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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FBI 미행도 모른 채 금품 줬다

국정원 직원 카드로 명품 계산
대통령 방미 칭송 기고 요청도
500불 주며 매체들 게재 부탁
박근혜 때부터 현 정권까지
어설픈 아마추어식 외교 망신

연방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2021년 4월 16일 미국 워싱턴DC의 명품샵에서 국가정보원 요원이 수미 테리에게 3450달러 가격의 루이뷔통 핸드백을 선물하기 위해 결제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연합

연방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2021년 4월 16일 미국 워싱턴DC의 명품샵에서 국가정보원 요원이 수미 테리에게 3450달러 가격의 루이뷔통 핸드백을 선물하기 위해 결제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연합

한국 국가정보원(원장 조태용·이하 국정원)이 미 정보기관 고위직 출신 한인 인사를 명품백과 각종 향응으로 포섭한 것을 두고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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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는 한국 정부 기관 관계자들의 금품 제공 활동 등이 현장 사진 등과 함께 구체적이고도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행적을 두고 저급한 행태라는 비난의 목소리까지 일고 있다.

수미

수미

연방검찰은 중앙정보국(CIA) 선임 분석관 출신이자 대북 정보 전문가로 알려진 수미 테리(사진) 외교 협회 선임연구원을 지난 16일 기소와 동시에 체포했다 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일단 석방됐다. 한국 국정원 직원들과 접촉한 뒤 선물과 향응을 받은 대가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고와 인터뷰, 의회 증언 등을 한 혐의다. 테리 선임연구원에게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그에게 간첩(espionage) 혐의를 부과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비밀리 해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리인 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우드로우 윌슨센터(WWICS)에서 한국역사와 공공정책 연구를 위한 현대차 한국재단 디렉터도 맡았었다.  

 
30페이지가 넘는 검찰 공소장에는 국정원이 테리 선임연구원을 대상으로 명품백 등을 제공하며 포섭한 행적이 자세히 묘사돼있다.  
 
공소 내용에 따르면 한국 국정원 담당 직원 3명은 최근 10년 동안 테리를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의회 증언 내용에 영향을 주고, 한국의 일본과의 화해 노력을 반기는 기고 글을 요청한 뒤 금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돌체앤가바나 코트,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 루이뷔통 핸드백 등을 사주는가 하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향응을 제공하고 현금까지 제공했다.
 
공소장에는 “명품 구매는 한국의 국정원 직원의 신용카드로 구매했고 외교관 신분에 따라 판매세는 부과되지 않았다”며 “테리는 2019년 11월경 (국정원 직원이 사준)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반품하고, 돈을 더해 4100달러짜리 크리스찬 디올 코트를 사기도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정원 직원들은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 의미 부여를 담은 글을 주요 매체들에 보내게 하고 그 대가로 500달러를 제공하기도 했다. 공소장에는 테리가 국정원의 이런 제안에 “무슨 내용을 쓰면 되느냐”고 질문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방식으로 금품을 받고 한국에서 방문한 외교 인사들을 국무부 고위 간부와 회의를 주선해주기도 했다.
 
심각한 건 수년간 연방수사국(FBI)이 따라붙고 있었는데도 국정원은 어설픈 포섭 행위를 지속했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우려를 넘어 웃음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국정원은 미 정보당국의 추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대사관의 공식 수표를 대금 결제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전화나 문자 내용이 수색될 수 있음에도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의 대화를 이어왔다.  
 
테리 선임연구원에 대한 추적이 시작된 지난 2013년부터 FBI는 한국 외교부 소속 차량에 대한 미행은 물론 명품 업소들 내부 카메라, 고급 식당 내부 장면 등을 사진 증거 자료로 수집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FBI는 테리 선임연구원과의 면담을 통해 국정원의 행태가 위험할 수 있다며 수차례 경고까지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FBI가 사실상 한국 국정원의 모든 행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국정원의 이러한 아마추어식 접근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10년 넘게 지속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현재 국정원은 해당 활동이 누구의 지시로 이뤄진 것인지,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허용된 것인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금품을 제공하고 미 고위 관리들과의 만남을 가진 한국 인사들이 누구인지에도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향후 한국 인사들이 밝혀질 경우 이번 국정원의 어설픈 포섭 행위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5세로 고위직에 진출한 한인 공직자들의 윤리 의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시민이자 국가 공무원으로 높은 국가 안보 의식을 갖고 퇴임 후에도 품위를 지켜야 했지만, 테리 선임 연구원은 한국 기관의 명품백과 금품 유혹 앞에 국가의 신뢰를 저버린 셈이 됐다.  
 
워싱턴 DC 외교가에서 활동해온 한 한인 전문가는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500달러에 한국의 홍보원이자 대리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미국인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무모한 국정원의 행태와 전 공직자의 사욕이 빚어낸 부끄러운 사건으로 한미 외교사에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에서 해외 정부의 정보원이나 로비스트로 일할 경우에는 법무부에 ‘외국 대리인 등록법’에 따라 신상 등록을 해야 하며 정해진 규정 안에서 활동을 보장받는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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