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죄인인가" 거리에 가득찬 관객들…군산의 밤은 즐겁다
끔찍했던 최장 기간 열대야가 끝이 보인다. 밤마실을 즐길 만한 계절이 돌아왔다. 늦여름 밤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문화유산 야행’이 제격이다. 문화재 야행이 익숙하다고? 지난 5월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뀌면서 야행도 간판을 교체했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전국 각지에서 야행이 열린다. 지난 16일 전북 군산을 다녀왔다. 군산은 여느 도시와 달리 2주(8월 16~17일, 23~24일)에 걸쳐 야행을 진행한다.
문화유산 야행은 이름처럼 문화유산이 밀집한 지역에서 펼쳐지는 야간 행사다. 2016년 10개 도시로 시작해서 올해 46개로 확대됐다. 각 도시가 보유한 문화유산에 따라 행사 성격도 달라진다. 이를테면 경북 경주에서는 신라 시대, 강릉에서는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군산 야행의 배경은 근대다. 군산항이 개항한 19세기 말부터 일본 강점기까지 문화유산이 많아서다.
16일 오후 7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으로 유명한 초원사진관 앞에 모던보이 복장을 한 남성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호외요. 호외입니다”라고 외치며 야행을 소개하는 신문을 나눠줬다. 신문을 보고 신흥동 일본식 가옥을 찾아갔다. 평소 오후 5시까지 개방하고 정원만 볼 수 있던 곳인데 야행 기간을 맞아 가옥 내부를 공개하고 해설까지 제공했다. 군산세관 본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등 주요 시설도 오후 11시까지 개방한다. 자주 지나친 건물들이었는데 야간 조명을 받은 외관이 더 근사했고, 내부에서는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됐다.
구 남조선전기주식회사부터 약 400m 이어진 ‘구영2길’에는 체험 부스가 줄지어 있었다. 태극기, 가죽 제품 만들기가 인기였다. 야행 기간에는 원도심에 자리한 118개 식당, 카페 등 상점이 오후 11시까지 문을 열어둔다. 군산 어디서든 5000원 이상 소비한 영수증을 기념품 지급처로 가져가면 군산 쌀 500g도 준다.
오후 7시 30분, 구 조선식량영단 건물 앞에 청년 배우 약 20명이 모여들었다. 호외신문에 예고된 뮤지컬 ‘영웅’ 거리 공연이 시작됐다. ‘누가 죄인인가’ 등 유명한 노래를 열창하자 따라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공연 팀은 근대역사박물관 마당으로 이동해 공연을 이어갔고, 관광객도 우르르 몰려가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경남 진주에서 온 이남순(53)씨는 “문화유산 야행의 매력에 빠져 여러 도시를 다니고 있다”며 “군산은 공연 수준이 높아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군산 야행은 지역 주민이 주도한다. 공연단과 플리마켓 판매자 모두 군산 사람들이다. 군산대 음악과, 호원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뮤지컬과 관악 앙상블, 국악 공연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근대역사박물관과 근대건축관 뒤편에 마련된 야외 공연장은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덥지 않았다. 23~24일에는 호남 넋풀이굿 등 무형유산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군산 지역 초등학생 27명도 ‘어린이 해설사’로 나선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차원이다. 군산중앙초 3학년 황가윤 어린이의 말이다.
“해설사로 봉사하기 위해 5주간 열심히 공부했어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안중근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최승표(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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