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後生可畏(후생가외)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작이나 연탄을 땔감으로 비축할 때면 어른들은 “후생가외(後生可畏)니라, 연탄이나 장작도 늦게 들여온 놈이 위에 쌓이지 않느냐?”라고 하시며, 늦게 태어난 젊은이가 먼저 태어난 어른을 딛고 위로 올라설 수 있음을 비유로 설명했다. 후배에게 추월당하지 않고 정진할 것을 면려하는 비유였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워낙 한자를 기피하다 보니 ‘후생가외’라는 말을 사용하기는커녕 뜻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깊은 의미가 담긴 좋은 말이니 지금이라도 익혀 사용함이 옳으리라.
후생가외! ‘시간과 체력이라는 재산을 가진 후생(젊은이)을 두려워하자’라는 뜻이다. 경쟁의 대상으로 여겨 적대시하자는 게 아니라, 젊은이에게 뒤지지 않도록 정진함과 동시에 젊은이를 격려하며 인재가 되기를 축원하자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그런데 ‘무한경쟁 시대’ 운운하면서부터 ‘후생가외’라는 사자성어에서 후생에 대한 격려와 축원의 뜻은 사라지고 불안한 경쟁심만 늘게 된 것 같다. 불행한 시대이다. 아름다운 삶은 ‘베스트(best) 1’을 향한 줄서기가 아니라, ‘온리(only) 1’을 향한 자기완성이다. 정진을 통한 자기완성과 함께 후배에 대한 격려와 축복도 너그럽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후생가외’를 실천하도록 하자.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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