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한 달 살기만 3번…방값 싼 가성비 동네 따로 있었다
10년째 신혼여행⑯방콕
아내의 여행
2016년에는 톤부리(Thonburi)에 숙소를 잡았다. 방콕은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차오프라야(Chao Phraya) 강을 경계로 동네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강 건너 서쪽에 위치한 톤부리 지역은 가이드북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덕에 우리는 신축 콘도를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다. 수영장과 작은 헬스장이 포함된 콘도를 500달러(약 67만원)에 한 달이나 빌렸다. 조건은 시암과 비슷했지만, 위치에 따른 비용 차이가 현격했다.
한 달 동안 우리가 뻔질나게 드나든 장소는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인체 해부 박물관, 기생충 박물관, 선사시대 박물관 등 다양한 전시시설을 갖춘 시리랏 병원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카페가 병원 안에 있었기에 그곳에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전시도 구경하고, 밀린 원고 작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병원 카페에 있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방콕 시민들과 경찰들로 도로가 빼곡했다. 종민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는데, 그만 경찰에게 카메라를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곳에 태국의 절대 권력자인 푸미폰(라마9세) 국왕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톤부리에서 겪은 가장 큰 소동이었다. 톤부리는 현지인의 일상을 체험하기에는 좋았지만,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방콕은 1970년대 이른바 ‘히피 트레일’의 종점이었다. 유럽을 떠난 히피들은 이상향을 찾아 유라시아를 건넜다. ‘자유의 땅’이란 뜻의 태국에 도착한 그들은 카오산 로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1999년 도심을 가로지르는 BTS(도시철도)가 개통하자, 곳곳에 호텔에 들어섰다. 요즘은 여행자의 숙소가 방콕 전역으로 확대됐다. 2010년대 이후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숙박이나 공유 차량 서비스가 널리 통용되면서 여행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세 번째 한 달 살기를 하며 우리는 방콕 BTS 온눗 역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온눗은 방콕에서 가장 트렌드한 동네로 통하는 통로(Thong Lo)·에까마이(Ekkamai) 인근의 거주 지역이다. 시암의 번잡함과 톤부리의 한적함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장소라고나 할까. 가성비 좋은 숙소가 몰려 있는 덕에 우리 같은 장기 여행자들에게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곳이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도 가까이에 있다.
좋은 숙소를 구하면 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일상이 행복해진다. 그곳에서 나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매일 새벽 수영으로 일과를 시작해,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가끔 BTS 아속 역 근처에 있는 ‘벤짜키팃 공원’을 달리기도 했다.
땀 흘린 후에는 5성급 호텔에서 식사도 즐겼다. 방콕은 특급호텔 간 경쟁이 치열해 조식 뷔페를 40~50% 할인된 가격(보통 1만~2만원)으로 이용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맵고 짜고 달고 신 태국 음식을 90끼 넘게 먹었지만, 전혀 체중이 늘지 않았다. 열대야가 심했던 올여름 서울에서 살며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덥고 땀나고 지칠 때면, 무작정 현관을 열고 나와 수영장에 풍덩 몸을 던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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