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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북은 오물, 남은 전단…‘바람 전쟁’이 군사 충돌로는 번지지 말아야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남과 북이 같은 레일 위에서 마주 보며 달리고 있다. 남북이 대북 전단과 오물을 담은 풍선 살포에 이어 군사적인 대치 국면을 이어가면서다. 북한은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이어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로 위협하고 나섰다. 특히 북한은 최근 오물을 담은 풍선을 날리면서 서해에서 충돌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를 열어 휴전선 일대에서 군사 활동을 중단키로 한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는 조치로 맞섰다. 북한이 꺼리는 대북 방송이나 전광판 설치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남북이 ‘강 대 강’으로 대치 수위를 높이며 충돌 가능성이 커졌고,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70년간 이어진 남북 ‘전단 전쟁’
‘오물 풍선’은 시나리오의 일부
북, 서해 접경 도발 준비할 수도
뒤통수 치기 공세 미리 대비해야

① 북한은 왜 오물을 날렸나

북한이 지난달 28일 쓰레기와 두엄 등을 넣어 살포한 오물 풍선이 경북 영천에 떨어졌다. [연합뉴스]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는 강경 카드를 꺼낸 직접적인 배경은 북한의 오물 풍선이다. 북한은 지난달 28일과 지난 1일 한국을 향해 거름과 담배꽁초, 생활 쓰레기를 담은 수 천개의 풍선을 살포했다. 북한은 지난달 10일 탈북자가 주축이 된 국내 단체들이 날린 대북 전단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전단과 미국 달러화, 가수 임영웅씨의 노래를 담은 USB를 담아 풍선을 날린 것에 오물로 대응한 것이다. 북한은 ‘우리 식’을 내세우며 서방 문화를 저질로 취급한다. K-팝으로 불리며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의 문화를 북한은 반동 문화로 규정하고, 주민들이 접해선 안 될 극도의 경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물’ 또는 ‘쓰레기’로 규정한 남측 문물을 담은 풍선에 자신들은 ‘진짜 쓰레기’로 맞선 모양새다.

게다가 북한은 자극적인 전단 내용의 전파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으로 날린 전단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하거나, 그의 부인을 비하하는 내용도 담겼다. 북한의 체제 운영 원리인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융화묵과(融和默過)하지 말고 비상 사건화”하도록 하고 있다(3조3항). 한국을 찾았던 북한 응원단이 비에 젖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보고 울며 한국 정부에 항의하며 수거에 나섰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지난달 25일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하며 군사 분야에서 대남 공세적 대응과 서해 충돌을 암시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오물 풍선이 대북 전단에 대한 대응 차원을 넘어 의도적인 긴장 조성을 위한 유인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남북 ‘전단 전쟁’의 오랜 역사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달 10일 북한으로 보내는 전단 풍선을 들고 있다. [뉴스1]
군에서 전단은 심리전의 일환이다. 적의 지도자나 정책, 전략을 비난하거나 전황을 알려 적군의 동요를 시도하는 수단 중 하나가 전단이다. 또 외부 소식을 전달해 상대를 동경하는 심리가 싹트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다. “유엔군 수용소에는 따뜻한 잠자리와 좋은 음식과 충분한 약품들이 북한군 장병인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이다. 남북이 28억 장의 전단을 살포했던 6·25전쟁이나 적군의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단을 뿌렸던 베트남 전쟁은 전단을 활용한 심리전의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6·25 전쟁 때는 ‘안전보장증명서’(SAFE CONDUCT PASS)나 귀순증을 전단 형태로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도 남북의 전단 살포는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수시로 전단을 날려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했다. 한국은 국민(초등)학교에서 북한의 전단을 발견할 경우 신고하도록 교육하고, 발견한 전단을 학교나 경찰에 가져가면 책받침이나 자, 노트 등 학용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한국이 체제 경쟁에서 확연히 우위를 점하고, 90년대 북한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대남 전단은 줄어들었다. 반면, 한국은 탈북민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간단체들이 20여년 전부터 북한의 핵 개발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전단을 공개적으로 날렸고, 북한은 반발했다. 북한은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쏘며 대응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이 쏜 탄환이 남측 접경지역 민가에 떨어지기도 했다. 남북은 돌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2018년 전단 살포를 비롯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③ ‘치고 빠진’ 북, 여기서 멈출까

북한은 지난 2일 잠정적으로 오물 풍선 살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국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키로 하긴 했지만 9·19 군사합의를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고 조건부로 무효화하며 나름대로 관리에 나선만큼 북한 역시 여기서 멈춘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정치국 회의(지난달 24일), 국방성 부상의 담화(지난달 25일) 등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추가 움직임도 예상된다. 북 국방성 부상은 담화에서 대남 대응 방향 세 가지를 공개했다. 대남 공세적 대응, 해상 주권 보호를 위한 자위력 행사, 오물 풍선 살포 등이다. 이후 북한은 정찰위성과 18발의 초대형 방사포 동시 발사,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군사적 행동에 나섰다. 오물 풍선이 치밀한 시나리오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오물 풍선에 한국이 대북확성기 카드를 꺼내 들자 수 시간 만에 오물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게 확성기가 무서워서라기보다 일종의 연막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이 언급한 해상, 즉 서해의 긴장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서해는 한반도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전, 연평·대청 해전 등 북한의 도발과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헌법을 개정하고 영토 조항을 삽입하도록 했다. 북한이 헌법에 해상 경계선을 현재의 북방한계선(NLL)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NLL 이남으로 삼을 경우 남북 간 경계선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 우려가 있다. 북한이 이번 여름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등을 도발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이나 목함지뢰 등 한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뒤통수 치기 도발에 나선 전례가 있다. 지난 2일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를 잠정 중단한 뒤 일단 잠잠하다. 어쩌면 기상천외한 ‘방법’을 준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풍선이 오가며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풍선은 바람의 방향에 좌우되지만 군사적 충돌은 남북 정책결정권자들의 의지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용수(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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