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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세상·추악한 인간 내면 다룬 누아르 걸작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개봉 50년 명작 시리즈

<2>차이나타운
완벽한 기승전결 짜임새 등
영화학과 대표적 각본 교재
131분 내내 놀라운 몰입력

 '차이나타운'은 1930년대 LA 댐 건설을 둘러싼 암투를 소재로 비정한 세상의 추악한 인간 군상을 완벽함에 가까운 짜임새에 녹여냈다.  [Paramount Pictures]

'차이나타운'은 1930년대 LA 댐 건설을 둘러싼 암투를 소재로 비정한 세상의 추악한 인간 군상을 완벽함에 가까운 짜임새에 녹여냈다. [Paramount Pictures]

검은 색을 뜻하는 프랑스어 ‘누아르(Noir)’는 암울한 분위기가 가득한 영화들을 일컫는다. ‘필름 누아르’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는 1차 세계대전 후, 인류에 닥쳐온 절망에서 출발한다. 최고의 이념으로 여겨졌던 자본주의의 모순이 대공황이라는 파멸적 위기로 나타나면서 희망보다는 인간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절망이 인류의 심리 안에 자리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조류에 걸맞은 범죄 영화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주인공의 캐릭터들이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전형화하기 시작했다.    
 
하드 보일드의 키워드는 ‘비정’과 ‘냉혹’이다. 하드보일드 영화에 등장하는 탐정이나 형사들은 인정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정의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인다.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거칠어,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말보다 주먹과 피스톨이 앞선다.
 
천재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1974년 발표한 ‘차이나타운(Chinatown)’은 하드보일드의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부터 15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시간 배분 원칙. 그리고 ‘누군가가 무엇을 간절히 이루려 하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줄거리 구성의 원칙. 그 모든 게 적절히 녹아있으면서 기-승-전-결 구도가 완벽하게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많은 영화학과에서 각본 교재로 널리 쓰이고 있을 만큼 탁월했다.  
 
돈만 있으면 법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치외법권적 비리와 불륜에 얽힌 음모에 관한 스토리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정의와 권선징악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영화는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댐 건설을 둘러 썬 이익집단 간의 대립과 암투를 배경으로 한다. 댐 건설로 엄청난 이익을 노리는 건설업자들과 댐이 들어서면 생업에 지장을 받게 될  농축업 종사자들 사이의 집단 갈등 속에서 전직 형사로 사설탐정소를 운영하는 제이크 기티스(잭 니컬슨)는 LA수도국 국장 홀리스 멀레이의 아내로부터 남편의 불륜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멀레이의 진짜 아내 에블린 멀레이(페이 더너웨이)가 나타난다. 얼마 안 가 홀리스가 의문사를 당하면서 그의 파트너였던 백만장자 노아 크로스(존 휴스턴)의 존재가 표면에 떠오른다. 제이크는 정계 거물인 크로스가 에블린의 아버지이며 사건의 배후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패와 악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가운데 오랫동안 은폐되었던 거대한 음모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LA수도국장 멀레이, 그의 부인 에벌린, 멀레이의 파트너이자 에벌린의 양아버지인 크로스, 멀레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캐서린, 이렇게 다섯 명의 인간관계가 미스터리하게 전개된다.
 
이 영화는 “Forget it Jake, it’s Chinatown”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영화 내내 차이나타운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차이나타운은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혼란스러운 동네, 돈만 있으면 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만의 ‘안전지대’를 상징한다.  
 
폴란스키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차이나타운’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의 씁쓸한 뒷맛은 악인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충격적 결말에서 기인한다. 폴란스키는 인간 사회의 곳곳에서 돈과 권력을 이용, 법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권력자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우리는 그러한 체제에 너무나 잘 길들어져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폴란스키 감독은 영화의 배경지인 LA라는 도시, 더 나아가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재력을 이용, 법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권력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작 과정에서 폴란스키는 각본을 쓴 로버트 타운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특히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하자는 타운과 반대로, 폴란스키는 비극적 결말을 고집했다. 에블린이 죽지 않으면 영화는 용두사미가 된다고 고집한 폴란스키에게 결국 타운이 양보했다. 결과적으론 폴란스키의 말이 맞은 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 속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악의 법칙을 힘있게 연기해낸 것은 노아 크로스 역을 맡은 존 휴스턴이다. 영화의 핵심 주제인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불신은 그의 연기로부터 견인된다. 그가 연기한 노아 크로스는 영화사상 최고 악역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휴스턴은 걸작 웨스턴과 필름 누아르를 여러 편 감독한 할리우드의 거장이다. 필름 누아르의 명감독이 다른 감독의 필름 누아르에 출연했다는 것부터 눈길을 끈다.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쥐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노회하고 냉혹한 악인을 소름돋게 연기해냈다.  극중에서 그는 주인공 제이크(잭 니컬슨)에게 “내 딸과 잤나”라고 묻는다. 당시 휴스턴의 딸 안젤리나 휴스턴이 실제 니컬슨과 연애하던 시절이었기에, 의도하지 않은 명장면이 돼버렸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은 결합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차이나타운’을 절묘하게 대비했다. [Warner Bros]

실사와 애니메이션은 결합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차이나타운’을 절묘하게 대비했다. [Warner Bros]

‘차이나타운’은 원래 3부작으로 제작될 요량이었다. 제2편은 1990년 잭 니컬슨이 감독한 ‘투 제이크스(Two Jakes)’. 그러나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다. 결국 3부 제작 계획도 취소됐다. 1988년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혼합한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제작됐는데, ‘차이나타운’의 스토리 라인을 군데군데 차용했다. 이 영화에 대해선 ‘차이나타운’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의 이해도가 크게 엇갈린다. 여기에 나오는 유명대사는 “Forget it Eddie, it’s Toontown”. 만화동산과 차이나타운의 이 절묘한 대비 앞에서 관객들은 포복절도한다.    
 
폴란스키는 이 영화에 단역으로 직접 출연한다. 저수지에서 제이크의 코를 나이프로 자르는 깡패를 맡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제작진 소개 자막엔 ‘나이프를 든 남자’ 역으로 그의 이름이 나온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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