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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북 외교관 "확성기 영향 대단…北, MZ군인 동요 두려워해"

"확성기 방송을 통해 접경 지역 군인의 마음을 빼앗으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도록 정신 전력을 와해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소초 장병들이 철거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확성기로 전파된 정보로 인해 최근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김정은의 권위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며 3일 중앙일보에 이같이 말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인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도 "북한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흥얼거릴 정도로 확성기로 흘러나오는 한국 노래와 뉴스의 영향은 대단하다"고 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측으로 '오물 풍선'을 내려보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부의 확성기 재개 방침 발표 5시간 만에 사실상 한발 물러선 배경에는 전방을 지키는 젊은 '북한판 MZ세대' 군인들의 사상적 이탈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됐다고 탈북 고위 당국자들은 분석했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2021년 2월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하는 모습. CNN 캡처.
젊은 軍 '사상 침투' 두려움
북한은 접경 지역 군부대를 주기적으로 '교방', 즉 주둔지를 교체시킬 정도로 남측과 맞닿은 군인들의 사상 이완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접경지를 통한 북한 군인의 귀순만 14번에 이른다. 류 전 대사대리는 "확성기 데시벨이 워낙 큰데, 전선에 있는 군인들을 향해 '최고 존엄'(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하는 방송으로 도배하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가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우리 군의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라는 점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류 전 대사대리는 "북한은 대남 확성기가 있다고 해도 장비의 성능이나 전력 수급 현실로 볼 때 사실상 맞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대북전단은 오물 풍선으로 맞섰지만, 확성기까지 켜지면 손쓸 방도가 없기 때문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북한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떨어져 승용차 앞유리창이 박살난 모습. 경기남부경찰청.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3년 박정희 정부 때 시작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천안함 폭침(2010), 목함지뢰 사건(2015), 4차 핵실험(2016) 등 북한의 중대 도발 시 대북 확성기를 재설치하거나 방송을 재개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확성기는 모두 철거돼 현재까지 방송이 중단됐다.
"전역 후 '이등병의 편지' 부를 정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확성기가 재개됐을 때는 '뱅뱅뱅', '오늘부터 우리는', '소원을 말해봐' 등 대중가요가 방송 다수 포함됐다. 10대에서 20대가 대부분인 전방의 북한 군인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태영호 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에 "접경지역 군인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새카만 밤에 굶주린 배를 붙잡고 근무를 서던 중 트로트 등 한국 노래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면 그렇게 귀에 잘 박힌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오물 풍선 도발 등을 다시 감행하면 반드시 확성기를 다시 켜겠다고 예측 가능한 경고를 해둬야 한다"며 "확성기가 남북 대결을 격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자제하도록 해 충돌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1회 이산가족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뉴스1.
"군 복무의 낙…후방에도 전파"
대북 확성기 방송이 이전보다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경향이 강해진 MZ 세대 북한 군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970년대 북한 측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전방지역 군인들은 확성기 방송을 듣는 게 군 복무의 낙"이라며 "본인만 듣는 게 아니라 후방에 이를 전달하며 이들이 직접 일종의 '안테나', '중계탑'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사상 교육이 투철할 때도 확성기 방송은 잘 먹혔는데, 최근 문화적으로 남측에 훨씬 경도된 '장마당 세대'에 대한 체제 이완 효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북한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는 앞선 남북 간 고위급 회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15년 8월 북한이 남측 확성기에 포탄까지 쏜 뒤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여했던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다른 문제는 거의 꺼내지도 않은 채 확성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대가로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박현주.왕준열(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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