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퀸 정유정의 첫 SF, "착한 소설은 앞으로도 안 쓸 것"
작가 정유정(58)은 2007년 데뷔부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권의 산문집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소설, 그것도 장편만을 써왔다. 영상·음악·소설 할 것 없이 모든 콘텐트가 짧아지는 시대에도 500쪽 넘는 무거운 장편을 꾸준히 냈고, 그 장편을 200만부 이상 팔았다.그에게는 '페이지 터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예측 불허의 인물들이 힘 겨루기하는 가운데, 사건에 사건이 거듭되고 이야기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결말을 향해 달린다.
Q : SF는 처음이다.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나.
A :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서 영향을 받았다. 하라리는 이 책에서 데이터가 곧 종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간조차도 무수한 데이터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통째로 온라인에 업로드해 육체 없이도 영생을 누리는 세상에 '영원한 천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설로 쓰기로 했다.
Q : 기존 장르와 달라 힘들지 않았나.
A : 공부하는 데만 꼬박 1년을 썼다. 준비 기간을 이렇게 오래 가진 것은 처음이다. 유발 하라리와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책을 많이 읽었다.
Q : 이번 소설도 산 넘어 산이다. 주인공 경주는 뭐 하나 쉽게 풀리는 일이 없다.
A : 쉽게 풀리면 재미가 없지 않나. 내 자신도 잔잔한 얘기를 싫어한다. 타고난 기질인 것 같다. 음악도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걸 보면.
Q : 책을 읽으면서 '정유정 소설인데 왜 여태껏 변사체가 안 나오지' 의아했다.
A : 그 때쯤 딱 변사체가 나오지 않나.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적재적소에 갈등과 고난이 있고, 그걸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이 있는 이야기. 스티븐 킹처럼 쓰고 싶다.
Q :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힐링 독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방향 아닌가.
A : 그런 글을 쓰는 재주는 없다. (웃음) 힘이 없다는 걸 전라도 사투리로 '히마리 없다'고 하는데, 나는 '히마리 없는' 캐릭터를 안 좋아한다. 답답해서다. 죽더라도 화끈하게 죽어야지. 어떤 작가들은 글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 '생긴 대로 쓴다'고 할까. 앞으로도 착한 소설은 안 쓸 거다.
Q : '악의 삼부작'도 작가 자신과 닮아있나. (『7년의 밤』,『28』,『종의 기원』은 '악의 삼부작'이라 불린다. 전염병이 돌고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간 내면의 악을 들여다보는 다소 어두운 이야기다.)
A : 일부는 그렇다. 내 책의 중요한 캐릭터는 전부 내 속에서 끄집어냈다. 악인 캐릭터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누구나 악한 면과 착한 면이 있는데 그중 전자를 끄집어내서 '악의 삼부작'을 썼다.
Q : 이번 소설은 그에 비하면 '힐링'이다.
A : 평생 '악의 삼부작'만 쓸 수는 없으니까. (웃음) 너무 피폐해진다.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도 경주가 끝내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Q : 주인공 경주는 어떤 사람인가.
A : 시니컬하고 찌질한 사람. 그렇지만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행을 기어코 이겨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캐릭터여야 성장의 전후 차가 크다. 작가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Q : 경주가 성장하는 모습은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 성장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A : 어떤 직업을 갖는 것, 부를 쌓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니까. 견디고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인간이 그런 야수성을 간직하는 건 미덕이다.
Q : 취재 여행은 언제 다녀왔나.
A : 초고를 쓰고 캐릭터를 구체화해야 하는데, 경주가 일하는 노숙인 보호시설 삼애원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유빙에 둘러싸인 천애고원을 보고 싶어 일본 홋카이도에 다녀왔다.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캐릭터가 살아날 것 같아서.
Q : 경주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 유빙인가.
A : 맞다. 경주하면 동토, 빙원 그런 곳들이 떠올랐다. 내면이 얼어붙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정을 안 주니까. 오로지 생존에만 매달렸던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이 꽃핀 적이 없다. 그래서 삼애원을 유빙에 둘러싸인 곳으로 그렸다.
Q : 등단 17년 차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A : 온갖 감정적 격랑에 휘말리면서 밤을 새웠다가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쓰면 원이 없겠다. 나한테는 소설『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62, 켄 키시)가 그런 이야기였다.
Q : 글이 막힐 때는.
A : 글은 원래 막히는 거다. (웃음) 마른 빨래를 쥐어 짜듯 겨우 겨우 쓴다. 일필휘지하는 재능은 없다. 시간 싸움이고 버티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버티려고 운동도 한다.
Q : 운동은 얼마나 하나.
A : 근력 운동은 20년 됐다. 체육관에서 가장 힘 세다는 소리도 듣는다. 일주일에 여섯 번 뛰는데 그중 두 번 정도는 집앞 천변을 따라 10㎞를 뛴다. 풀 마라톤과 트레일러닝에 도전하고 싶다.
홍지유(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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