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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한 달 살기, 월세 53만원으로 행복을 샀다

10년째 신혼여행 ⑯ 태국 방콕
방콕 최대의 쇼핑 거리로 통하는 시암 스퀘어. 대형 쇼핑몰과 다양한 편집숍, 특급 호텔 등이 몰려 있어, 현지인과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로 늘 북적이는 장소다. 숙박비를 비롯해 물가는 제법 비싼 편이다. [사진 태국관광청]
방콕 한 달 살기 의외의 복병은 잠자리다. 공유숙박에서 특급호텔까지 숙박 시설이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선택 장애에 빠지기 쉽다. 잠자리 취향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도심 한가운데나 역세권 호텔을 원하고, 누군가는 근사한 수영장과 헬스장이 딸린 집을 찾는다. 우리는 여러 방황 끝에 방콕에서도 저렴한 숙소가 많기로 유명한 온눗(On-Nut)에 짐을 풀었다.

아내의 여행
톤부리의 왓 아룬 사원. [사진 김은덕·백종민]
2022년 9월 방콕을 찾았다. 이 도시에서만 벌써 세 번째 한 달 살기다. 한 달짜리 숙소를 구하는 건 매번 어렵다. 2015년 첫 한 달 살기 때는 시암(Siam)에 집을 구했다. 시암은 대규모 쇼핑센터가 밀집된 번화가여서 방값도 비쌌다. 동남아에서는 월 500달러 이하의 집에서만 잔다는 규칙을 깨고, 결국 한 달 숙박비로 1000달러(약 133만원)를 지출했다. 어딜 가든 쇼핑하러 온 외국인뿐이어서, 서울 명동 한가운데서 한 달을 사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 달 살기’는 여행과 일상 그 경계에 머물다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시암은 태국인의 일상을 엿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동네였다.

2016년에는 톤부리(Thonburi)에 숙소를 잡았다. 방콕은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차오프라야(Chao Phraya) 강을 경계로 동네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강 건너 서쪽에 위치한 톤부리 지역은 가이드북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덕에 우리는 신축 콘도를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다. 수영장과 작은 헬스장이 포함된 콘도를 500달러(약 67만원)에 한 달이나 빌렸다. 조건은 시암과 비슷했지만, 위치에 따른 비용 차이가 현격했다.

대규모 쇼핑 센터 ‘아이콘 시암’ 지하에 수상 시장 콘셉트의 ‘쑥 시암’이 조성돼 있다. [중앙포토]
문제는 방콕 중심가로 넘어가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점이었다. 숙소비는 아꼈지만, 길 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버려야 했기에 외출할 때마다 큰 다짐이 필요했다.



한 달 동안 우리가 뻔질나게 드나든 장소는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인체 해부 박물관, 기생충 박물관, 선사시대 박물관 등 다양한 전시시설을 갖춘 시리랏 병원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카페가 병원 안에 있었기에 그곳에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전시도 구경하고, 밀린 원고 작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병원 카페에 있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방콕 시민과 경찰로 도로가 빼곡했다. 푸미폰(라마 9세, 1927~2016) 국왕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의 아지트가 왕실 병원이었다니. 그게 톤부리에서 겪은 가장 큰 소동이었다. 톤부리는 현지인의 일상을 체험하기에는 좋았지만,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남편의 여행
방콕의 풍경. 중앙의 거대한 물줄기가 차오프라야 강이다. [중앙포토]
방콕은 계속해서 새로운 공간이 태어나는 도시다. 우리가 머물던 2016년의 톤부리는 개발이 미진한 낙후 지역이었다. 지금은 차오프라야 강 서안을 따라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속속 자리를 잡고 있다. 방콕 지하철인 MRT라인이 이 지역을 지나게 되면서 도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방콕 도심을 가로지르는 BTS. [사진 김은덕·백종민]
방콕은 1970년대 이른바 ‘히피 트레일’의 종점이었다. 유럽을 떠난 히피들은 이상향을 찾아 유라시아를 건넜다. ‘자유의 땅’이란 뜻의 태국에 도착한 그들은 카오산 로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1999년 도심을 가로지르는 BTS(도시철도)가 개통하자 거리 곳곳에 호텔이 들어섰다. 요즘은 여행자 숙소가 방콕 전역으로 확대됐다. 2010년대 이후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숙박이나 공유 차량 서비스가 널리 통용되면서 여행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한 달 400달러에 빌린 온눗의 숙소. 온눗은 가성비 좋은 숙소가 많은 동네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세 번째 한 달 살기를 하며 우리는 방콕 BTS 온눗 역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온눗은 가성비 좋은 숙소가 몰려 있는 덕에 우리 같은 장기 여행자에게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인 지역이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도 가까이에 있다. 시암의 번잡함과 톤부리의 한적함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한 달 400달러에 빌린 온눗의 숙소. 온눗은 가성비 좋은 숙소가 많은 동네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당시 나는 수영에, 은덕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미쳐 있었다. 우리는 25m 길이의 야외 수영장과 쾌적한 헬스장을 갖춘 숙소가 필요했다. 온눗에서는 월 400(53만원)달러로 그게 가능했다.

아속 역 인근의 벤짜낏띠 공원. [사진 김은덕·백종민]
좋은 숙소를 구하면 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일상이 행복해진다. 그곳에서 나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매일 새벽 수영으로 일과를 시작해,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가끔 BTS 아속 역 근처의 ‘벤짜낏띠 공원’을 달리기도 했다.

맵고 짜고 달고 신 태국 음식을 90끼 넘게 먹었지만, 전혀 체중이 늘지 않았다. 열대야가 심했던 올여름 서울에서 살며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덥고 땀 나고 지칠 때면, 무작정 현관을 열고 나와 수영장에 풍덩 몸을 던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태국 방콕 한 달 살기 ·비행시간: 6시간 ·언어: 태국어 ·날씨: 매일 덥다. 9월 평균 25~33도 ·물가: 한국보다 저렴하지만, 최근 관광지 물가 폭등 중 ·숙소: 500달러 이상(수영장과 헬스장이 포함된 원룸형 콘도)

김은덕(左), 백종민(右)
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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