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가 좌파?…진보세력의 국경일 참배, 김구에겐 불명예"
[월간중앙] 광복절 맞아〈해방정국의 풍경〉낸 정치학자 신복룡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
이승만과 김구, 여운형과 김규식, 박헌영과 김일성 등 격동의 시간을 거쳐 간 지도자들
“우익은 우익 손에, 좌익은 좌익 손에 죽었다… 이념으로 먹고사는 ‘꾼들’ 지금도 많아”
국민도 둘로 갈라진 양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가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술자리를 함께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도 33%에 달했다. 사랑보다 이념, 친구보다 진영이 일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과잉증’이다. 진보-보수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도 92.3%에 달해 5년 전보다 5.3%포인트가 올라갔다. 나라가 속병이 들 만큼 들었다는 얘기다.
사랑보다 이념, 친구보다 진영?
사회가 각박해졌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는 밥도 함께 먹지 않겠다고 한다.
“요즘의 이념 갈등이 해방정국(1945~1950년) 때보다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이 5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본질에서 다름이 없다고 했다. 역사는 몇 년 지났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8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1940년대만 해도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주의에 대한 순수성이 조금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그나마도 없어진 것 같다. 사람 냄새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이념 논쟁이 해방정국에서 시작했다고 적시했다.
“최근의 이념 갈등은 생업화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1940년대에는 이념을 생계에 연루시킨 사람이 많지 않았다. 조국에 대한 열정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좌우 논쟁이 ‘꾼들’의 먹이가 됐다. 이념으로 먹고사는 생계업자들이 득세하는 오늘이 서글프다.”
난장판 현실정치를 말하는 것인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조국이라는 것이 과연 우선순위에 들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말로는 조국, 조국하는데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누리고 있는 소셜 어드밴티지(기득권)를 더 확장하고 지속시킬 수 있을까에만 몰입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에 해방정국을 거쳐 간 지도자를 30~40명가량 돌아봤다. 그들이 과연 당대의 이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몇몇 지사형 정치인들에게서는 분명 배울 게 있다. 또 그들이 실패했다면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이다. 중도의 지혜가 아쉽다.
“이승만이든 김구든 역사적 인물의 신화화에 반대한다. 그들의 행적에 대해 냉혹하게 다가갔다. 나의 논지는 좌우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받기에 딱 좋다. 그 때문에 고초도 많이 겪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내 글의 핵심 키워드는 눌린 자에 대한 연민이다.”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
“사회학자 배링턴 무어(1913~2005, 미국)는 ‘역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에 연민을 가지고 승자들의 주장에 회의를 품는 것이 학자의 책무’라고 했다. 그 말이 내 역사학의 등대가 됐다. 소설가 이병주 선생도 ‘승자의 기록은 태양을 받아 역사가 되고, 패자의 기록은 달빛을 받아 전설이 된다’고 했다. 그 전설들을 실화화하고 싶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어느덧 나도 망구(望九)의 나이가 됐다. 후세에게 역사를 증언할 때가 됐다. 예컨대 역사적 인물에 가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쏟았다. 1946년 대구 사건,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사건 같은 민족사의 비극을 다룬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당시 숱한 양민들이 이념이란 시대의 광기에 억울하게 숨졌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좌익이든 우익이든 그들을 위한 합당한 진혼제가 필요하다.”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아직도 두 사람이 대척점처럼 거론된다. 정권에 따라 그들에 대한 평가가 요동친다.
“이승만과 김구는 출신과 성장 과정부터 크게 달랐다. 책에도 썼지만 한국 민족운동사에서 큰 비극은 상호대비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두 인물이 화목하지 못한 데 있다. 김구는 노회함이나 국가경영 능력에서 이승만을 따를 수 없었다. 그가 이승만을 이겼다 하더라도 그의 격정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장해줄 순 없었다. 가슴으로 산 사람(김구)이 머리로 산 사람(이승만)을 이긴 사례는 역사에서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올봄 화제였다.
“이승만 추모 열기가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나는 [건국전쟁]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4·19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젊은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겠나. 이승만이 좌파정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무시당한 점이 분명히 있었지만 독재라는 역사적인 과오를 덮을 수는 없다.”
김구는 정통 보수민족주의자라고 썼다.
“김구는 결코 좌파일 수 없다. 자칭 진보세력이 그의 묘소를 찾아가 국경일 행사를 치르는 것은 김구를 위해서도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진실로 김구를 숭모한다면 소위 진보 좌파로부터 김구를 먼저 구출해야 한다.”
이승만과 김구, 그들의 화해는 불가능한가?
“이승만과 김구의 실수보다 이승만과 김구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의 실수가 더 크다. 이제는 마치 줄서기처럼 됐고, 생업으로 변질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승만이나 김구 숭모자들이라면 더는 ‘내가 법통이다’라며 다투지 말아야 한다. 양쪽 후손들이 두 분의 기일에 서로 초대장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일부 좌파 세력이 백범기념관을 찾아가 군국주의의 유산이라며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국기에 경례도 하지 않을 때 그들을 꾸짖어 돌려보내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중도파의 입지는 협소하다. 좌우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중도파의 운명이다. 한국의 중도파들은 특히 자기 지탱력이 약했다. 김규식이든 여운형이든 중도파는 당대 최고 엘리트였는데, 그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정을 가장 지혜로운 선택으로 믿었다. 즉, 민중의 저력을 우습게 보고 과소평가했다. 더욱이 병약했던 김규식은 정치를 하면 안 될 사람이었다.”
