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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증세' 아우성…물가 올라 소득 줄었는데, 세금 더 낸다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적인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었는데, 세금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세금과 물가를 연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계속된 물가 오름세 속에서 명목소득이 상승했고, 여기에 맞춰져 있는 세율도 조용히 오르며 ‘소리 없는 증세’가 벌어졌다는 지적에서다.

9일 세무업계에 따르면 한국세무사회는 최근 여당에 “물가 상승에 의한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하기 위해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초로 산출한 물가연동지수를 과세표준(과표) 구간‧세율‧공제에 연동하는 물가연동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공식 제안했다. 예컨대 소득세의 경우 각 과표 구간별로 기본세율을 곱해 부과한다. 실질소득은 그대로라도 명목소득이 오르면서 납세자가 적용받는 과표 구간도 높아지고 세 부담도 커진다는 게 세무사회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 과세표준 1400만원 이하였던 사람은 과표의 6% 세율을 적용받는데, 이 사람의 명목 근로소득이 상승해 과표 1400만원을 넘으면 기본 84만원에 1400만원 초과 금액의 15%를 더 내야 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정부가 지금껏 과표 구간을 물가에 맞춰 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2010년부터 유지하던 소득세 과표 구간을 13년 만인 지난해 수정했다. ‘1200만원 이하’ 구간을 ‘1400만원 이하’로, ‘4600만원 이하’를 ‘5000만원 이하’로 각각 올렸다. 그러나 2008~2022년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5%에 이른다는 점에서 물가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과표 ‘8800만원 초과’ 구간은 2008년 이후 물가 상승을 반영한 조정을 하지 않았다.

연간 2000만원이라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도 11년째 그대로다. 한국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2013년 3134만원에서 지난해 4725만원으로 51% 올랐는데, 과세기준은 요지부동이니 과세 대상이 늘 수밖에 없다.

과표뿐 아니라 각종 공제액 역시 물가와 별개로 고정돼 있다. 세 부담이 커져도 공제액이 그대로면 비과세 혜택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상속세의 경우 기재부가 이달 세법 개정안을 통해 공제 한도 상향을 검토하고 있는데, 상속세 공제 금액은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30억원) 등 1997년 이후 변화가 없는 상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도 물가연동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입법조사처는 “해외 주요국은 주로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물가 연동 지수로 활용하고 있다”며 “물가 연동 주기는 매년 또는 3년 등 일정 기간을 기준으로 하거나 누적 물가 상승률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때만 물가에 연동하도록 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2개국이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CPI의 누적 증가율을 반영한 ‘생계비지수’를 기준으로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과표뿐 아니라 각종 공제 항목에도 물가를 연동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CPI 누적 증가율이 5% 이상일 때 소득세를 조정한다.

그러나 기재부는 물가 연동 세제 도입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득세는 누진세제를 적용하다 보니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이 내는데, 이를 물가에 연동하면 고소득자부터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며 “대부분의 과표 구간에서 보편적으로 세 부담이 줄어들지만, 그 이득은 고소득자에게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족한 세수를 더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소득세 외에 주세·유류세 등에 물가 연동을 도입했을 때 세 부담이 증가하거나 세제가 과도하게 복잡해지는 문제도 있다.

전문가는 물가 상승이 세제의 예측 가능성·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물가 연동 세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한국은 소득세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물가 연동 세제를 도입하면 전반적인 세수가 줄어들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명목 금액을 기준으로 과표와 세율을 고정해 놓으니 물가가 상승하면 세금도 늘어나는 ‘인플레이션 택스’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실질적인 세 부담을 안정화하고 세제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물가 연동 세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빈(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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