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팩으로 겨우 버티는 12살 딸…밤낮 없는 폭염에 서러운 이들
밤낮으로 강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기초수급자·고령자 등 취약계층은 유독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니 푹푹 찌는 집안에서 어떻게든 버티면서 눈을 붙이거나, 더위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 조금이나마 돈을 벌거나 생활비를 아끼려다 녹초가 되는 식이다. 에어컨 '풀가동'에 전력 수요가 역대 최대치를 찍고, 전기료가 많이 나올까 걱정하는 바깥 풍경은 먼 나라 이야기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기후 격차'가 더 심해지는 셈이다.
저소득층 에어컨 보급률, 일반 가구의 5분의 1
이는 최근 전국적인 냉방 증가 등으로 역대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93.8GW·8월 5일)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국의 에어컨 보유 대수는 가구당 0.97대(2019년 기준)다. 하지만 서울연구원 조사 결과 저소득층의 에어컨 보급률은 가구당 0.18대(2019년·서울 거주 기준)에 그쳤다. 송씨는 "아이들이 '엄마, 에어컨 달면 안 되냐'고 물어보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원래는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은 (에어컨 있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자고 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새벽부터 무료급식 줄 서는 노인들 "더워도 견뎌야"
새벽 6시부터 줄을 섰다는 서모(81)씨는 "일찍 오지 않으면 못 먹는 경우도 있어서 빨리 왔다. 더워서 힘들지만 견딜 수밖에 없다"면서 "노인들은 따로 갈 데가 없으니 여기 와서 밥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급식소 관계자는 "새벽 4시부터 기다리는 분도 있다.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더운 날 짜증이 많아져서 그런지 노인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딸 만류에도 폐지 주워…쪽방촌은 "앞방 사람 숨져"
고령자가 많은 쪽방촌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이 날 서울 영등포 쪽방촌은 집안에 머무르기 어려울 정도로 열기가 치솟았다. 무더위 쉼터나 냉방이 잘 되는 근처 쇼핑몰이 있어도 이곳 주민이 가긴 어려운 편이다. 3년 동안 살았다는 김모(69)씨는 "요즘은 안에 있으면 찜통이나 다름없다. 특히 창문 없는 방은 못 참을 정도"라면서 "다들 밤에 수시로 깨서 밖에 잠깐 나왔다 들어가는 식이다. 앞방에 살던 사람은 엊그제 숨졌는데 더위 때문에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더위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협하는 셈이다.
더 벌어지는 기후 격차…"주거빈곤 조사 등 필요"
일상화된 기후변화 속에 폭염·혹한에 따른 계층 간 기후 격차가 점차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 빈곤층이 많은 쪽방촌 등엔 폭염·한파를 적절히 견디게 해주는 장치가 거의 마련돼 있지 않다. 냉난방이 잘 되는 쉼터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경 초록우산 복지사업본부장은 "정부는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 차원에선 냉·난방 물품 지원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이뤄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론 반지하·옥탑방 같은 열악한 주거 빈곤 환경에 놓인 아동 가정 등의 실태조사를 거쳐 맞춤형 지원에 나서야 기후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종훈.문상혁(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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