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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뉴스메이커] 이름·신분 없는 투명인간…3조원 마약 소탕한 안보 첨병

국정원 국제범죄 베테랑 현직 간부 첫 인터뷰
강찬호 논설위원
“위이잉…위이잉…”

2021년 7월 어느 날 경기도 고양시 한 물류창고 마당. 톱니 달린 2t짜리 쇠기둥 9개가 놓여 있었다. 지름 90㎝ 항공기용 부품 ‘헬리컬 기어’다. 건장한 사내 2명이 전동 드릴을 기어 한가운데 들이댔다. 드릴이 쇳덩이를 파고들자 참치캔 모양의 가루 덩어리가 ‘쩍!’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약 수사 사상 최대인 404㎏의 필로폰이 적발된 순간이었다. 무려 1350만 명 투약분으로 소매가 총액이 3조원에 달한다.

마약·보이스피싱 등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글로벌 범죄를 막기 위해 국가정보원이 1994년 발족시킨 ‘국제범죄정보센터’ 요원들. 그들은 이름이 없다. ‘익명’이 그들의 이름이다. 신분을 숨기고 법과 국경의 테두리를 넘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까지 ‘국가를 위하여’ 하게 된다. ‘확신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년 넘게 글로벌 범죄 단속 업무
국제 마약왕, 북 해킹조직 적발도
제보원·유력자 확보가 최대 관건
가족에게도 비밀…모든 일상 희생

12일 발족 30년을 맞은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서 20년 넘게 일한 현직 간부 김민섭 씨(가명)가 지난주 인터뷰에 응하면서 뒷모습만 사진을 찍었다. 마약왕 잡는 베테랑이지만 겉보기엔 평범한 인상의 중년 남성일 뿐 이었다. 그는 “이름도, 얼굴도, 신분도 없이 투명인간으로 지내야 하는 게 요원의 숙명”이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뉴스메이커는 올해 30주년을 맞는 국제범죄정보센터에서 20년 넘게 일한 현직 간부를 만날 수 있었다. 김민섭(가명·50대) 씨는 자신의 신분이 연상되는 어떤 내용도 쓰지 말아 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국정원 현직 간부 인터뷰는 국내 처음이다.



한국 청정 이미지 악용한 ‘마약 세탁’


Q : 20년 넘는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범죄는 뭡니까.
A : “역시 ‘헬리컬 기어’ 사건이죠. 대한민국이 ‘마약 세탁국’이란 오명을 쓸 위기를 막았으니까요. 이 사건은 호주 당국이 2021년 한국에서 수입된 헬리컬 기어 11개에서 필로폰 498㎏을 적발한 게 발단이에요. 서방 언론은 ‘마약 청정국 한국이 실은 마약 중개국’이라고 대서특필했어요. 큰일이다 싶어 호주 당국의 협조를 얻어 우리 세관과 함께 기어 수출업체의 정체를 알아보니 부산에 위치한 무역업체였죠. 수상해서 수출 내역을 떼보니 멕시코에서 헬리컬 기어 20개를 수입한 뒤 11개를 호주에 수출했더라고요. 9개는 국내에 있다는 얘기고, 거기에 마약이 들었다면 400㎏ 이상이란 뜻이었죠. 세관과 원팀이 돼 추적을 개시했습니다. 부산항에 하역된 헬리컬 기어는 트럭에 실려 부산→포천→횡성→고양으로 이동했어요. 천우신조로 횡성군 체육공원에서 트럭 3대가 기어를 옮겨 싣는 모습이 CCTV로 잡혔지만, 영상이 흐려 차량 번호를 알 수 없었죠. 국정원의 최첨단 영상장비를 동원했습니다. 가까스로 번호가 식별돼 차량 흐름을 추적하니 고양시 창고에서 멈췄더군요. 수색영장을 엿새 만에 발부받아 창고를 급습해 역대 최대 마약 적발에 성공했죠. 베트남에 은신한 주범 이 모 씨를 베트남 당국의 협조를 얻어내 국내로 송환해 30년형을 받게 하는 개가도 올렸고요.”


Q : 굉장하군요.
A : “사실 굉장히 큰 건입니다. 호주 당국이 1급 지명 수배한 세계적 마약왕 하칸 아익(Hakan Ayik)이 배후였기 때문이죠. 하칸 밑에서 멕시코산 마약을 한국에서 ‘세탁’한 뒤 호주로 보낸 운반책을 검거했으니 글로벌 마약 수사계에서 국정원의 지위가 급등했습니다. 호주도 고마워했고요. 하칸 아익은 지난해 11월 튀르키예에서 체포됐습니다.”


Q : 이런 월척을 잡는 비결은 뭔가요.
A : “검거는 순간이지만 그 바탕에는 최소한 몇 년간 공을 들여 정보원(제보자)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예를 든다면 해외 도피 중인 정보원을 제보자로 만들려고 1년 넘게 뛰었습니다. 제보자의 아들을 중학생 시절부터 만나 얘기를 나누고 산책도 하면서 대학 갈 때까지 친분을 쌓았죠. 저를 지금도 ‘아저씨’라고 불러요. 이런 과정을 통해 제보자의 신뢰를 얻으면서 국제전화로 통화할 수 있게 됐죠. 온라인 이전 시대라 한 달에 60만~70만 원을 전화료로 썼습니다. 해외에선 ‘유력자’도 중요합니다.”

