 지난달 전문의 3명이 사직하면서 5일 축소 진료에 들어간다.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16세 이상 환자를 받지 않는다.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최중증 환자만 받는다. 이미 소아응급실은 지난 6월부터 수ㆍ토요일 최중증 환자만 진료한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지 않는 선에서 의료진의 업무 강도를 줄이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14명의 응급 전문의가 근무하다 3명이 그만뒀다. 최근 4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병원이 설득해 당분간 사직을 보류시켰다. 한 환자 보호자는 “남편이 암 환자라 간혹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면 응급실을 찾는다”라며 “하루만 환자 안 받는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말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충북 충주의 건국대 충주병원은 지난 1일부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운영한다. 응급실 전문의 7명이 전원 사직서를 냈는데 그나마 2명이 마음을 돌린 덕분에 완전 휴진은 면했다. 응급실 환자도 대폭 줄었다. 정상 진료하던 지난달 26일 기준 이 병원 응급실을 들른 환자(119 이송 환자 포함)는 80여 명이었는데 3일 오후 5시까지 24명에 불과했다. 응급실에서 만난 김모(45)씨는 “큰 사고는 밤에 많이 일어나는데 야간 진료를 중단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응급실 붕괴 위기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현장은 태풍 전야 같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권역ㆍ지역 응급의료센터 180곳의 의사는 지난해 12월 대비 73.4% 수준으로 줄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12월 1504명에서 올해 초 전문의가 새로 배출되면서 지난 7월 1598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전공의 500여명이 뺘져나갔고 남은 의사들이 당직 횟수를 늘려가며 버텼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한계상황에 봉착했고 지난달 사직ㆍ휴직 등의 이탈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지난달 26일 기준 1587명으로 줄었다. 아직 둑이 무너지지 않았지만 구멍이 조금씩 커지는 양상이다.
응급 환자가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도 늘어나는 추세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2023~2024 병원 거부로 인한 환자 재이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응급실 재이송 사례는 4227건, 이 중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다른 응급실을 찾아야 했던 사례는 1771건이었다. 올해 1월~지난달 20일 응급실 재이송이 3597건, 전문의가 없어서 재이송된 경우는 1433건에 달한다. 김 의원은 “지금 사태로 봐서는 응급실 뺑뺑이가 예년보다 20~30%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B 교수는 “병원 내부 상황이 비정상적이다 보니 평소라면 수용할 만한 환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에스더.김민주.김정석.황희규.박진호.최종권(etoile@joongang.co.kr)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