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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의 퍼스펙티브] 가자 휴전 뒤 자금 동결 해제로 미국-이란 화해 가능성

개혁파 대통령 배출한 이란 대선과 변화 전망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변호사
이란의 변화 열망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로 치른 이란의 대통령 보궐 선거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외부 관찰자들은 신정(神政) 독재국가 체제의 이란 국민이 선거를 통한 변화라는 희망을 더는 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된 2021년 이란 대선의 경우 역대 최저 투표율(48%)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란 국민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3년 대선에서 이란 국민은 온건 중도파 하산 로하니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1차 투표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이란 국민의 변화 열망이 대미 핵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1차 합의 때보다 난제 많아…신뢰 쌓아 단계적 진전 이뤄야
미국 대선이 변수…바이든 재선 땐 핵 협상 복원 논의될 듯
트럼프 집권 땐 쉽지 않아…깜짝 협상 가능성은 배제 못 해

2013년 온건파 당선 후 핵 합의 성공

그는 오랜 적대국이던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2015년 극적으로 이란 핵 합의를 타결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 측의 긍정적인 변화에 호응해 열렸던 화해 무드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끝나고 만다.



더구나 2022년 가을 이란의 젊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은 이란 전역으로 번진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여성, 생명, 자유(Woman, Life, Freedom)’를 기치로 내건 시위는 이란 체제를 뿌리째 흔들었다.

김경진 기자
그러나 이란의 신정 독재체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란 안팎에서는 이번 선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란에서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대통령이 최고 권력자가 아니다. ‘라흐바르’라고 불리는 종신직 최고지도자가 핵 문제를 비롯한 주요한 사항들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입김이 구석구석 서린 ‘헌법수호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선거가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우세했다.

여섯 명의 대선 후보 중 다섯 명이 보수파였고 나머지 한명이 온건 개혁파로 분류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였다. 그는 전(前) 보건부 장관이자 현직 이란 의회 의원(5선)이며 심장외과 의사 출신이다.

의문사 촉발한 히잡 착용 완화 주장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미국 등과 핵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아울러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를 촉발한 히잡 문제에 대해서도 “히잡 착용이 이슬람 교리에 따른 것은 아니다”라며 엄격한 집행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1차 투표에서 42.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 5일 결선 투표에서 2위인 사이드 잘릴리 후보를 300만 표 차이로 앞서며 54%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경민 기자
사실 1차 투표에서 온건 개혁파 후보에게 일격을 당한 보수파가 2차 투표에서 결집하면 역전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많았다. 더군다나 1차 투표율은 39.9%로 지난 이란 대선은 물론이고,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치른 이란의 역대 대선 중 가장 낮았다. 수감 중인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여성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 등 상당수 이란 개혁파 주요 인사들이 선거 보이콧을 주장했을 정도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등이 투표 참여가 체제의 정당성을 보여준다며 투표를 독려한 것에 대하여,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성향의 이란 국민이 반발하여 대거 기권한 것이 낮은 투표율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이 페제시키안 후보의 1차 투표 선전(善戰)에 고무되어 2차 투표에 대거 참여하여 2013년과 같은 이변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란 국민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의 나라를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피시키고 자유로운 나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표출한 셈이다.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했던 보수파 라이시 대통령과는 달리,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일부다처제가 인정되는 이슬람 국가에서 상처(喪妻) 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자식들을 홀로 키운 사람이다. 예상보다 강했던 이란 국민의 변화 열망을 결과로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란 대통령 위엔 종신직 최고지도자

다만 페제시키안 후보 자체가 헌법수호위원회로부터 대선 출마 허락을 받은, 즉 신정 독재체제가 ‘허락한’ 온건 개혁파라는 점에서 그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있다. 더군다나 대통령 위의 상왕 격인 종신직 최고지도자가 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 안보 문제 등 국정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이란에서 대통령이 온건 개혁파로 바뀐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그러나 9년 전 핵 합의 타결 때에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란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온건 중도파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과 협상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번 이란 대선을 통해 마흐사 아미니 의문사 이후 대규모 시위에서 표출되었던 이란 국민의 반체제 정서가 여전함을 실감했을 하메네이가 국민의 지지를 업고 있는 페제시키안의 신정부와 계속 반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란보다는 미국 측이 쥐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이란 대선을 앞두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내놨다. 미국은 대선 경쟁이 한창이라 당장 어떤 입장 변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지난 2013년 온건 중도파 로하니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보다는 좀 더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 전쟁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이란은 하마스와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 후티 반군 및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전에 한국에 있던 이란 동결 자금 8조원의 대부분을 이란에 우호적인 카타르로 옮긴 후, 이란이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는 대신에 이란이 억류했던 미국인 인질을 석방하는 합의가 타결됐다. 하지만 정작 인질이 석방된 후에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일어나 위 자금이 이란 측에 넘어가지 못하고 카타르에서 다시 동결됐다.

미국과 이란이 관계 개선을 하려면 일단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가자 전쟁의 휴전 협상이 마무리돼야 한다. 이후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미국도 카타르에 묶여 있는 동결 자금을 이란이 사용하도록 허용하면서 관계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을 뗄 수도 있을 것이다. 핵 협상 복원은 그다음 단계다.

만일 이란 핵 합의를 주도했던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한다면, 개혁파가 다시 집권하게 된 이란의 변화와 맞물려 이란 핵 합의 복원 논의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지난 2018년 5월 이란 핵 합의를 일방 파기했던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이란 국민의 변화 열망이 만들어낸 기회의 창이 다시 닫히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적 전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예측 불허의 트럼프인지라 북한 김정은과의 담판처럼 이란과의 극적인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 입장에선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왔고, 지난해 가자 전쟁이 시작되며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까지 더해졌다. 최대 경쟁자인 중국과의 신냉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의 국력을 다른 곳에 과도하게 투사(overstretch)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뿐만 아니라 고립주의적 경향의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더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란 경제 제재 풀리면 한국에도 기회

만일 이란 핵 합의가 복원되면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는 중동의 갈등을 식혀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단비가 될 것이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돼 이란산 원유가 세계 시장에 풀리면 이는 이른바 원자재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아 생긴 끈적끈적한 물가 오름세(sticky inflation)를 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아가 인구 8000만 명의 산유국인 이란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한국의 건설, 가전, 휴대폰, 자동차 업계에도 청신호가 될 것이다.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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