이승만과 김구로 밥을 먹는 사람들
“해방정국에서 그보다 주목되는 것은 좌우 갈등보다 좌익 내, 혹은 우익 내 갈등이 더 심각했다는 점이다. 여운형을 제외하고 우익은 우익의 손에, 좌익은 좌익의 손에 죽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이념권 안에서도 온건 노선은 배신 혹은 변절로 몰렸기 때문이다. 그 비극이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 박헌영은 어떤가?
“박헌영은 가난한 수재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민중의 쓰라린 아픔을 뼛속 깊이 새겼다. 모스크바 대학까지 나온 그가 소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매우 비극적이다. 그는 청년 시절 미국 유학자금을 대주기로 했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할 수 없이 일본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더라면 어땠을까. 그때에도 계속 계급투쟁에 몰두했을까.”
박헌영의 호적도 직접 찾아냈다.
“2000년 7월 박헌영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그의 제적등본을 떼봤다. 어머니 직업이 ‘주막업’으로, 남편과의 관계가 ‘첩’으로, 그리고 박헌영은 ‘서자’로 기록돼 있었다. 그렇게 가혹한 호적등본을 본 적이 없다. 박헌영의 노선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감수성 풍부한 수재 청년의 쓰라린 심정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 갔기에 그런 자료도 구했겠다.
“역사학자의 생명은 현장이다. 역사가의 신체적 조건은 머리나 가슴보다 튼튼한 다리다. 글은 ‘발품’의 결과다. 헤로도토스나 토인비 같은 고금의 역사가도 ‘그대는 그곳에 가 보았는가’라며 끝없이 물었다. 현장과 일상을 떠난 역사는 공허하다.”
이런저런 일화도 많을 것 같다.
“실제로 이번 책의 많은 부분은 1985년 마흔셋 늦은 나이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연방문서보관소(NARA)에서 채록한 1만5000쪽의 자료에 크게 빚졌다. [전봉준 평전]을 쓸 때는 전국 5000㎞를 답사했다. 1981년 전봉준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하려고 전남 장성 백양사에 갔을 때 그곳 촌로로부터 송진우가 젊은 시절 망국의 한을 품고 백양사 청류암에서 공부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좌우 모두 부패했고, 분열했다”
아픈 곳을 건드려 결례지만 우리 사회가 ‘이데올로기의 켈로이드’라는 난치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번 책의 정곡을 찔렀다. 우리는 해방부터 한국전쟁 휴전까지 10년 동안 이데올로기라는 명분으로 어림잡아 동족 300만 명을 죽였다. 밥을 해결해 주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국 정치인과 학자들은 이데올로기의 ‘엄숙주의(rigorism)’에 갇혀 있다. 해방정국의 갈등과 모순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게다가 우리 시대 좌우의 도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좌우 모두 부패했고, 좌우 모두 분열하지 않았나.”
해방정국에서 본받을 만한 지도자라면?
“이번에 자세히 다루지 못했지만 조소앙이 떠오른다. 정치·경제·교육적 균등이라는 삼균주의를 내세운 그는 극우와 극좌가 저지를 수 있는 역사의 사악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북유럽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차별받았던 서북 사람들을 껴안으며 개인과 사회의 실력 양성을 주창한 안창호도 한국정치사의 중요한 유산이다.”
지금껏 70권 가까운 저서·번역서를 냈다. 학문의 길에는 나이가 없겠다.
“이번 [해방정국의 풍경]은 세 번째 개정판이다.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야 한다. 올 10월께 [전봉준 평전] 개정판이 나온다. 내 학문과 인생의 회심작인 [한국정치사상사] 개정판과 일본어판도 준비 중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자국의 정치사상사를 한 필자가 망라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통일을 둘러싼 논의, 통일을 위한 조건으로 이번 책을 맺었다.
“늘 ‘역사는 진보하는가’를 질문해 왔다. 회의에 빠질 때도 잦지만 희망을 버리기에는 우리의 아픈 경험이 너무 아깝다. 역사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아닌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현재가 힘들더라도 서사적인 고민을 내려놓지 말자. 스마트폰 바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조국·인류·전쟁·평화·미래도 생각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의 애송시 중 하나인 문병란의 ‘직녀에게’를 일부 인용한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박스기사] 지금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신 교수는 [해방정국의 풍경]에서도 마키아벨리를 자주 소환한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인생의 3가지 요소, 즉 운명(fortune), 덕망(virtue), 역사의 부름(calling)을 인용하며 이승만과 김구의 엇갈린 행로를 설명하기도 했다.
신 교수가 꼽은 마키아벨리의 가장 큰 장점은 엄숙주의로부터의 탈피다. 정치는 도덕만 가지고 할 수 없다는, 선량한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철저히 현실주의적 입장이다. [군주론]의 키워드로 꼽히는 ‘여우의 교지(狡智)와 사자의 용맹’이 바로 연상된다.
신 교수는 해방공간에서 쓰러진 중도파 정치인들에게 결여된 자질도 바로 여기서 찾는다. 김규식이든, 여운형이든 현실에서 살아남는 지혜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 그들뿐이랴.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한국 정치는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는 투전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 교수는 마키아벨리를 패덕자(悖德者)로 깎아내리는 항간의 부정적 판단에도 반대한다. 마키아벨리는 그 누구보다도 조국 이탈리아를 사랑했고, 또 철인정치를 꿈꾸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 대한 믿음을 간직했다는 점에서다.
“마키아벨리는 다독가였습니다. 세상을 선하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치밀한 독자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충실한 제자입니다.”
신 교수는 3년 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전 5권)도 완역·출간했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park.jungho@joong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실장 park.jo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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