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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있는데, 일본에는 없는 것 [K, 도쿄 상륙]


10년 전만 해도 일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나 브랜드는 ‘K’를 떼야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K’를 붙여야 관심을 받는 ‘K-프리미엄’이 생겨났다. 과장이 아니다. 2024년 현재, 도쿄의 트렌드 발신지로 꼽히는 시부야에서는 연일 한국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명품 거리로 불리는 아오야마에 문 연 한국 브랜드의 매장 앞에는 매번 긴 줄이 늘어선다. 이세탄·마루이 등 일본 주요 유통 업체의 상품기획팀에는 도쿄에 상륙하지 않은 한국의 ‘핫’ 브랜드를 찾는데 여념이 없다. 분명 우리보다 패션에서, 소비재에서 ‘한 수 위’였던 일본의 변화다. 자국 브랜드 사랑이 유난히 뜨거워 ‘내수 철옹성’으로까지 불렸던 일본이 한국 브랜드에 무장 해제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시부야 팝업에 하루 3000명 몰렸다, 도쿄의 ‘오픈런’ 풍경
② 한국에는 있는데, 일본에는 없는 것
③ 50억-〉1800억, 이 브랜드가 새로 쓰는 K-패션 성공 방정식
" 온도가 달라졌다. "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 브랜드 대표들은 최근 2~3년간처럼 사업하기 쉬웠던 때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가속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OTT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분 이른바 ‘4차 한류’가 배경으로 꼽힌다. ‘K-컬처’에 대한 호감도가 기존 마니아층에서 대중으로 확대했고,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일본 대형 유통업체 '로프트'는 한국 브랜드 기획전인 '펀펀서울'과 'K코스메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사진 코트라

소비재로 퍼지는 ‘4차 한류’
한국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히 한국 음식과 패션·뷰티 등 라이프스타일로 퍼져나갔다. 주로 드라마나 아이돌 음악 등 문화 콘텐트에 머물렀던 그동안의 한류와 최근의 ‘4차 한류’가 명확히 다른 지점이다. 이제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 입는 옷, 바르는 화장품 등 라이프스타일에 기반을 둔 소비재를 궁금해하고 있다.


특히 한국 패션 브랜드의 위상 변화는 국내에서 먼저 감지됐다. 최근 몇 년간 서울 한남동과 성수동의 패션 매장 앞에 여행 가방을 든 외국인들이 줄을 서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외국인 중에서도 일본인 매출 비중이 특히 높다. 한 캐주얼 브랜드는 주말 3일간 진행한 백화점 팝업 매장에서 전체 5억원의 매출 중 50%를 일본인 매출로 채웠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또 다른 캐주얼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에서는 한때 일본인 매출이 전체 월매출의 90%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일본 소비자들의 이 같은 호응은 자연스레 브랜드의 일본 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코오롱 FnC의 잡화 브랜드 ‘아카이브 앱크’는 지난 4월 첫 해외 진출국으로 일본을 낙점, 공식 온라인 몰을 열었다. “성수동 쇼룸을 찾은 일본인 쇼핑객들이 일본 매장 오픈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아진 게 계기가 됐다”는 게 브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패션 브랜드 아카이브 앱크는 지난 4월 일본 공식 온라인 몰을 열었다. 사진 코오롱 FnC

명품과 SPA 사이
사실 일본은 패션 강국으로 통한다. 시장 규모가 국내보다 두 배 이상 큰 100조 원대로 추정된다. 이세이 미야케·요지 야마모토·레이 가와쿠보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을 배출했고, 꼼데가르송·사카이 등 글로벌 브랜드부터 유니클로 등 세계적인 SPA(제조·유통 일괄형) 까지 두루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일본에서 K-패션 브랜드가 관심을 끌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히라마츠 유고 파르코 시부야 점장은 “K-팝의 영향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관심을 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10일부터 일본 도쿄 파르코 시부야점에서 열린 더현대 글로벌 팝업 스토어. 사진 현대백화점

