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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멸종 위기에 처한 ‘공명판 숲’의 후예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나는 ‘공명판 숲’에서 자랐다. 내 고향 알래스카주 동남부에는 몇몇 세계적인 악기들의 공명판에 쓰이는 시트카가문비나무와 황삼목이 빼곡한 통가스(Tongass) 국립산림지가 있다. 이 수림에서 자란 나무로 공명판을 만들면 현(絃)으로부터 줄받침을 통해 전달되는 파동이 음악으로 바뀌면서 특히 풍부한 소리를 낸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이자 금(琴) 연주의 대가 혜강(嵇康)은 3세기에 그의 저서 ‘금부(琴賦)’에서 악기의 재료로 쓰기 좋은 수종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천 년 동안 고요히 기다리며 강건하게 자라났다”라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음악 점점 보편화하며
실음악의 감동 느낄 기회 줄어
삶의 흔적 담기지 않은 AI 음악
감상자에게 어떤 공감을 줄까

김지윤 기자
최근 나는 친구와 함께 거문고를 사러 중국 금 제작으로 유명한 악기사에 갔다. 제작자는 전시용 악기가 부족하다고 사과하면서 젊은이들이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대형 악기를 사지 않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요즘 거문고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전문 연주자보다도 취미로 하는 분들인데, 특히 은퇴한 한의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마침 같이 온 내 친구도 취미로 거문고를 시작하는 전직 한의사여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친구는 원래 사려던 것보다 훨씬 좋은 거문고를 구입한 뒤 첫 수업을 들으러 마산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우리 집 옆 아파트 단지 쓰레기 집하장에 버려진 하얀색 업라이트 피아노를 발견했다. 요즘 들어 버려진 악기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서울아트센터 주차장 한 층 전체에 폐기된 그랜드 피아노들이 가득 찬 장면을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산맥이 새겨진 이 하얀 피아노가 유난히 눈에 띄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1990년 한국 악기의 18%는 통가스 숲에서 난 시트카가문비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중고 피아노의 프레임 안쪽에 타원형의 시트카가문비나무 라벨을 발견하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 피아노의 원재료도 나처럼 알래스카주 동남부에 살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 어찌어찌 한국까지 먼 길을 떠나 와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한 것이다. 나는 버려진 악기를 보고 안타까워졌지만, 동시에 악기 연주자들도 언제쯤 되면 문화적 쓰레기 집하장에 버려지게 될지 궁금해졌다. 나무나 생음악이나 비싸기는 마찬가지니까.



오래전부터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가야금 명주실과 오동나무 울림판을 만져 보게 하고, 실제 가야금 공연을 관람하라는 과제를 준다. 한 번도 가야금 공연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공연을 안 가는 학생들도 점점 많아진다. 핸드폰으로만 연주를 듣던 학생들이 공연을 직접 보면 실제 연주에서 경험하는 풍부한 소리와 에너지에 매료된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더 디지털화하면서, 가끔 틀린 음정을 내기도 했던 생음악이 완벽한 공정을 거친 음악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유령 예술가들이 AI로 생성 및 재조합한 ‘노래’들을 듣는 일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2022년 스웨덴 신문 ‘다옌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는 단일 AI 프롬프터가 수백 개의 예명으로 몇천 편의 곡을 냈는데 스포티파이에서 약 150억 번이나 스트리밍되었다고 보도했다. 비틀즈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스타인웨이사(社)는 최고급 피아노를 제작할 때 오래된 시트카가문비나무를 선호한다. 이런 나무는 1인치당 8~12개의 촘촘한 나이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인웨이사의 웹사이트는 “이처럼 고운 나뭇결은 피아니스트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공명판 끝까지 전달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목재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내는 풍부한 소리는 그 나무가 숲에서 겪어낸 경험을 반영한다. 매년 나무는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생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어 낸다. 최근까지 음악은 그 곡을 만든 작곡가의 인생 여정과 비슷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노래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경험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기 때문에 마음에 와 닿는다.

판소리에서 전해지는 선명한 고통과 기쁨이든, 송가(頌歌)가 일으키는 자부심이든, 노랫말과 가락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을 통해 감상자에게 어떤 정서를 일으키고 공감을 주었다. 플라스틱 공명판에 나이테가 있지 않듯이 AI가 생성하는 음악은 프로그래머가 실제로 겪어낸 삶의 흔적을 갖고 있지 않다.

음악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어떤 젊은이들은 전축 바늘 아래 돌아가는 LP판의 촘촘한 홈 끝에서 나오는 불완전하지만 따뜻하고도 진실된 음악에 푹 빠져 턴테이블을 구입한다. 이런 유행을 볼 때 나는 거문고 대가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거문고의 명주실이 판과 마찰하면서, 또 대나무와 가죽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의 졸박미(拙樸美)에 반하는 젊은이들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본다. 설령 이런 소리들이 과거로 사라지고 결국 헤드폰으로 전자화된 음악만 듣게 되더라도, 이 나무들은 계속해서 자기 생애를 담은 촘촘한 나이테를 엮어 나갈 것이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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