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곤충 말만 들어도 소름"…이런 공포증 없애려면
특정공포증의 유형과 진단개인마다 공포 느끼는 대상 달라
증상 땐 5초간 숨 크게 들이쉬기
기본 행동치료, 급성기엔 약물치료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 샐리(멕 라이언)는 비행기를 잘 타지 못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땐 이륙 순간까지 안절부절못하며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인다. 앞을 쳐다보기도 어려워 고개를 푹 숙이고 기체가 안정되기만을 기다린다. 영화 ‘아라크네의 비밀’에서 의사인 로스(제프 대니얼스)는 집 안에 나타난 거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릴 때부터 거미를 극도로 무서워했던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결국 아내 몰리에게 거미를 처리해줄 것을 부탁한다.
샐리와 로스 두 인물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특정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공포증은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 환경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움을 느끼는 정신 질환이다. 불안 장애의 일종으로, 특정 조건에서 불안이 과도해지며 행동이 통제되지 않는 상태다. 공포 대상을 맞닥뜨리지 않을 땐 문제없이 잘 지낸다. 하지만 공포 자극에 노출되면 즉각적으로 불안이 유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단순한 불안과 혐오와는 엄연히 다르다.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 아님에도 두려움이 큰 나머지 공포 대상이나 상황을 무리하게 피하려 하고, 심하면 공황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특정공포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대부분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이 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타당하지 않지만,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고 설명했다.
특정동물·상황에 대한 공포 흔해
둘째는 자연환경형이다. 높은 곳과 천둥, 번개, 폭풍, 물과 같은 자연환경으로부터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다. 고소공포증이 대표적이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가 높은 장소에 가면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해가 미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두려움이 심해져 꼼짝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도 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불안 반응은 계단을 올라가거나 사다리에 오르기만 해도 나타날 수 있다. 천둥과 번개가 칠 땐 밖에 나서는 걸 거부한다. 실내에 있을 때도 자세를 낮춰 몸을 웅크리거나 구석진 곳에 들어가 잠잠해지길 기다린다.
셋째는 혈액·주사·손상형이다. 피를 보거나 주사를 맞고 상처를 입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상태다. 혈액공포증, 주사공포증 등으로 불리는데, 성인에서 이 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꽤 있다. 이러한 유형은 침습적인 의료 시술에 대한 두려움이 심해 의학적 검사를 받기 꺼린다. 특히 주사공포증의 경우 단순히 주사를 무서워하는 수준이 아니다. 주사만 생각해도 통증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 수 있다. 주사공포증의 상위 개념인 모서리(선단)공포증도 있다. 이는 주사뿐 아니라 칼, 가위, 바늘 등 온갖 날카로운 물체에 두려움을 갖는다. 영화 ‘최강 로맨스’의 주인공인 강재혁(이동욱)도 모서리공포증을 앓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형사로 나오지만, 칼처럼 뾰족한 것만 마주하면 기절해버리곤 한다.
넷째는 상황형이다. 흔히 알려진 폐쇄공포증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로 엘리베이터·비행기 등 밀폐된 공간에서 과도한 두려움을 느낀다. 좁은 공간에 갇히거나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조 교수는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지 않거나 창문을 여는 등 나름 안전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며 “성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특정공포증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폐쇄공포증 환자로 나오는 김주원(현빈)은 엘리베이터에 갇혀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폐쇄공포증 환자는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면 공황 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앞선 네 가지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다양한 경우는 모두 기타형으로 분류한다.
공포 반응 나타나도 다 치료하지 않아
공포증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대상에 공포심을 느끼더라도 원인은 저마다 다르다. 다만 생물학적인 원인과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다. 과거 공포 대상에 위협을 느낀 경험이 있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공포 반응 행동을 보고 배웠을 경우에도 공포증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조 교수는 “공포증을 가진 환자의 대부분은 공포증이 생기게 된 원인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특정공포증의 양상이 다른 종류의 불안 장애와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여러 정신 질환과의 감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특정공포증은 어떻게 치료할까. 흔히 행동치료로 체계적 탈감작법이 사용된다. 불안을 일으키는 자극 중 가장 약한 것부터 시작해 점차 강한 자극으로 공포 대상에 노출하는 식이다. 단계적인 노출 과정을 통해 공포 반응을 줄여가는 것이 핵심이다. 공황 발작이 동반될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면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조 교수는 “약물로는 신경안정제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등이 쓰이지만 심각한 기능 저하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특정 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를 지켜본다”며 “특정공포증이 있지만 자주 직면하지 않고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다면 해당 상황을 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고, 일상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쳐야 하는 경우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른 것처럼 공포를 느끼는 순간도 다르다. 공포 반응이 느껴질 땐 두려움을 누그러뜨릴 생각을 하면서 증상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공포증을 다스리긴 쉽지 않지만, 심리적 안정 상태를 도모할 수 있는 훈련을 반복하는 게 좋다. 공포 증상이 나타났을 땐 크게 숨을 들이쉬고, 5초 동안 숫자를 세면서 내쉰다. 근육이 이완되면서 두려움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두려움이 느껴졌을 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당장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서 이완요법 등을 꾸준히 연습한다. 만약 공포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즉시 전문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영경(shin.you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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