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막기로 버틴다”…은행 막히니 카드론·보험 담보대출로
경기 침체 장기화로 살림이 팍팍해진 서민들이 금리는 높지만, 문턱이 낮은 이른바 ‘불황형 대출’에 몰리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ㆍ여신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9개 카드사의 7월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은 41조2266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전월 말(40조6059억원)의 기록을 한 달 만에 갈아치웠다. 지난해 12월 38조7613억원을 기록한 이후 7개월 연속 증가세다. 신용카드만 있으면 별도 심사 없이 36개월까지 돈을 빌릴 수 있는 카드론은 돈줄이 막힌 중·저신용자가 찾는 급전 창구로 통한다.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도 6월 말 기준 70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 상품은 은행 등에서 대출이 어려운 금융소비자가 별도의 심사 없이 자신의 보험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릴 수 있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불황기 서민 대출’로 불리는 청약담보대출도 증가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6월 기준 청약담보대출은 3조1714억원으로 2021년 6월 말(2조2413억원)보다 41% 늘었다. 약관대출과 청약담보대출은 보통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만 소유하고 있으면 소득조건과 상관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차담대로 눈을 돌리는 금융소비자도 늘었다. 대출비교 플랫폼 핀다의 조사 결과 올해 상반기 차담대 한도조회는 1484만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92만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300만~500만원의 금액을 담보 없이 빌릴 수 있는 저축은행 소액신용대출 잔액도 1분기 기준 1조160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6% 증가했다. 대부분 신청 당일에 대출 승인 후 입금까지 완료돼 신용점수가 500점이 채 안 되는 저신용자의 급전 창구로 쓰이는 상품이다.
이는 길어진 고금리와 더딘 내수 회복 속에 서민 급전 수요는 늘었지만, 빌릴 곳은 줄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5대 시중은행에서 신규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한 이들의 평균 신용 점수는 957점(KCB)으로 1년 전(951.2점)보다 6점가량 올랐다. 통상 신용점수 3등급(832~890점)은 고신용자로 분류되는데, 이들조차도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게 여의치 않아졌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결제연구실장은 “결국 낮은 신용등급 등의 이유로 은행에서 자금줄이 막힌 서민들이 카드론이나 보험으로 눈을 돌려 급전 확보에 나서는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고금리의 상품을 쓰면 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계부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황형 대출의 문이 앞으로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약관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일부 상품의 대출을 중단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KB손해보험은 상해ㆍ질병 보험대출 한도를 줄였다. 삼성화재는 장기보험 5종의 신규 보험대출을 중단했다. 저축은행도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전국 저축은행 79곳의 여신(대출) 잔액은 99조9515억원으로 2021년 11월 이후 처음 10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는 소비와 투자, 고용이 개선되는 흐름의 변화가 있어야 불황형 대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나서 정책서민금융 재원을 늘리고 서민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채무 조정 지원 등 금융·고용·복지 연계를 강화하는 서민층 맞춤형 금융 지원 방안을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곽재민(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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