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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죽지 못해 산다고 해도

이기희

이기희

눈물이 난다. 자꾸 난다. 요즘 자주 눈물을 흘린다. 오래 말라있던 눈물샘이한꺼번에 용솟음치는 걸까. 소소한 일에도 가슴 떨리고 작은 일에도 감동 받는다.
 
그동안 내 인생과 전혀 상관없이 지나친 일들이 내 일처럼 마음이 쓰라린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죽을 수가 없어 산다. 남편은 대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일곱살 정도 정신연령을 가진, 스무살이나 나이 어린 여자를 후실로 데려오고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는 둘째 부인이 낳은 자식 셋 뒷바라지 하며 장애를 가진 둘째 부인을 친 자매처럼 돌본다. ‘오래 살아야지. 내가 죽으면 둘째는 누가 돌보겠노.’ 그 대목에서 눈물이 쏱아져 휴지로 코를 풀었다. 가난에 찌든 시골 살림의 가장이 되어 억척 같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할머니 인생은 감동을 준다.
 
가난하지만 착실한 구두세공 세묜은 외상값을 받아 그동안 아내와 돌려입던 외출용 털외투를 장만하려고 마음 먹는데 뜻대로 안 된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화가 난 세묜은 보드카를 마시고 돌아오면서 알몸으로 떨고 있는 사람이 불쌍해 집으로 데려온다. ‘살려면 일을 해야 된다’며 미하일에게 구두 수선공 일을 가르친다. 톨스토이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도입 부분이다.
 
어느 날 오만한 부자가 일년이 지나도 모양이 안 변하고 실밥이 터지지 않는 고급장화를 주문하면서 실패하면 감옥에 넣겠다고 협박한다. 왠지 미하일은 멋진장화 대신 슬리퍼용 실로 신을 만든다. 세묜이 대경실색 하는데 그 때 부자의 시종이 황급히 와서 장화 대신 망자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바꾼다. 부자가 집으로 가는 길에 죽은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원래 미하일은 하나님을 모시던 대천사였는데 가련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라는 명령에 불복해 지상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미하일은 남편이 죽고 갓 태어난 아이둘이 클 때까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여인의 목숨을 거둘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톨스토이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우리는 왜 사는 지, 무엇 때문에 사는 지 모르고 산다. 사는 게 만만치 않아서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죽지 못하는 것일까.
 
고통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눈물을 닦아주고 아파해 주지만 내 짐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고통과 절망은 모난 돌뿌리처럼 생의 곳곳에 지뢰로 숨어 있다.
 
맨발로 걸어가면 발바닥이 덜 아프겠지만 멋진 장화를 신었다고 피해가지 못한다. 인생의 환희와 절망, 고통과 가쁨을 번갈아 마주하며 산다.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이유도 모른 체 산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죽지 않고 산다.
 
남은 날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다 해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길이에 연연하지 않고 시간의 바구니에 담을 일기장을 채울 생각을 한다. 손잡고 서로 띠를 만들거나 홀로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본다. 별자리 이름을 다 까먹었다.
 
아름드리 핀 코스모스 향기 맡으며 새벽의 문을 연다. 이토록 소중한,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 살아있다는 경이로운 축복에 목이 메인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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