한국 브랜드는 일본 패션 시장에서 비어있는 두 가지 지점을 공략한다. 우선은 가격대다. 지난달부터 일본 파르코와 더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박동용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책임은 “백화점 중심의 명품과 중가 이하의 패스트패션이 장악한 일본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는 디자이너 감성에 적당한 품질,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가 이상 고가 이하 시장을 공략한다”고 말했다. 박화목 마르디메크르디 대표도 “(일본 시장에는) 적당한 가격대에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브랜드가 적다는 느낌”이라며 “무신사나·29CM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극심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한국 브랜드라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감각은 세계 수준, 가격은 적당
또 다른 강점은 새로움이다. 비싼 가격에 20년 전 감성을 유지하는 일본의 글로벌 브랜드의 빈틈을 한국 브랜드가 채워주고 있다. 일본 패션 업계의 전문가들도 한국 브랜드의 매력으로 ‘트렌디한 디자인’을 꼽았다. 일본 패션 플랫폼 조조타운의 브랜드 영업본부 마츠다 켄씨는 “Y2K 등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하는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한국 브랜드는 로고를 전면에 세우거나 디자인보다는 아이돌에 기대는 이미지였다면, 최근에는 디자인 자체만으로 매력을 끈다. 특히 젊은 여성 고객들에게 ‘귀엽다’는 호응을 얻으면서, 이를 도입하는 일본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다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본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브랜드가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강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은 젠틀몬스터 아오야마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의 키네틱 오브제. 유지연 기자

브랜드를 풀어내는 방식도 일본인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간다. 히라마츠 파르코 점장은 “서울 성수동에서 지상을 텅 비워 놓은 탬버린즈 매장을 보고 파리 퐁피두센터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브랜드는 브랜드의 강점과 매력을 철저하게 표현하고 단번에 집중시키는 힘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이세탄의 한국 프로젝트 담당자인 미야지 사호씨도 “단순히 옷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인테리어·식물·디스플레이 등 모든 것을 세심하게 전개해 그 브랜드 옷을 입은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 구축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SNS로 취향 대통합
한국에 감각 좋은 신진 브랜드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달라진 점은 SNS라는 강력한 확산 플랫폼이 생겼다는 점이다. 도쿄에서 만난 한국 브랜드 소비자들은 대부분 친구의 인스타그램에서, 일본 내 인플루언서의 계정에서 한국 브랜드를 처음 접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한국 브랜드가 잘 되는 해외 시장의 공통점은 SNS 침투력이 높은 시장이다.

무엇보다 SNS로 취향의 대통합이 시작됐다. 한국의 길거리에서 유행하고 SNS에서 통하는 패션 콘텐트가 일본으로 동남아시아로, 미국으로 쉽게 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확산력이 높은 K-팝 콘텐트가 촉매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해외에서 흥행하는 한국 브랜드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나 무신사·29CM 등 온라인 플랫폼을 타고 성장한 작은 브랜드가 중심이다. ‘마뗑킴’ ‘마르디 메크르디’ ‘오픈와이와이’ ‘미스치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SNS를 활용해 브랜드 세계관을 확실히 구축하고 소통에 능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SNS 비주얼을 통해 단번에 폭발적으로 확산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일본 패션 플랫폼 조조타운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무신사 팝업 스토어 페이지를 운영했다. 사진 조조타운 홈페이지

‘K’ 떼고도 생존해야, 완성도는 과제
한국 패션 브랜드에게 있어 일본 시장은 무척 매력적이다. 시장 규모도 크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용이 적게 들고 기후와 체형이 비슷하다는 이점이 있다. 여름 티셔츠 위주로 팔리는 동남아시아보다 객단가도 높다. 무엇보다 일본 시장은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진입 전 교두보로 삼기 좋다. 이병욱 코트라 도쿄무역관 부관장은 “일본 내수 시장은 진입이 어렵지만, 일단 들어오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더 큰 시장과 곧바로 연결되는 글로벌 시장”이라며 “한번 인정받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쉽게 꺼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과제도 분명하다. 중간 가격대에 개성 있는 브랜딩과 디자인으로 소구하지만 완성도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히라마츠 파르코 점장은 “(한국 브랜드가) 역시 본질이나 퀄리티(품질)는 아직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며 “더 위를 목표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평가했다. 허철 무신사 글로벌 본부장은 “한국 브랜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지금, 이들의 충성도를 사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지 않는 등의 영민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K-브랜드라서 좋은 게 아니라 K를 떼고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자체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숙제가 남는다. 현지 통역=한지윤




유지연(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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