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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3년은 너무 길다” vs “4년은 너무 길다”

이현상 논설실장
지표만 보면 한국은 민주주의 모범국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해마다 매기는 민주주의 평가에서 2023년 한국은 167개국 중 22위를 차지했다. ‘선거 과정과 다원성’ ‘정부 기능성’ ‘정치 참여도’ ‘정치 문화’ ‘시민 자유’ 등 다섯 가지 지수를 평균한 점수에서 10점 만점에 8.09를 받았다. 8점 이상 국가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한다. 10위권을 들락거리는 경제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프랑스·스페인(공동 23위)보다 앞선다니 뿌듯해할 만하다.

이시원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차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관련 입법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대해 수사중인 사안으로 답변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정청래 위원장의 10분 퇴장 명령을 받아 퇴장했다. 뉴시스
그러나 밑지름 64m의 거대한 녹청색 국회의사당 돔 지붕 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노라면 이런 평가는 아득한 인지부조화로 다가온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전직 장관과 현직 군인을 10분간 복도로 쫓아내는 장면은 의회 권력의 타락을 보여준다. 의회 정치의 중심이라는 운영위원회에서는 “입 닫아라” “깽판 치는 거냐” “저거 뭐냐” 같은 막말이 난무했다. 본회의 발언대에 올라선 여당 재선 의원은 국회의장에게 관례로 하는 인사마저 거부하며 “인사는 존경심이 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독설을 뱉었다. 이제 웬만한 수준의 막말과 고성, 삿대질은 무감해질 지경이다.

많은 나라가 의사당에 돔 지붕을 올리는 이유는 민의를 모은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우리도 1970년대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 당초 설계안을 바꿔 돔을 올렸다. 그런데 그 돔 아래서 내전 수준의 아귀다툼이 매일같이 펼쳐진다. 쉼도 끝도 없이, 점점 강도를 더하며 전개되는 ‘정치 내전’의 해결책이 있기는 할까. 혹자는 대통령 탄핵을 떠올리고, 혹자는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처리 완결을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종결이 아니라 거대한 혼란의 시작일 뿐이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모든 것이 걸린 권력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생사를 건 게임은 선수를 바꿔 계속될 것이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5회국회(임시회) 4차 본회의에서 검사(강백신) 탄핵소추안의 법제사법위원회로의 회부 동의의 건이 재석 161인 중 찬성 158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됐다. 뉴스1
“정당의 목표는 집권.”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집권의 목적은 뭘까. 여러 고상한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지금 정치판의 현실적 이유는 ‘생존’이다. ‘대북송금 기소’로 이제 네 개의 재판을 받게 된 이재명 전 대표에게 집권은 절체절명의 활로가 돼 버렸다. 대통령이 된 후 취임 전 받던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한국과 미국 외 또 있을지 궁금하다. 각자 헌법기관이라는 170명의 당 소속 의원은 이재명 일극체제 대오를 갖췄다. 수사 검사와 방통위원장을 향한 탄핵 카드는 기본 초식에 불과하다. 표적수사 금지법, 판사선출제, 법 왜곡죄 같은 기상천외한 방탄 입법까지 나올 판이다. ‘당의 아버지’에게 어떤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갑옷을 입히려 하고 있다.



여당이라고 다를 바 없다. 지난 총선에서 ‘윤심’의 약효가 다했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고도 ‘배신의 정치’ 같은 말이 난무한다. 당심 80% 룰에 따른 선거 전략이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보수 지향 중도층의 입맛은 쓰다. 용산은 또 어떤가. 총선 직후 ‘뼈를 깎는 쇄신’ 운운 다짐했지만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다. 비서실장과 몇몇 참모의 교체를 빼면 거의 뭉개기 수준이다. 배우자 특검이나 해병 특검 문제 앞에서 대통령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 관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6·29선언에 버금가는 결단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났다.

그나마 한국 민주주의가 외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87년 체제’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적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이 어우러진 결과다. 87년 체제 이후 집권한 정부는 나름 키워드 하나로 정리되는 공(功)이 있었다. 노태우 ‘북방’, 김영삼 ‘문민’, 김대중 ‘복지’, 노무현 ‘균형’ 등이 그런 예다(이후 정부도 공은 분명히 있겠지만, 하나로 압축할 만한 단어가 잘 떠오르진 않는다). 87년 체제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비대한 대통령의 권한은 다양화, 분산화, 탈집중화라는 시대 흐름과 점점 부조화를 이루게 됐다.

사람이 늙듯이 제도도 늙는다. 제도가 늙는다는 방증 중 하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탐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리를 둘러싼 싸움도 점점 격렬해지고 치졸해진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세력과 “4년은 너무 길다”는 세력이 내전 수준으로 싸우는 한국 정치가 딱 그런 예다. 지금 같은 권력 독식 구조의 대통령제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대중의 표피적 열망, 상대 후보에 대한 적대감에 힘입어 홀연히 등장한 후보에게 격렬한 지지를 보내고 곧 실망하는 패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제를 그냥 놔두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이런 시스템을 바꾸는 데 윤석열 정부가 앞장선다면 그것만으로 윤 정부의 공을 표현할 단어는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이현상(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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