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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500만원 돌연 늘었다"…실수요자 울리는 '금리 역주행' [관치금융의 역습]

대출금리 역주행의 파장이 금융시장과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리 왜곡의 불을 붙인 건 관치다. 시장금리는 내려가는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오름세다. 대환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은 제한됐다.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대출 '문턱'을 높인 영향이다. 사실상 ‘대출 총량제’ 카드까지 꺼내면서 실수요자가 대출을 받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번지고 있다.

역주행 대출 금리…실수요자 혼란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담대(5년 고정) 금리는 3.69~5.51%다. 2달 전(2.94~4.95%)과 비교하면 하단 금리는 0.75%포인트, 상단 금리는 0.56%포인트 올랐다. 이 사이 기준금리가 오른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반기 금리 인하 시그널은 명확해졌는데도 대출 금리는 역주행했다. 같은 기간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가 3.493%에서 3.266%로 떨어진 것과 대비된다.
정근영 디자이너

당장 실수요자에게 혼란이 닥쳤다. 30평대 서울 구축 아파트 잔금 납부를 앞둔 장현진(39)씨는 7억원에 달하는 잔금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7월 매매 계약을 체결할 때만 해도 시중은행 금리는 3.3% 수준이었는데 최근 물어본 은행마다 3.9~4%대가 최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전과 비교하면 이자만 연 500만원을 더 내야 할 판이다. 장씨는 “자녀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가 돼 20평대에서 30평대로 갈아타려는 것”이라며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라고 해서 올해 중순 계약했는데 잔금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레 대출 금리가 오르니 당혹스럽다. 대출을 일찍 신청해야 했나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전세·대환대출도 영향권
부동산 대환 대출을 준비하거나 전세 자금을 대출받아야 하는 실수요자 역시 금리 역주행의 영향권에 있다. 신한은행이 갭투자에 활용되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한 데 이어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도 같은 조건의 전세 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대출을 투기에 활용하지 못 하도록 하는 목적이지만,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식으로 불똥이 튈 수 있다. 전세 대출 금리가 오른 데다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이 다른 은행으로 추가 확산할 수 있어 가을 이사철을 앞둔 전세 수요자의 고민도 커지게 됐다.
차준홍 기자



올해 초 대환대출 플랫폼까지 출시하면서 대출 갈아타기를 장려한 정부 정책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무색해졌다. 27일 금융감독원이 은행이 연초에 세운 경영계획 대비 가계대출 실적이 초과할 경우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하면서 올해 대출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내려 대환대출을 늘리라는 금융당국의 말을 잘 들은 은행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대출 절벽’ 예고
지난 21일 4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은 이미 각 은행의 경영계획 수준을 넘어섰다. 금감원이 페널티를 예고한 만큼 은행 입장에선 올해 남은 기간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한도에 여유가 있는 은행을 찾기 위해 창구를 돌아다니는 실수요자가 나올 것”이라며 “2021년 실제 대출 총량을 제한했을 때 이사를 앞둔 실수요자가 대출 문제로 가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진 적 있다. 비슷한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지방은행 쏠림이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금리 역주행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상생금융을 강조하며 서민 부담 경감을 위해 이자 부담을 줄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금‧대출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주춤하자 대출 금리를 끌어내렸다. 그러던 금융당국이 최근에는 입장을 바꿔 정반대의 사인을 내고 있는 셈이다.

작년엔 반대로 금리 역주행
지난해 주담대 금리 인위적 조정에 디딤돌‧보금자리‧신생아특례 등 주택 구매를 지원하는 정책 대출 확대가 겹치면서 부동산 시장에 불씨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특례보금자리 대출 중 신규 주택 구매에 사용된 규모만 27조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저금리 주택 구매 대출인 디딤돌 대출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11조6796억원을 기록하면서 6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실적(13조8835억원)에 육박했다.

‘대출 확대→부동산 가격 상승→매수 심리 자극→대출 확대’는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매수 심리가 커진 상황에서 은행 압박이란 카드를 뒤늦게 꺼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부동산 시장이 상승 흐름을 보이는 만큼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심리를 바꾸지 않는 한 대출금리 인상이나 대출 제한이 기대만큼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대응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27일 서울 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불어난 가계대출은 기준금리 인하 결정의 제약 요인이다. 지난 2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이후 “부동산 가격과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안은 지금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지면 코로나19 확산 때부터 빚을 늘려온 소상공인 부담도 커진다.

시장개입 아닌 구조적 해법 접근해야
가계대출의 총량을 정해놓고 옥죄는 게 아니라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향후 초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가계대출 총량은 줄어들게 될 것.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의미가 크지 않다”며 “그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수도권 집중, 노동환경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요자가 대출을 못 하게 되고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른다면 고액 자산가만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관치 금융은 시장 왜곡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며 “인위적 개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서울과 외곽을 잇는 교통인프라 확충 등 서울 부동산 집중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식으로든 서울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선 은행 대출을 막더라도 2금융이나 대부업 대출이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진호(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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