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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합당한 인구 대응 정책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그 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와 대통령실 저출생 대응 수석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일·가정 양립 지원 확대, 아동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출산 가구의 주택 마련 비용 경감 등을 골자로 하는 정책들도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했다. 연합뉴스
이번에 발표된 대책들은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부모의 금전적·시간적 비용을 덜어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필자가 판단하건대,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소득 중상위 부부의 출산 유인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육아 휴직 지원금 상한액을 25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은 고임금 근로자가 임금 손실 때문에 육아 휴직을 쓰기 어려웠던 사정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주택 공급 확대와 대출 기준 완화는 안정된 소득 기반은 있지만 집을 마련할 목돈이 없었던 부부의 출산 결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육아휴직 지원 등은 긍정적이지만
비상사태 임하는 간절함 잘 안 보여
납세자에게 재원확보 방안 설득하고
‘사각지대’ 저소득층에도 눈 돌려야

이처럼 중산층 이상에게만 실질적인 혜택을 준다는 비판이 있지만, 필자는 이번 대책이 단기적인 처방으로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서 빠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출산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득 중상위층에 속해 있다. 필자의 연구 결과는 현금 및 보육 지원 정책이 소득 4분위(상위 60~80%) 가구의 합계 출산율만을 높였음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을 여건과 의사가 갖추어진 사람들의 등을 살짝 떠밀어 출산의 경계를 넘게 하는 전략은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정책이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반영된 현 인구문제의 엄중함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비상사태 선포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인구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이를 해결하겠다는 결의로 읽힌다. 비상사태 대응은 막대한 비용 지불이나 사회적 갈등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중요한 과업을 뚝심 있게 추진하는 담대함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국민의 협조와 고통 분담을 구하는 간절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정책에는 ‘비상사태’ 선언에 어울리는 담대함이나 간절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해야 국가 비상사태 선언을 뒷받침하기에 합당한 대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 첫째, 충분한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에 나온 정책의 재원은 현재로써 모호해 보인다. 정부가 강조해온 예산 재구조화만으로는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고, 자칫 아랫돌을 빼서 윗돌로 올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육아 휴직 지원 강화는 현행대로 고용보험 기금에 의존할지, 아니면 가입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건강보험과 같은 다른 재원을 활용할지 불확실하다. 비상한 인구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며 누군가는 이를 부담해야 한다. 재원 문제를 덮어두어 정책 의지를 의심받기보다 인구문제 대응을 위한 지출이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그 편익은 다수 국민과 다음 세대에 공유된다는 사실을 납세자에게 설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둘째, 정부 정책의 실질적인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거나 소득이 낮은 청년들은 이번에 내놓은 대책에서 비켜나 있다. 예컨대 육아 휴직 급여 인상과 대체인력 지원은 임금수준이 낮고 대체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주택마련 대출요건 완화도 집 장만이 불가능한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필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최하 분위 여성 합계 출산율은 소득 중상위층 여성 합계 출산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의 현 상황이 유지되는 한 획기적인 출산율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결혼과 출산의 경계에 다가올 수 있으려면 한층 강화된 지원이 필요하다. 소득계층에 따른 차등지원은 그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을 강화하는 정책도 도움이 될 것이다.

3월 14일 교육부와 통계청은 전국 초·중·고 약 3천개교 학생 약 7만4천명을 대상으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7조1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1조2천억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뉴시스
마지막으로,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구조적 문제를 더는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정부 정책이 초점을 둔 과도한 양육비용은 저출산 현상의 표피적인 요인일 뿐이다. 그 근원에는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확대와 이로 인한 노동시장과 교육에서의 극심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자녀를 키우는 비용을 높이는 한편, 자신의 생애와 다음 세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는 데는 오랜 기간에 걸친 꾸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 충돌을 조정하고 설득과 타협을 통해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과업도 요구된다. 무척 어렵고 언제 그 결실을 얻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드러난 정부의 결의가 진정이어서 그 힘든 책무를 능히 감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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