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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의 시선] 서울국제도서전이라는 현상

신준봉 논설위원
차분하게 정산해봐야겠지만 2022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국제도서전은 성황리에 끝난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 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에 따르면 올해 도서전 관람객은 지난해보다 15%, 2만 명가량 늘어난 15만 명이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달 26~30일, 5일간 열렸으니 하루 평균 3만 명이 든 셈이다. 특히 토요일이었던 29일에는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온라인에서 사전 예매하고도 이를 현장에서 실물 입장권으로 교환하는 데만 한두 시간 줄 서야 했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해보다 15%, 2만 명가량 증가한 15만 명의 관람객이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외형 성장은 내실 확충을 부르는 것일까. 그동안 도서전을 외면해 왔던 일부 인문서 출판사가 내년에는 가세할 모양이다. 마티·푸른역사 같은 곳이 그렇다. 도서전 주 관람층인 20~30여성과 인문서 독자층이 겹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동안 참가하지 않았는데, 현장의 열기를 체감한 편집자들이 내년에는 자신들도 참가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노하우가 쌓이는 출협은 11월에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도 진행하기로 했다. ‘영화 도시’ 부산의 특성을 살려 ‘북투스크린(Book To Screen, 출판물의 영상화)’을 위한 저작권 거래에 초점을 맞춘 행사다. 청주시와도 도서전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과거 발생한 도서전 수익금의 반환 문제를 두고 최근까지 “줄 수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출협이 미래의 어떤 곳을 바라보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 행보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홀로서기 말이다. 세계적인 규모의 출판물 거래 시장을 운영하는 독일의 비영리법인인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모델인 듯싶다.

도서전의 성공이 나쁜 일일 수는 없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통념과 동떨어진 것 같아서다. 한국 사회의 독서율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얘기는 별 감흥이 없을 정도다. 지난봄 발표된 2023년 기준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서전에는 사람이 몰린다. 15만 명을 획일화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가 2030여성이라고 얘기된다는 점이 우리의 마지막 보루 같은 위안이자 숙제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 관람객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이들 가운데 진지한 독자도 많겠지만 좀 더 가벼운 소비를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사계절 출판사 김태희 총괄이사는 “굿즈(판촉물)를 포함한 이벤트나 페미니즘 같은 뚜렷한 메시지 없이는 서울도서전에 참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모드로만 도서전에 접근해도 문제겠지만, 책 소비에 있어서도 즐거움(엔터테인먼트)과 소통을 중시하는 MZ 세대의 취향을 어떻게 건강한 독서습관과 연결시켜 나갈지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민음사·창비·문학동네·열린책들 같은 대형 출판사들은 참가했지만, 규모는 떨어져도 주목도 높은 출판 기획으로 시장을 뒷받침하는 중견 혹은 중형 출판사들, 문학과지성사·마음산책·바다출판사·동아시아·을유문화사·까치·해냄·쌤앤파커스 같은 곳들이 왜 사실상 도서전을 ‘보이콧’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와 출협의 껄끄러운 관계도 도서전의 장기 발전,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해 득 될 게 없다. 출협은 올해 정부 지원 한 푼 받지 않고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정부의 도서전 예산 지원액(6억7000만원)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협 지원에서 출판사 개별 지원으로 경로가 바뀌었을 뿐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해 별도 신청을 받아 188개 출판사의 작가 초청 행사 등을 지원했다. 가령 소설가 김연수·편혜영 초청 행사가 그 같은 지원을 받았다. 출협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작가 초청 행사를 참관하려고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도 있을 테니 15만 명 중에는 정부 기여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부의 도서전 예산 지원은 출협 지원에서 출판사 개별 지원으로 변경되어 소설가 김연수·편혜영 초청 행사 등 188개 출판사의 작가 초청 행사 등을 지원했다. 연합뉴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소위 K컬처나 한류 확산을 이야기할 때 출판 콘텐트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런 일에 있어서 정부의 지원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출판 산업 측면에서 목돈이 필요한 일을 민간의 힘만으로 해내긴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출판계에 따르면 도서전에 정답 같은 건 없다. 영국의 런던도서전은 저작권 거래가 활성화된 B2B 시장이다. 프랑크푸르트는 업자들 이외에 독자 참가도 활발한 B2B+B2C 시장이다. 서울도서전은 독자들이 승한 B2C 시장으로 봐야 한다. 결국 최종 목표는 거론하기도 구태의연한 독서 문화 정착일 텐데, 그를 위해 우리에게 어떤 도서전이 있으면 좋은지, 뜨거운 코엑스의 열기를 어떻게 살려 나갈지 지금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준봉(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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