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불쌍한 나에게
멕시코 선교를 다녀왔다. 지난번보다는 적은 수의 환자를 보았다. 고된 노동에 관절염이 생겨 잘 걷지도 못하는 호세, 어릴 적 사고로 허리를 다쳐 요추굴곡이 된 31살의 아기엄마 알리사, 당뇨로 두 발의 감각을 잃은 알리스, 그 외 일곱 명.치료 전,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그들도 기도했다. “그라시아스 디오스(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종종 들렸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 나와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선교를 목적으로 간 사람이고, 그들은 현지인이다. 나는 지상 천국인 미국에 살며, 그들은 마약과 범죄로 집 밖에도 잘 나가지 못하는 티후아나에 산다.
그들이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집에는 물도 나오지 않아 지붕에 큰 드럼통을 올려놓고 물을 받아 쓴다. 집은 단칸방 판잣집, 아이도 어른도 씻지 못해 냄새가 나고 먹는 음식도 형편없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나온다.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루 선교지이니까, 그 정도는 하느님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갔지만 힘들었다. 아이들은 먼지와 때 묻은 손으로 “원 달러(One dollar)”라며 손을 내민다.
일정이 끝나고, 다섯 시간이라는 국경의 기다림 끝에 미국에 도착했다. 다시는 냄새나는 답답한 선교지는 가지 말아야지 하며 일주일이 지났다. 되풀이되는 삶에 마음에는 또 불평이 생긴다. 무엇이 자유인가를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
멕시코에서 “원달러”를 말하며 내밀던 아이의 손과 1000달러짜리 노트북을 사달라고 내미는 내 아이의 손은 무엇이 다른가?
냄새나고 몸은 아프지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그들과 모든 것을 갖고도 불평과 투정만 하는 나의 기도는 얼마나 다른가? 가진 것이 없어, 알지 못해, 필요성을 못 느껴 무소유의 자유로움을 가진 그들, 그에 비해 많은 것을 갖고도 더 갖고자 하는 내 생활의 허덕임은 얼마나 허무한가?
어떻게 나는 그들처럼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은 악조건 속에 살면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을까?
지금의 행복과 주어진 삶에 충실한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다. 그들의 미소가 그리워진다. 그들처럼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하고 싶다.
“원달러”라고 내미는 아이들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고 싶다. 냄새나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다. 그들을 만나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욕심과 교만에 싸인 내 눈을 그들의 맑은 미소로 씻고 싶다. 그들에게 배우고 싶다.
다음 달 마지막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이제 잠을 청한다, 불쌍한 나에게.
이영석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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