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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승진 거부권 달라는 대기업 노조

임단협 시즌 정년연장 화두
대리급인 8년 차 직장인 최모(33)씨는 내년에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진 연공이 쌓일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호봉제를 적용받았지만, 과장부터는 성과에 따른 연봉제로 전환된다. 더는 노동조합(노조) 조합원으로도 활동할 수 없다. 승진한다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는 최씨는 “100세 시대에 가능한 한 오래 직장 생활을 하고 싶은데 보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라며 “과장 이상부터는 천천히 승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고액 연봉·승진을 욕망하기보다 정년까지 ‘가늘고 길게’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본격화한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선 정년연장과 함께 ‘승진거부권’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정도다.

10일 노동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 ‘승진거부권’을 넣었다. 이 회사 생산직 직급은 7~4급(14년)-기원(6년)-기장(6년)-기감(6년)-기정(기한 없음) 8단계다. 사무직은 매니저(4년)-선임매니저(4년)-책임매니저(기한 없음) 3단계로 구성된다. 생산직의 경우 기장에서 기감 이상으로, 사무직은 선임에서 책임 이상으로 승진하면 노조에서 자동 탈퇴하게 되는데 이때 승진을 거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비조합원으로 전환되면서 각종 혜택을 포기해야 하는 점과 임금체계가 변경돼 경쟁이 과열되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부담을 느끼는 점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조합원 입장에선 고용 안정을 위한 안전장치로, 노조 입장에선 조합원 숫자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되도록 ‘길게’ 회사에 남으려는 욕구도 커진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만60세 정년을 64세로, HD현대그룹의 조선 3사 노조와 삼성그룹 노조연대, LG유플러스 제2노조는 60→65세로 늘려줄 것으로 요구했다. 젊은 층에선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통한 개인 행복을 선호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은퇴가 머지않은 중·장년층은 되도록 오래 회사에 남아있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란 풀이다.

‘승진 코스’로 통하는 기획부·인사부 등 본사 핵심 부서 근무가 과거 직장인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최근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선 선호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4대 그룹의 한 인사담당 임원은 “아직 대세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젊은 직원 중심으로 이런 성향이 늘고 있다”며 “‘회사에 헌신해 인정받겠다’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에게는 ‘내 삶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강하다”고 말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점도 한몫한다. 노동계에서는 법정정년 연장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013년 법정정년을 60세로 연장한 이후 약 10년간 변동이 없는 상태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현재 63세에서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늘어나면서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 기간)’가 길어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저출산 고령화 심화에 따른 노동 공급 부족 및 연금 재정 악화, 미래세대의 부담 등을 고려해 정년연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년연장 외에도 ‘계속고용’ 및 ‘재고용’ 등 형태도 가능하게 해 기업에 유연한 방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고, 직무급 임금체계와 임금피크제 도입 시행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업은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연장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정책적으로 뒷받침 됐을 때 단계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우림(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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