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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넘기고 종신보험도 깼는데…" 결국 회생법원 온 사장님 한숨 [벼랑 끝 중기·자영업]

지난달 21일 경기 반월시화공단에서 문이 닫힌 한 공장의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돼 있다. 정종훈 기자
지난달 21일, 경기 반월·시화공단엔 빽빽이 들어선 중소기업 사이로 쇠사슬이나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근 공장이 여럿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주물 공장 출입구엔 보는 이 없는 소방 점검 공문만 붙었다. 골목마다 '급매·현 위치 임대'나 '중기 자금 신청' 등을 강조한 현수막이 내걸렸다. 공단 초입에 있는 한 지식산업센터 건물의 1층 상가는 절반가량 비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 윤모씨는 "공장 매물은 계속 쏟아지는데, 이를 매매·임대하겠다는 문의는 작년 말 이후로 거의 끊겼다"면서 "사정이 급한 업체는 직접 공장 매물장을 만든 뒤 임직원이 공인중개사를 일일이 돌면서 홍보하거나 '수수료를 두 배로 줄 테니 계약만 해달라'는 요청을 팩스로 계속 보내는 식"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달 20일 서울회생법원 내 대기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수십명이 몰리면서 붐볐다. 개인회생 재판이나 파산 선고를 기다리는 이들이다.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다 파산 신청에 나섰다는 50대 유모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날 법인회생 법정엔 중기 사장들이 변호사와 함께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섰다. 의류 원단 제조업체 대표인 전모(52)씨는 "코로나19 유행 때는 3억원을 빌리는 등 어떻게든 빚으로 견뎠지만, 연간 50억원 하던 매출이 지난해 10억원까지 줄면서 월 이자만 2000만원 내는 게 힘들었다"면서 "보증 잡힌 집은 물론이고 종신보험까지 깨서 회사에 다 집어넣었는데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서울회생법원 별관에서 개인파산 신청자들이 선고와 신용 교육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아미 기자
비어가는 공단과 붐비는 법원…. 코로나 위기를 빚내서 버텼던 중소기업이 추가로 몰아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 위기를 넘기지 못한 데 따른 상반된 풍경이다. 이처럼 중기가 크게 흔들리는 배경엔 2020년 팬데믹 시작 이후 누적된 복합위기가 있다.



고물가·고환율 직격탄을 맞은 중기 수익성은 내리막을 걷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 중기(675곳)의 평균 매출액은 477억원으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499억원보다 뒷걸음질했다. 상장 대기업(507곳)의 평균 매출액이 같은 기간 4조2000억원에서 5조8000억원으로 38%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또한 2021~2023년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연평균 10.6%씩 급등하면서 중기의 원자재 도입 부담을 키웠다.
지난달 20일 서울회생법원 별관에서 개인파산 신청자들이 선고와 신용 교육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아미 기자

이들 중기의 평균 영업손익은 2019년부터 5년 연속 적자 행진이다. 특히 기계·건설·통신 장비 등 주요 업종 대부분이 지난해 영업적자로 전환하거나 적자 폭이 커졌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중기 경기동행종합지수(순환변동치)는 9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약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찍었다(4월 기준).

이는 대한민국호(號)의 수출 호조, 성장률 상향에 가려진 그늘을 보여준다. 반도체·자동차 등을 타고 8개월 연속 수출이 늘었는데, 그 온기는 대기업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3개월새 2.1%에서 2.5%로 올라갔지만, 소비 회복 등은 더딘 편이라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기의 어려움을 덜기엔 갈 길이 멀다.

경기 파주의 종이 제품 제조업체 대표 신모(50)씨는 "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 수입 단가 상승, 대출 부담 확대가 겹치니까 매달 적자 보면서 근근이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우리뿐 아니라 바닥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렵다. 3년 전 거래하던 업체가 100곳이라면 지금은 13~14곳이 문을 닫았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21일 경기 반월시화공단 내 골목에 공장 임대를 홍보하는 현수막들이 나란히 걸렸다. 정종훈 기자
이러한 실적 부진에 고금리까지 덮치면서 중기 유동성은 악화일로다. 금융 비용이 증가하면서 돈을 빌리기도, 갚기도 어려운 처지에 부닥친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연 2.97%였던 은행의 중기 대출금리는 지난해 5.34%로 치솟으면서 2012년(5.66%)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반면 지난해 상장 중소기업의 차입금과 현금성 자산은 전년 대비 뚜렷하게 줄었다.


중기 대출은 금리 변화에 특히 민감한 편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이후 중기 대출 증가세는 둔화하는 양상이다. 중기의 매출액 대비 금융비용 부담률은 3.36%(지난해 3분기)로 대기업(1.35%)과 큰 차이를 보였다. 팬데믹 때는 저금리 정책 대출 등으로 자금 수혈이라도 받았지만, 이젠 이자 부담 때문에 '대출 돌려막기'도 벽에 부딪힌 것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경남 창원의 공구 제조업체 대표는 "대출 원금 상환은 고사하고 이자 막기도 빠듯하다. 업황도 안 좋은데 돈을 더 빌리면 부담만 커지니까 신규 투자를 위한 대출은 꿈도 못 꾼다"고 밝혔다. 기업 도산 전문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파산에 이르는 중기는 대부분 다중채무가 많은 편"이라면서 "유동성이 나빠지니까 어쩔 수 없이 개인 사채까지 손을 댈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기를 짓누르는 빚은 줄지 않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여타 주요국과 달리 팬데믹 이후에도 중기 금융 지원을 지속하면서 2021~2022년 공적 보증 잔액이 늘어났다. 이는 업황 부진 등에 따른 운전자금 수요와 함께 중기 대출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 4월 은행의 중기 대출 잔액은 1017조7000억원으로 2020년 4월(752조원)과 비교해 4년간 260조원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중기 부담을 낮춰줄 기준금리 인하는 이르면 올 하반기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내수 경기 회복도 더딘 상황에서 당분간 중기 대출 연체나 파산 등이 이어질 거란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중기 실적이 나빴던 게 올해 신용등급으로 반영되는 만큼 연내 기준금리가 내려도 곧바로 상황이 좋아지긴 어렵다"면서 "내년 이후에나 중기 대출 등 자금 사정이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중기의 금융 부실 우려는 커질 것"이라면서 "지금처럼 가다간 앞으로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종훈.이아미(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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