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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직격인터뷰] ‘붕괴’ ‘소멸’ 같은 ‘공포마케팅’으론 인구문제 대응 어렵다

첫 대중서 펴낸 인구경제학자 이철희 서울대 교수
서경호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에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지금 같은 저출산이 지속되면 흑사병이 창궐했던 14세기 유럽의 재앙적인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인구경제학자 이철희(59)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첫 대중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역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망자(亡者)와 봉건영주에게는 재앙이었을지언정, 살아남은 일반인에게는 축복이었다”며 “흑사병 때와 유사한 규모로 인구감소가 발생하리라는 예측만으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적었다.

책의 제목은 심심하지만 실증적인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둬 내용은 탄탄하다. 인구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를 집중 분석했다. 이 교수가 ‘공포마케팅’이라는 표현을 쓴 게 눈길을 끌었다. “오랜 ‘공포마케팅’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새 추계 결과가 나올 때마다 충격과 탄식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붕괴’나 ‘소멸’ 같은 과격한 단어도 더 자주 언급된다. 인구추계의 결과가 새롭게 정해진 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예언’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마치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사제로부터 전해 받던 신탁처럼.” 지난 5일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이 교수를 만나 그 얘기부터 물었다.

장래인구추계는 시나리오일 뿐, 확정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해
다양하고 포용적이며 자유로운 사회가 인구문제 근본 해결책
여성·청년·약자도 선호하는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인구추계는 델포이 신탁이 아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20년간 ‘인구와 경제’ 과목을 강의했다. 김종호 기자

Q : ‘공포마케팅’이라고 썼던데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언론의 표현이 과했나.
A : “좀 그런 것 같다. 물론 이 사안이 시급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미래는 그렇게까지 확실하지 않다. ‘멸종’이니 하는 표현은 과하다. 그 정도까지 인구 구조가 변하거나 인구가 줄면 불가피하게 조정이 일어난다. 사람도 희소자원이 되면 가치가 올라간다. 공포에 휩싸이면 합리적 대응이 어렵다.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Q : 인구 추계는 예언이 아니라고 했다.
A : “10년 후의 출산율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거의 점을 치는 영역이다. 10년 전에 합계출산율 0.72(지난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래인구추계는 확정된 인구 변화의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의도로 만든 것도 아니다. 합리적으로 설정한 여러 가정에 기초해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할 뿐이다. 추계는 다양한 가정에 따른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프로젝션(projection)이지, 맞을 가능성을 따지는 포캐스트(forecast, 예측)가 아니다.”

이 교수는 요즘 인구 논의가 전문가의 손을 떠난 것 같다고 걱정했다. 논문이나 학술 연구의 결과에 기반한 논의가 아니라 자극적인 단어로 암울한 미래만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응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 교수가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최근 연구 결과는 어떤 내용일까.

‘노동인구 절벽’ 아닌 ‘완만한 내리막길’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경까지 한국의 총인구는 비교적 완만하게 감소한다. 그 후부터 가파르게 줄어든다. 총인구만을 고려하면 축소사회에 대비할 시간이 있다. 인구 감소로 노동인구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감소 속도는 생각보다 느릴 것이다. 현재 15~64세 생산연령인구의 3분의 2가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특히 여성과 장년(50~64세)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이들이 더 많이 일하게 되면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완화할 수 있다. 노동인구의 본격적 감소는 지금부터 적어도 15년 후에야 시작된다.


Q : 인구 구조 변화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건 착각이라고 했는데.
A : “미래의 고령자는 현재의 고령자에 비해 더 건강하고 교육수준이 높다. 이런 한국 특유의 인구 특성 변화로 생산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이 들어 생산성이 낮아지는 효과보다 더 클 수 있다. 생산성을 반영한 노동 투입은 앞으로 10년 동안 눈에 띄게 줄지 않을 것이고, 20년 후에도 현재의 90% 수준을 유지하다가 이후 비교적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앞으로 20년간은 ‘노동인구 절벽’보다 ‘완만한 내리막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Q :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개선되면 인구변화로 인한 노동 투입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A :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22년 일본 수준으로 높아지면 2047년 노동 투입이 2022년의 92.6%를 유지한다. 이는 경제활동인구가 182만 명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건 ‘희망 회로’를 돌려서 나온 낙관적인 분석이 아니다. 최근 추세로 볼 때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의사 수 25년 안에 2만 명 이상 늘어야


