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봉의 시선] ‘역사 전쟁’이라는 이름의 전쟁
79주년 광복절을 보내며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은 광복회와 야당 불참으로 기념식이 두쪽 난 원인이 단순히 터무니없어 보이는 보훈 기관장 인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일에 뉴라이트 혐의까지 뒤집어쓴 김형석 고신대 석좌교수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말이다. 결국 도마에 오른 건 그의 역사관, 역사에 대한 그의 기억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역사 전쟁이다.
두쪽 난 광복절의 일차적인 책임은 역시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독립기념관은, 장기침체로 우경화된 일본의 1982년 역사 교과서 왜곡에 맞서 87년 건립됐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와집을 지어야 한다”라거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설계를 맡으면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건축가 김중업(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 졸업)의 자격을 문제 삼는 등 팽배한 반일 분위기 속에 건축이 진행됐다(김원, ‘독립기념관 자초지종’).
그런 자리에, 기존 『친일인명사전』(2009년)의 수록 인사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바로 잡겠다는 사람을 앉혔으니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광복회와 그 회원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기념식 불참 결정을 존중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지난 주말까지 정부가 건국절 제정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공표하면 기념식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이었던 이 회장은 12일 말을 바꿨다. 막상 정부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해오자 “그렇다면 인사도 철회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응수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인사 결정을 번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것이니 받아들여질 리 없다.
같은 날 광복회가 마치 ‘사상범 간이 식별 요령’ 같은 인상의 ‘9대 뉴라이트 정의’를 발표한 것도 안타깝다. 광복회는 뉴라이트를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라고 규정하고는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거나 ▶식민사관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경우, 심지어 뉴라이트에 협조·동조·협력하면 뉴라이트에 해당한다고 했다. 뉴라이트가 아무리 못마땅하다 한들 다양한 역사 해석을 막는 완고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일제 패망으로 앞당겨진 45년 8·15광복도 당연히 기쁜 날이지만 극도의 혼란 속에 이뤄낸 48년 8·15 정부 수립이 더 의미 있다는 입장에서 건국절을 얘기하는 것이지, 일제의 식민지배 합법화가 뉴라이트의 애초 의도였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만약 광복회의 뉴라이트 사상 검증이 일회성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나. 국민 성금으로 건립 추진되는 이승만기념관이 건국 대통령을 표방했다가는 자칫 말썽날 수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에 관한 뉴라이트 식별 조항에서 ‘은연중’이라는 표현도 걸린다. 일제 식민 통치가 우리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에 밑바탕이 됐다는 과격 단순한 식민지근대화론 주장은 어불성설이지만, 식민지 근대의 존재는 현재 역사학계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장신 교수). 수탈을 더 많이 해갔을지언정 화폐·재정 개혁, 철도망 등 인프라 건설로 식민지 시기에도 성장은 ‘존재’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점을 거론했다가는 ‘은연중’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게 되는 건 아닌가.
결국 학계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뉴라이트 만트라(주문) 모음집 같은 2019년 『반일 종족주의』에 맞서 주류 역사학계가 내놓은 응수가 2020년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였다. 그 안에 실마리가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홍종욱 교수는 ‘일본제국주의 식민 통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에서 『반일 종족주의』의 논리적 자가당착을 날카롭게 비판한 다음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도 있다고 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유독 일본 통치기는 반일과 독립을 절대가치로 해서 서술돼 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시각이 지나치다는 뜻이다. 홍 교수는 “적어도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담담하게 서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국 교과서를 쓰는 주류 사학계도, 뉴라이트도 한 발씩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 아닐까. 기자는 그렇게 이해했다.
신준봉(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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