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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의 글로벌 리포트] 신냉전 최전선 됐다…바다 달구는 미·중 해저케이블 전쟁

이승호 국제부 기자
바다 밑이 ‘미·중 신(新)냉전’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를 30바퀴 이상 휘감을 수 있는 140만㎞ 길이의 해저케이블 시장을 놓고 두 나라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촘촘한 제재에도 중국이 공급망 자립으로 버티자, 미국은 자국 빅테크와 외교력을 앞세워 중국 기업 축출에 나섰다. 반면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중심 개발도상국)를 공략하며 반격을 노리고 있다.

중국 급부상, 미·일·프 ‘3극 체제’ 균열

이 분야는 지난 수십년간 3개 나라의 독무대였다. 미국의 서브컴, 일본의 NEC, 프랑스의 알카텔 서브머린 네트웍스가 세계 시장을 지배해 왔다. 전 세계에 깔려 있는 해저케이블 500여 회선의 약 90%를 이들 3사가 부설했다.

140만㎞ 시장 놓고 치열한 대결
중, 공격적 투자로 시장 흔들어
미, 보안 이슈 빌미로 중국 제재
“승자가 세계 데이터 유통 장악”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진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를 포함하고 해저케이블 육성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서방 주도의 해저케이블 컨소시엄에 투자하는 데 머물렀던 중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65개의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해저케이블의 주요 건설·공급자로 부상했다. 전 세계에선 10%, 아시아·태평양 일대에선 40%에 육박한 시장점유율로 미·일·프 ‘3극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

세계 데이터 유통 99% 담당

지난 2017년 중국 푸젠성 메이저우다오(湄州島)에서 푸젠송변전공사 직원들이 해저케이블 포설선에서 해저케이블 매설에 나서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 주석이 눈독을 들이는 해저케이블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조원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학술지 ‘과학기술정책’에 “해저케이블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의 등장으로 급증한 데이터 트래픽의 대부분을 담당한다”며 “지난해 세계 데이터 통신의 99%, 하루당 22조 달러(약 3경415조원) 이상의 국제은행간 통신협정(SWIFT) 금융 송금이 해저케이블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해저케이블망을 지배하는 국가가 사실상 세계 데이터 유통을 좌지우지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맹추격에 긴장한 건 미국이다. 정보 탈취와 사보타주(파괴 공작)에 취약한 해저케이블 시장을 지키겠다며 중국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2019년 화웨이 자회사 화웨이머린네트웍스(현 HMN테크), 2020년 우한 파이버홈(파이버홈)을 블랙리스트(수출통제기업 명단)에 올리고, 이들이 어디에서든 미국 기술과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게 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첨단제품을 못 써 고전하는 중국 반도체 업계처럼 해저케이블에서도 대(對)중 제재로 산업을 고사(枯死)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중 공급망 자립에 미 고사작전 무산

해저케이블은 그러나 반도체와 달랐다. 중국은 관련 기술에 이어 공급망까지 자립하며 버텼다. 2022년 별세한 ‘중국 광섬유의 아버지’ 자오쯔썬(趙梓森) 중국공정원 원사는 “중국은 2017년 해저케이블을 자체 제조·설치할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파이버홈의 우모 이사는 닛케이아시아에 “중국은 모든 해저 케이블 부품을 제조할 수 있다”며 “미국의 블랙리스트 지정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이버홈은 핵심 장비를 자체 제작하고 케이블 매설 선박도 보유하고 있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와 케이블 부품도 만든다. 해저케이블의 ‘본체’인 광섬유케이블의 주요 생산국도 중국이다. 양쯔 광섬유케이블, 헝통그룹, 파이버홈, 장쑤중톈기술 등이 전 세계 생산 시장의 약 35%를 차지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점도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미, 보조금·빅테크 동원해 중 기업 축출

기술적인 격차로 압도하기 어렵게 되자 미국은 외교·경제적 수단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클린 네트워크 계획’으로 행동을 본격화했다. 통신 시설 설치 사업에서 중국 기업의 참여를 배제한다는 게 골자다.

지난해 2월부터 미 서브컴이 건설 중인 싱가포르-프랑스 해저 케이블 구축사업(SeaMeWe-6)이 대표적이다. 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 12개국을 거치는 1만9200㎞ 길이의 대형 프로젝트는 당초 HMN테크가 건설하기로 잠정 결정됐다가 2022년 서브컴으로 사업자가 변경됐다.

여기엔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무역개발청은 SeaMeWe-6이 통과하는 국가의 5개 통신사에 서브컴을 사업자로 선정하는 대가로 380만 달러(약 53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2021년 세계은행이 태평양 섬나라 3곳을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구축 사업을 중단한 것도 HMN테크와 계약하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압박 때문이었다.

구글·메타 등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빅테크가 해저케이블 시장의 ‘큰 손’인 점도 활용하고 있다. 미 외교관들은 현지 통신기업에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중국 업체를 선정하면 빅테크가 해당 케이블을 쓰지 못한다”고 경고 중이다. 미국은 또 자국 기업이 중국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홍콩에 해저케이블을 연결하거나, 남중국해를 통과해 신규 케이블을 짓는 걸 막고 있다. 중국이 투자한 해저케이블이 미 영토에 연결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에 중국의 해저케이블 분야 성장은 주춤한 상태다. 시장조사기관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2021~2025년에 건설됐거나 건설 예정인 해저케이블 46만㎞ 중 중국 기업의 비율은 8%로, 미국(31%)과의 격차가 이전보다 커졌다.

“하나의 세계, 두 개의 시스템 현실화”

그럼에도 중국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현지 정부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고 가격 경쟁력 등을 앞세워 글로벌사우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파이버홈의 한 임원은 “(미국 압력으로) 미국과 유럽 등은 어렵지만,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에선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주변 해저케이블 설치 허가에 시간을 끌며 참여한 미국 기업에 손실을 입히는 방법도 쓴다.

문제는 미·중의 과열 경쟁이 디지털 세계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안토니아 흐마이디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중국 주도의 해저케이블이 병존하는 ‘하나의 세계, 두 개의 시스템’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닛케이아시아는 “AI 발달 등으로 해저케이블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이 더해지며 관련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호(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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