김치와 K팝 스타 사인이 정보자산


Q : 유력자라면요?
A : “2018년 동남아 한 나라에 숨어 마약을 국내로 보내는 ‘총판’의 거주지가 포착됐어요. 수배만 11건이 걸린 중범죄자였죠. 현지 경찰에 검거를 요청했지만 3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더라고요. 국정원만의 장점을 활용해야 했죠. 그 나라 유력 인사에게 부탁했어요. 우리 파견 직원이 여러 명 바뀌는 동안에도 릴레이식으로 친분을 유지해 신뢰를 축적한 분이죠. ‘이 사람 안 잡으면 한국의 마약 범죄자들이 죄다 이 나라로 도피한다’고 설득했더니 ‘그럼 잡아야겠네’ 해요. 그분이 나서니 석 달 동안 못 잡던 범인을 2주 만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거죠.”


Q : 뭐가 또 있었습니까.
A : “검거한 범인 배후가 초대형 마약 공급책 ‘호’(한국인·가명)임이 드러난 거죠. 악명높은 골든트라이앵글 산 필로폰 18.3㎏(610억원 어치)을 21차례나 국내에 반입한 대물입니다. 마침 호의 하수인들이 국내에 투옥돼 있었어요. 그들을 통해 호의 사진 한장을 얻었어요. 사진 속에 나온 식당 간판을 보니 태국이에요. 포털을 이 잡듯 뒤져 방콕의 특정 거리라는 사실을 알아냈죠. 즉시 방콕의 제보망을 돌려 호 밑에서 마약을 파는 ‘하선’을 알아내, 태국 경찰이 검거하게 하는 데 성공했어요. 하선에게 ‘호 어디 있나’고 추궁했지만 ‘모른다’만 반복해요. 마지막 수단으로 그의 핸드폰을 털었는데, 이게 대박이었죠. 호의 텔레그램 아이디가 있더라고요. 우리 요원이 ‘하선’인 척하고 호에게 ‘저 경찰에 잡혀 있어요’라고 문자를 보내봤어요. 기대를 안 했는데, 바로 호에게 연락이 오더라고요. 이를 바탕으로 태국 경찰이 한인 타운 카페에 앉아있던 호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우리에게 보내줬어요. 틀림없는 ‘호’였어요. 5년을 쫓은 얼굴이니 바로 알아봤죠. 전율이 오더라고요. 호가 ‘설마 한국에서 여기까지 날 잡으러 올까’라며 방심했던 걸 후회했다고 하더군요. 워낙 중범죄자라 30년형 받았습니다.”


Q : 유력자와는 친분을 어떻게 쌓는지 궁금하네요.
A : “정답은 없습니다. 진심으로 다가가는 게 전부죠. 김치를 담가 주거나 한국 영화 DVD를 주기도 해요. K 푸드와 K 컬처가 워낙 인기라 친분 쌓기 좋습니다. 해외 유력자의 자녀들이 좋아한다며 우리 유명 연예인의 사인이나 음반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어요. 또 상대방 국가가 필요한 정보나 수사기법을 알려주고 국내에 초청해 교육도 해줍니다.”

북, 국내 전화번호 중국 콜센터에 판매


Q : 중국과도 협력이 되나요.
A : “어렵죠. 그래도 노력한 결과 성과를 거두기도 했어요. (뭡니까?) 우리나라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2021년 기준으로 7744억원이나 돼요. 죄다 서민들 돈이에요. 하지만 범죄의 뿌리인 콜센터는 87%가 중국에 있어요. 못 잡아요. 한데 2019년 1월 북한 IT 조직이 중국 콜센터들과 공모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합니다. 그래서 끈질기게 중국 공안부를 설득한 끝에 협조를 얻어 한국인 보이스피싱 조직원 4명을 국내로 송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보이스피싱한 전화번호를 어떻게 얻었나’고 추궁하니 ‘북한 해커에게서 모 대부업체 고객 정보(전화번호)와 해킹 앱을 사들였다’고 고백해요. 북한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배후임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라 짜릿했죠. 전화번호 ‘가격’이 개당 8000원에서 수만 원이고, 매달 3000달러를 ‘앱 관리비’로 북한에 준다고 하더군요. 북한이 이런 식으로 ‘외화벌이’를 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해킹 앱 가격을 알려주는 북한 동영상을 입수했는데, 북한 군수공업부 산하 로켓공업부의 외화벌이 조직원 ‘송림’이 영상에 나오는 걸 발견했습니다. 기억력 좋은 우리 요원이 송림에 관한 모든 숫자를 다 외우고 있어 가능했어요. 북한 정부 산하 IT 조직이 해킹 앱을 팔아 달러를 벌어온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사례라 유엔도 높게 평가했습니다.”


Q : 개인사가 궁금합니다.
A : “대학 졸업 후 국가 안보에 관심이 많아 국정원 문을 두드렸어요. 선배들이 추적한 결과물을 1년간 샅샅이 읽으며 감을 잡고, 1~2년 선배들 따라다니며 도제식 교육을 받습니다. 감이 잡히면 다음은 개인의 역량인 것 같아요. 얼마나 똑똑한 제보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죠.”


Q : 애로도 많을 것 같은데요.
A : “국정원 요원들은 일상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신분 노출이 금지되고, 업무 내용은 극비입니다. 가족에게조차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끙끙 앓는 요원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또 장기간 같이 활동해온 정보원이 상대국에 정체가 노출됐거나 정보원으로서 효용이 감소하면 해고하고 연락을 끊어야 하는데,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애로죠. (그래도 보람이 있겠지요?) 그럼요! 과거의 이미지 때문에 가끔 안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많은 국민이 ‘그래도 국정원이 안보의 마지막 보루’라며 격려해주세요. 그 맛에 일하는 거죠.”



강찬호(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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