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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안보 적색경보 북·러 밀착…한국형 회색지대 전략으로 대응하자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한반도,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의 안보 지각이 흔들리고 있다. 진앙은 지난달 19일 평양이다. 이날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핵·미사일 개발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각 국제적 왕따(Pariah)로 전락한 북한과 러시아가 손잡은 것이다. 조약엔 군사동맹의 성격을 지니고(4조),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며(5, 16조),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에 넘겨지는(10조) 등 안보적 우려를 자아낼 소지가 다분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방북에 앞선 지난달 5일 “한·러 관계가 악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분쟁 지역(우크라이나)에 어떠한 무기 공급도 없어 (한국에)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니 2주 후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감사하다”던 러시아의 뒤통수
북·러 조약 군사동맹 발전 가능성
김정은, 신냉전 대결서 이득 노려
레드라인 못 넘게 새 전략 필요

북·러의 이번 조약에선 ‘긴밀한 의사소통’‘협동을 강화’‘적극 협력’ 등 문구가 자주 보인다. 앞으로 북한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선 러시아와 한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김정은은 선대부터 내려온 북한의 국시(國是) 중 ‘통일’을 져버리더니 이번엔 ‘자주’까지 내치려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간 ‘신냉전’ 대결



이번 조약은 강도가 커 여파가 한반도를 벗어났다. 북한을 매개로 중국과 러시아가 엮이는 삼각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최근 안보 협력을 넓히고 있는데, 북한·중국·러시아와 충돌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충돌은 신냉전(New Cold War)의 단면이다. 미국이 이끄는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간 전 세계적 대립을 신냉전이라 부른다. ‘미국 대 소련’의 구 냉전 때도 그랬지만, 신냉전에선 동북아시아가 가장 뜨거워질 것이다.

이 같은 정세는 김정은이 바랬던 것이었다. 김정은은 2021년 9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으로 변화된 것이 국제정세 변화의 주요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언급한 뒤 같은 해 9월 “조성된 국면을 군력 강화의 더없이 좋은 기회로 삼겠다. 대외관계를 주동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은에겐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1960년대 첨예하게 대립했던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여 잇속을 차렸던 것처럼 신냉전에서 한몫을 챙기려 하는 계산이 엿보인다.

이는 김정은의 오산일 수도 있다. 북·중·러 관계는 각자 다른 이익에 따라 잠시 맺어진 ‘정략결혼’과 같다. 북·중·러 연대의 기반은 반미(反美)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결합력이 단단하지 못하다. 언제라도 속셈이 달라지거나 수가 틀리면 금세 대오가 무너질 것이다.

강대국의 세력권과 전쟁의 관계를 다룬 『세 개의 전쟁』 저자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기본적으로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또 미국과 유럽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냉전 대결에 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에겐 신냉전 구도가 일시적으로 유리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론 김정은 정권의 존속과 4대 세습까지 보장해주진 못할 것이다.

러시아의 셈법 바꿔야

그렇다 하더라도 북·러의 밀착은 당장 한국의 안보에 적색경보를 울렸다. 북한이 러시아의 뒷배를 믿고 무력 도발을 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을 들여와 낡고 뒤떨어진 무기를 현대화하려 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새 협정 내에서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은 군사용 정찰위성, 극초음속 미사일, 핵추진 잠수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탄두 소형화 등 관련 기술을 러시아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술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한·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더 고도화하는 데 필요하다.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적 도움으로 핵·미사일 신무기를 만들어 낸다면 그야말로 한국엔 악몽이다.

우리의 전략적이고 치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지원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러시아를 움직일 지렛대론 부족하다. 한국이 레드라인(살상용 무기 지원)을 넘더라도 러시아는 꿈쩍도 안 할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 대한 지원을 대놓고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결속을 단단히 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우군을 확보하는 노력은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 유리한 판을 짜야만 한다. 그러려면 ‘한국형 회색지대 전략’을 써보자. 회색지대 전략은 국가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안보 목표를 성취하려는 전략적 행위다. 흔히 중국과 러시아가 회색지대 전략에 능하다고 한다.

한국형 회색지대 전략은 레드라인은 넘지 않지만, 그 직전까지 가는 행위로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짜증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로부터 받은 F-16 전투기를 하반기 전투에 투입할 전망이다. 전투기를 운용하려면 정비가 중요하다. 한국이 F-16 부품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다. 또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항공기를 유지·보수하는 실력으론 세계 최고 수준인 공군 정비진이 우크라이나 정비진을 교육하는 방법이 있다.

부품과 정비 기술은 살상용 무기는 아니지만, 우크라이나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이다. 우크라이나가 F-16을 활발히 띄우면 러시아는 곤란해진다. 누르면 러시아가 아파할 혈(穴)을 한국이 많이 찾아낸다면 결국엔 러시아가 북한과의 조약에 대한 손익 계산서를 고쳐 쓸 가능성이 크다.





이철재(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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