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려달라"…항암제 '렉라자' 탄생 뒤엔, 11년 간직한 '눈물의 편지'
이번에 승인된 병용약은 비소세포 폐암 치료제다. EGFR이라는 유전자 변이 타입 폐암의 1차 약이다. 이 변이가 전체 폐암 환자의 40~50%를 차지한다. 40~60대의 비교적 젊은 여성에게 많이 걸린다. 병용약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라는 이 분야 '절대 강자' 약에 맞서게 된다. 타그리소보다 사망률을 30% 떨어뜨린다.
조 교수는 2016년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국제 임상시험을 힘겹게 시작했다. 둘을 따로따로 진행했다. 임상시험에 성공할지 명확하지 않은 데다, 타그리소라는 강자 때문에 제약사의 의지가 약했다. 조 교수는 유한양행 고위 임원을 설득해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2021년 성공했다.
리브리반트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조 교수의 지갑에는 낡은 편지 한 통이 들어있다. 11년 동안 지니고 있다. 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40대 여성 폐암 환자의 어머니가 쓴 것이다.
조 교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편지가, 그 환자가 왜 나한테 왔을까. 고혈압·당뇨병약은 늘렸는데, 생명을 살리는 항암제가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며 "렉라자·리브리반트의 약재료(신약후보물질)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살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특히 리브리반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는 "그 여성 환자가 몇 년만 버텨줬다면 리브리반트 혜택을 봤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조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났을 때 지갑 속에서 편지를 꺼내 펼쳤다. 접힌 부위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조심스럽게 다뤘다. "나의 보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리브리반트 임상시험이 나에게 온 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며 "그게 없었으면 병용치료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 교수는 렉라자·리브리반트 임상시험 도중에 두 가지를 함께 투여하는 병용치료 임상시험을 별도로 시작했다. 두 약의 아버지가 조 교수이니 병용치료 임상시험을 그가 맡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30여 개국 의사들과 함께 120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조 교수의 연구소에선 108명의 전문가가 100여개의 신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소다. 조 교수는 취미가 따로 없다. 멍 때리기, 신약 연구가 굳이 취미라면 취미다. 신약 임상시험에 인생을 바친 의사다. 지난 15년간 그리했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라고 한다.
폐암은 발견 순간 4기 환자가 60%를 차지한다. 수술은 불가능하고 항암 치료밖에 없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치료는 폐암 4기 환자에게 희망이 될 전망이다. 폐암 4기 환자는 위·대장·유방·전립샘·비뇨기 암 4기 환자를 합한 것보다 많다. 병용치료 약은 미국에서 상업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국제 임상을 해서 한국 내 임상시험은 안 해도 된다. 다만 한국에 와도 식약처 승인, 건강보험 등재, 약값 심의 등의 벽을 넘어야 한다.
신성식(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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