Q : 노동 총량이 앞으로 15~20년간 눈에 띄게 줄지 않는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특정 산업·직종·유형에선 노동력이 큰 규모로 부족할 것으로 봤는데.
A : “아주 가까운 장래에 충격이 있을 거다.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은 이미 사람 구하기 어렵다. 의료와 돌봄 인력 부족은 심각해질 것이다. 현재의 의료와 돌봄 서비스 이용 수준을 유지하려면 25년 안에 의사 수가 적어도 2만 명 이상 늘어야 하고 15년 내로 고령자를 위한 돌봄 인력이 현재의 두 배로 늘어야 한다. 다만, 2050년경부터 인구 감소로 의료서비스 수요가 줄어 의사 인력 과잉 공급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은 노동력 총량보다 특정 부문에서 발생하는 노동 수급 불균형 해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Q : 2050년 이후엔 젊은 취업자 수가 현재의 절반 아래로 떨어진다고 했다.
A : “청년 노동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전체 노동시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젊은 피’의 유입이 줄면 직장 내 역동성이 떨어지고 혁신이 어려워질 수 있다. 충격을 완화하려면 교육제도·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학령기 이전 아동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더 생산적인 젊은 인력을 키워낼 수 있다.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개선하는 것도 청년 인구의 양적 감소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고등교육은 특정 분야의 맞춤형 인력을 길러내기보다 지식·정보 등을 빠르게 습득하고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

노인 대졸 인구 2063년까지 12배 증가


Q : 고령자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A : “65세 이상 대졸 인구는 현재 95만 명에서 2063년에 1200만 명으로 무려 12배나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더 건강하고 더 교육받고 더 의욕적인 노인의 시대가 온다. 나이 들어도 건강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 건강관리 투자를 늘리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전직·재취업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 개인의 역량과 선호에 맞는 일자리 이동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


Q : 정년 연장에는 반대했는데.
A : “앞으로 15~20년간 총량적인 노동력 부족은 없다. 모든 부문·유형 고령자의 양적 고용 확대가 지금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특정 부문의 수급 불균형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된다.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요양보호사나 택시 운전사는 정년의 의미가 크지 않은 업종이다. 정년 연장은 대기업 고령자 고용만 늘린다.”


Q : 이민에 비판적인 것 같다.
A : “이민 확대는 인구 문제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지금 같은 외국인력 도입은 노동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외국 인력에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 인력 부족을 해소하자는 주장은 장기적으로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방안이다. 내국인의 노동 공급 기반을 무너뜨리고, 중장기적으로 외국 인력 유입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Q : 저출산 대책이 효과가 없으니 이젠 인구 감소에 적응하는 데 집중하자는 일부 인구학계의 주장이 있다.
A : “둘 다 중요하다. 저출산 대책은 인구 감소의 속도를 줄인다. 인구 감소 시대에 각자도생으로 적응해 개인의 기회를 찾을 순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만큼 사회 전체적인 대책은 꼭 있어야 한다.”

‘노인 위한 나라’ ‘노인 없는 사회’로

이 교수는 “다양하고 포용적이며 자유로운 사회가 인구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법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차별금지법이 장기적으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 나이가 아닌 사람 자체를 보는 ‘노인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고령친화적 일자리 특성으론 높은 자율성과 유연성, 낮은 스트레스와 신체적·인지적 난이도, 재택근무 가능성 등이 꼽힌다. 이 교수는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는 여성과 젊은이도 선호하며 장애인 같은 사회적인 약자에게도 친화적인 일자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저출산과 인구 문제 대응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에 가깝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과거 정부의 정책이라고 무조건 갈아엎어서도 안 된다. 이런 건 ‘뺄셈의 정책’이다. 차별화가 지나치면 정책이 망가진다.”

◆이철희=196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83학번.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포겔 교수가 이 교수를 인구학 연구로 이끈 스승이다. 1998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구경제학과 경제사가 전공이다.



서경호(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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