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뭣도 모르고 돈 뿌려" 미국 로비 전문가 팩폭
6조 정보·인맥 시장서 일어나는 일
◆6조원짜리 정보·인맥 시장=미국에선 국민의 청원권(국민이 국가기관에 희망사항을 진술할 기본권)을 명시한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로비 활동이 보장된다. 실제 미국의 정책 결정, 입법 과정에서 로비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각국 정부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로비 업체와 로비스트를 큰돈을 들여 고용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2022년 예산 20억원 이상을 들여 미국 로비업체 5곳으로부터 자문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해 미국에서 활동한 로비스트는 총 1만2939명이다. 1996년 1월 발효한 미국의 로비활동공개법(Lobbying Disclosure Act)에 따르면 로비 활동을 위해 업무 시간의 20% 이상을 쓰는 개인과, 로비스트를 한 명이라도 고용한 기관은 미 상·하원에 이를 등록해야 한다. 미국은 로비를 허용하는 대신 투명하게 그 활동을 공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들의 주 타깃은 의회와 정부다. 미국에선 로비를 ‘제3원’(상원·하원·로비) 또는 ‘제5부’(입법·사법·행정·언론·로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송 그 후 “로비가 중요하더라”=미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대기업 A사는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재료 수급에 종종 애로를 겪는다. 일부 화학물질의 경우 미국 환경보호청(EPA) 등 연방정부의 수입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길어지면 고객사의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A사는 이럴 때 로비스트를 활용한다. 로비스트는 공장이 위치한 주 의원에게 e메일을 보내거나 대면 미팅을 통해 도움을 구하고, 해당 의원은 연방 정부에 수입 허가 일정을 당겨줄 것을 요청한다. 로비를 통해 수개월이 걸릴 수 있는 허가 과정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A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결국 2012년 8월 미국 법원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와 실용 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전자가 10억5185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엔 로비액을 7만6000달러까지 늘렸지만, 너무 늦은 조처였다. 분기별 지출액을 보면 1·2분기 통틀어 1만 달러만 지출하다가 판결이 임박한 3분기에 2만7000달러로 지출액을 늘렸다. 이 소송전은 7년간 진행됐다. 삼성전자의 로비액은 2018년엔 391만 달러까지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현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계기로도 로비액이 크게 늘었다.
◆미국 우선주의는 로비를 부르고=로비가 소송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 우선주의가 현실화하며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에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신규 대미 투자는 1138억 달러(약 150조원)에 달했다. 워싱턴이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대가 된 것이다. 특히,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시행되면서 보다 유리한 사업 조건을 확보하려면 정·관계에 ‘끈’을 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비에 실패하면 막대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요즘 한국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바쁘다.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 대미 로비 자금으로 354만 달러를 썼다. 지난해 상반기 322만 달러 대비 9.9% 증가했는데, 역대 최대치다. 올 상반기 고용한 로비스트는 58명이다. 지난해 연간으로는 630만 달러를 썼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254만 달러를 미국 내 로비에 지출했는데, 지난해 상반기(227만 달러) 대비 11.9% 늘었다.
윤성민.최선을(yoon.sungmin@joongang.co.kr)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