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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시선] 제 3지대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

필자는 작년 뉴저지 버겐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열린 토론회에 ‘파친코’ 등으로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부상한 이민진 작가와 패널로 참여한 적이 있다. 평소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한인과 아시안 공동체를 위해 늘 앞장서는 그녀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냈었기에 뜻깊은 자리였다. 패널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린 후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그녀와 대화를 원하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나의 질문은 ‘디아스포라적 정체성과 세계관’에 대한 것이었다.
 
‘디아스포라적 세계관’을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대략 ‘다양한 문화와 관점에 대한 수용력, 자아에 대한 건강한 인식과 존중, 모국과 거주지, 그리고 타지역의 관계를 복합적이고 다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소수자들과의 연대감, 보편적 환대성’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민진 작가는 어릴 때 한국에서 뉴욕 퀸즈로 이주해 자랐다. 전형적인 이민 가정의 자녀로서 한국적 전통과 미국적 가치관 사이의 충돌을 경험하며 성장했고, 이 경험은 그녀의 첫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배경과 서사의 중요한 뼈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필자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사실 그녀의 그다음 행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3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는데, 이때 재일 교포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파친코’가 탄생했다. ‘파친코’의 우주관은 앞선 소설보다 더 확장되고 복잡화된 인물 설정과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필자는 하나의 가설이 있는데 그것은 디아스포라적 세계관은 제 3지대를 경험할 때 더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민자들은 자신이 떠나온 모국의 세계관과 자신이 정착하여 살아가는 현지 국가의 세계관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따라서 이민자들은 평생 한곳에서만 살아가는 이들의 단일한 세계관보다 더 폭넓은 관점을 소유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분법적 세계관에 속박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익숙한 두 개의 환경에 우열을 나누거나 절대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가령, 필자가 ‘헤로니모’를 제작하며 관찰한 사실은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대부분의 쿠바인은 미국에서 강경한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쿠바에서 공산주의의 폐해를 온몸으로 체험했기에 그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보수적 가치, 시장주의, 심지어는 반공주의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쿠바에 비해 객관적으로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국가일지언정, 미국 내 존재하는 여러 문제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옹호하거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는 시도에 대해 무조건 ‘공산주의’라고 폄하하는 것은 이분법적 세계관이 낳은 대립적 사고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궁금했다. 이민진 작가 역시 제 3지대였던 일본에서의 경험이 그녀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확장한 중요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며 발견한 재미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또 다른 한인 디아스포라인 재일 교포 자이니치들의 복잡한 삶의 궤적과 중첩되며 그녀는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기존 프레임의 전환을 이뤄내지 않았을까 하고. 결국 그녀는 재미 한인 혹은 미국의 소수민족이라는 제한적 딱지를 초월해 더 큰 글로벌 한인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서는 한 명의 보편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 아닐까, 바로 그 질문을 하고 싶었다.  
 
하나의 점이 면으로 거듭나고 그 면이 입체로 거듭나듯, 우리의 세계관 역시 고착을 거부하고 지속해서 확대 가능한 환경을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환경일 수도, 아니면 지적, 영적, 예술적 영역의 환경일 수도 있다. 제 3지대를 체험할 때 우리는 획일적 혹은 이분법적이었던 세계관을 더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편협한 판단과 대립적 선택을 유보하고 더 포용적인 시선으로 나와 타자에게 내재한 복잡성과 다양성을 지긋이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석 / ‘헤로니모’, ‘초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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