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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은의 트렌드터치] ‘미완의 미’와 AI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3주 전 미국 오픈A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미라 무라티의 소개로 시작된 26분간의 신제품 발표(사진)는 마치 시간을 2년 6개월 당긴 것 같은 충격을 불렀다. 응답 속도는 높이고 비용은 줄이며, 텍스트를 넘어 음성·이미지까지 실시간으로 분석·추론함으로써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AI) 기술이 선보였다. 이런 진보가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특히 대화 간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사람의 반응 속도와 비슷하게 평균 320밀리초(0.32초) 간격으로 답했다. GPT 3.5버전에서 2.8초, GPT 4버전에서 5.4초였던 것과 비교하면 14개월 만에 이룬 괄목할 발전이다.

완벽한 기술 추구하면 할수록
모사하기 힘든 인간미 아쉬워
적당 수준의 미완성감과 배려
AI의 활용 위해서 필요할지도

지난 5월 13일 오픈A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미라 무라티가 'GPT-4o'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사람과 매끄러운 대화를 만드는 이 0.32초(최소 0.232초로도 가능)는 AI와 소통하며 공존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일까? 무엇을 물어봐도 즉답을 내놓던 채팅창을 보며 경이롭다고 느끼던 필자의 감정이 달라진 건 매우 사소하고 짧은 경험 때문이었다. 어떻게 물어보면 가장 마음에 드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 문장을 다듬으며 프롬프트를 작성했는데, 순식간에 장문을 단락까지 지어 써내려가는 대화창을 바라보며 필자는 처음으로 ‘성의 없다’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한참을 고민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AI는 공감의 겨를조차 없이 그저 임무 수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운함마저 느껴졌다. 아이러니한 고객 경험의 지점이었다.

일사천리로 써내려가는 창을 바라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AI와의 소통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다. 사람들이 기계나 로봇에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많다. 몇 년 전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연구실에서 4족 보행 로봇의 평행 유지능력 테스트를 위해 실험 대상인 로봇 개를 발로 차고 쓰러뜨리는 실험 장면이 ‘로봇 학대’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퍼졌다. 고의로 밀쳐도 균형을 지키는 진보된 기술에 대한 감탄보다 인간에게 학대당하는 듯한 로봇에 가여움을 느끼는 감정이 훨씬 크게 다가온 것이다.

AI·로봇과 고객 간의 관계 설정은 오늘날 매우 중요한 기업 어젠다 중 하나인데, 사람들이 로봇청소기에 감정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누군가를 대신해 열심히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를 보면서 흐뭇하거나 대견하다고 느낀다. 혹여 운행 중 구석에 갇히거나 오류로 중간에 멈추면 안쓰럽게 느낀다는 소비자 목소리도 있다. 아이가 움직이는 로봇청소기에 종이를 작게 잘라주면서 먹이 주듯 먹였다는 에피소드나, 잉잉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다닌다고 해서 ‘잉잉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는 얘기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전자제품에서 최대의 적인 소음을 오히려 의인화의 포인트로 삼은 걸 보면,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의외의 순간에 하이테크에 인간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는 투박하고 평온한 상태를 가리키는 미적 관념인 ‘와비 사비(わび·さび)’라는 단어가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므로 불완전한 자연스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니, 오히려 이를 미(美)로 승화시켜 ‘미완의 미’를 추구한다. ‘와비’는 ‘실의’라는 본뜻에서 점차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의라는 뜻으로 발전한 말이고, ‘사비’는 ‘오래됨’, ‘빛바램’을 뜻하는 단어에서 고요한 성찰을 대변하는 단어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 적당한 미완성감을 경외하는 미의식이 된 것이다. 가령 깨진 도자기 찻잔의 균열을 황금 에폭시로 붙여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수선의 흔적을 부각하는 예술성이 ‘완벽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 즉 ‘와비 사비 정신’을 잘 설명해준다.

수많은 첨단기술이 빠른 속도를 보여줄수록 매끄러운 고객 경험을 선사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AI의 주저함(latency)을 없애는 것이 절대적 미덕일까? 즉각적으로 정답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 의도에 공감해 주고, 그 사람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려는 진정성을 느낄 간격이나 피드백일 수 있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빨리할 수 있음에도 더딘 척, 사용자 고민의 깊이를 헤아리기 위한 적정 속도는 과연 몇 초일까? 숨 가쁜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완벽보다 배려일지 모른다.

우리의 조상들은 수확기에 잘 익은 연시를 다 따지 않고 감나무 꼭대기에 일부러 한두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놓았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임에도 작은 생명에게 나눔을 베푸는 선조들의 지혜를 AI가 어떻게 흉내 낼 수 있을까. 잘 익은 감은 모두 수확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까치밥이라는 인간미 넘치는 배려가 이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오답이 그리워지는 세상이 올 것만 같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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