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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시선] 감세 전쟁, 어장관리와 희망고문 사이

하현옥 논설위원
요즘은 널리 쓰이는 연애 용어지만, 혹시 몰라 일단 정의부터 해본다. 먼저 ‘어장관리’. 물고기를 어장에 가둬두듯 실제 사귀지는 않지만 마치 사귈 듯 잘해주며 환심을 사면서 주변의 여러 이성을 동시에 관리하는 태도. 그리고 ‘희망고문’.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은 희망을 줘서 그들을 조종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것. 이 두 용어에는 ‘전략적 모호성’에 기대어 상대를 좌지우지하려는 알량한 속셈이 숨어 있다.

22대 국회 출범과 함께 막이 오른 여야의 감세 전쟁은 어장관리와 희망고문의 변주가 될 듯하다. 부자와 불로소득을 겨냥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상속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이 중산층까지 저격하게 되자, 이들을 달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여야는 세제 개편의 기치를 들었다. 문제는 ‘부자 감세’와 ‘감세 포퓰리즘’이란 논란에 발목 잡혀, 세제 개편 논의가 애태우기와 의도적 헛발질로 그칠 우려다.

종부세 개편은 희망고문과 어장관리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종부세 다주택 중과세율 폐지를 만지작거리며 종부세 폐지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며 희망고문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9만7000명이던 종부세 과세 인원은 2022년 128만3000명으로 3배 넘게 뛰었다. 납부 세액은 1조7000억원에서 6조7000억원으로 4배로 늘었다. 1주택자의 충격은 더 컸다. 같은 기간 종부세를 낸 1주택자는 3만6000명에서 23만5000명으로, 납부 세액은 15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급증했다. 윤석열 정부의 완화책으로 부담은 상당 폭 줄었지만, 이중과세와 징벌적 과세 논란은 여전하다.

지난 정부에서 종부세의 칼날을 휘둘렀던 야당은 ‘종부세 어장관리’ 중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주택자의 종부세 폐지를 시사하며 개편의 군불을 땠다. 종부세가 ‘한강벨트 초토화세’로 불리며 ‘정권교체 촉진세’로 작용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진성준 정책위 의장이 “당의 공식 논의는 없다”며 기존 지지자 어장관리에 나서자 지난 3일 박 원내대표는 “1주택 실거주에 한해 세금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지금은 적당한 타이밍이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다. 납세자 입장에서 종부세 개편이 희망고문의 길로 접어든 모양새다.



중산층 저격한 종부세·상속세에
정부·여야, 세제 개편 경쟁 돌입
부자 감세 논란에 쇼로 그칠 수도
민주당 임광현 원내부대표는 지난 4일 상속세 일괄공제 금액이 28년째 5억 원인 것을 지적하며, 중산층의 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상속세법 개정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인재활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임광현 의원의 모습. 뉴시스
종부세와 달리 야당은 중산층을 겨냥한 ‘상속세 어장관리’는 일단 제대로 할 태세다.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4일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법 개정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으로 2022년 기준 상속 재산가액 5억~10억 구간 과세 대상자가 2020년 대비 49.5% 늘고, 이 구간의 상속세 결정세액이 68.8% 급증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재산 평가는 시가로 하면서 상속세 공제한도(10억원)와 일괄공제액(5억원)은 1997년 이후 28년째 그대로다 보니 중산층도 상속세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됐다. 부동산 R114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12억9921만원이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상속받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야당의 전향적 태도에 순풍이 부는 듯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상속세 개편은 희망고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여당은 최대 60% 세율을 적용받게 되는 최대주주 할증제 폐지와 상속 재산 전체에 매기는 유산세를 피상속인별로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로의 개편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을 위해 과도한 기업 상속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지만, 야당은 ‘초부자 상속세 감세’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표심이라는 어장관리를 위해 정부가 꺼내 든 금투세 폐지도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됐다. 금투세는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해 연간 5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낸 투자자에게 소득세를 매기는 것으로, 이익에서 손실을 뺀 수익 5000만원 초과분의 20%(3억원 초과분은 25%)가 세금이다. 내년 도입을 앞두고 있지만 ‘개인투자자 독박 과세’라는 비판 속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폐지를 약속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야당은 금투세 폐지가 부자 감세라고 주장하며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감세의 범위와 폭에 대해서는 여야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건설적인 논의와 개편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세 정책이 어장관리와 희망고문 사이에서 머무른다면 조세 저항은 더 거세질 것이다. 국민이 보고 싶은 건 ‘감세 호소 쇼’가 아닌 건전한 정책 도출이다.



하현옥(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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