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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통일대교 건너 제3땅굴부터 도라산역까지, DMZ에서 이어 보는 과거·현재·미래

분단의 상징에서 생태계 보고·평화 공간으로 ‘DMZ’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입니다.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리는 6월 6일 현충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 등이 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달이죠.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아픈 상처로 남은 6·25전쟁의 흔적을 찾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내국인은 물론이고 방한한 관광객들도 가장 방문하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히는 비무장지대(DMZ)죠. 뜻깊은 6월을 맞아 항상 곁에 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DMZ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경기도 파주 인근 DMZ와 접경지역을 찾아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봤습니다.
정하은·이서준·권혜원(왼쪽부터) 학생기자가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살아 숨 쉬는 DMZ와 접경지역을 방문해 그곳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며 새롭게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DMZ(Demilitarized Zone)는 군사력을 동원해 무장을 하지 못하는 지역을 말합니다. 자국의 영토임에도 국제법상 병력 및 군사시설을 주둔시키지 않을 의무가 있는 특정 지역이나 구역을 의미하죠. 한반도의 DMZ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의해 휴전되며 생겨났어요. 육상의 군사분계선인 MDL(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양국의 군대를 후퇴시키기로 약속하면서 만들어진 지역입니다. 임진강 하구인 경기도 파주시 정동리에서 동해안인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까지 총 248km, 1292개 표지판으로 이어져 있죠.


통상적으로 DMZ 일원은 정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DMZ,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한 민통선(민간인통제선)지역, 접경지역지원특별법에 의한 접경지역을 포함하죠. 민통선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10km 밖에 설정된 경계선을 말합니다. 민통선과 군사분계선 사이 공간은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민통선지역 또는 민북지역이라고 해요. 허가받은 출입 영농과 입주 영농은 가능하지만, 일반 민간인의 출입은 통관 절차를 거치는 등 군 초소에서 통제하죠. 접경 지역은 남북 분단 이후 국가 안보를 위해 지역 발전과 사유 재산에 불이익을 받아온 군사적 접적지역 및 그 인근지역을 말합니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강화군·옹진군), 경기도(고양시·김포시·동두천시·양주시·파주시·포천시·연천군), 강원도(춘천시·고성군·양구군·인제군·철원군·화천군)의 15개 시·군이 해당하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DMZ 하면 철책선·초소·민통선·지뢰 등이 떠오를 텐데요. 분단의 상징이자 적대의 공간이었기에 치유와 평화의 공간이 될 수도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땅입니다. 70여 년간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중요성과 관심도 높아지고 있죠. 무엇보다 한국인으로서 남북 분단의 현장을 둘러보며 과거에 대한 지식과 역사적 배경·의미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서준·권혜원·정하은(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경기도 파주 인근 DMZ와 접경지역을 찾아 남북 분단의 현장을 둘러보며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DMZ로 떠나는 여행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살아 숨 쉬는 DMZ에 가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은 우선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줄 남경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임연구원을 만나 통일대교로 향했습니다. 자유의 다리를 대체해 남북을 다시 이으려 1998년 개통된 통일대교는 임진강을 건너 남북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죠.
‘제3땅굴’이나 ‘도라전망대’ 등에 가기 위해서는 통일대교를 지나가야 한다. 검문소와 철통같은 보안은 이곳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해준다.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이 이루어졌던 장소이기도 해요. 방북 하루 전날 개통된 통일대교를 지나 소를 몰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은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은 첫 번째 민간인이 되었죠. ‘제3땅굴’이나 ‘도라전망대’ 등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다리를 지나야 해요. 검문소와 철통같은 보안은 이곳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해주죠. 취재 목적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고, 검문 후에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남 연구원이 “비무장지대면 무기가 없어야 할 것 같죠. 근데 군인들이 있어요”라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통일대교 넘어올 때 군인들이 총 차고 있었죠. 우리가 비무장지대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비무장된 곳이 아니에요. 가장 무장이 많이 되어 있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비무장지대가 어떠한 곳인지 눈으로 직접 볼 거예요.”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제3땅굴입니다. 1978년 10월 17일 세 번째로 발견된 북의 군사 남침용 땅굴로, 입구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35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죠. 1974년 북한에서 온 김부성의 제보로 이 일대의 땅굴 찾기를 시작해 4년여 만에 발견했어요.
세 번째로 발견된 북의 군사 남침용 땅굴로, 입구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35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제3땅굴을 관람한 소중 학생기자단.

제1보병사단 소속 군인이 직접 내부 구조를 설명했죠. “이 땅굴의 총 길이는 1635m가 되겠습니다. 지하 73m에 위치하며,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으로 1200m, 남으로 435m를 파내려 오다가 발견되었습니다. 높이 2m, 폭 2m의 둥근 아치형 구조로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에 우리 군은 북한이 다시는 이 땅굴을 이용하지 못하게 3개의 콘크리트 차단벽을 안에 설치하였습니다.” 현재 265m만 도보로 견학할 수 있으며, 견학 구간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부 지하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죠. 남침용 땅굴이라는 근거도 궁금했는데요. 땅굴의 경사가 북쪽으로 약 3도가량 기울어져 물이 북쪽으로 배수가 되도록 했고, 암반을 폭파하기 위한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이 남으로 향해 있으며, 땅굴암벽에 검은색 석탄칠이 됐는데 예전부터 있었던 자연동굴로 위장하기 위해 칠했으나 이 지역은 석탄이 조금도 나지 않는다고 했죠.

휴대전화 등 개인물품을 사물함에 보관한 후 안전모를 쓰고 도보관람로를 통해 땅굴로 들어갔습니다. “지금부터 358m를 내려갈 건데 이 길은 남측에서 땅굴을 찾기 위해 판 거예요. 내려가서 평평하게 걸어 다니는 길이 북한 쪽에서 판 길이고 둘의 모양이 다를 거예요. 지금 한반도는 휴전 중이지만 언제든지 전쟁이 날 수 있고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소죠.”(남) 처음엔 춥게 느껴지지만 높이 2m가 채 안 되는 북측이 판 땅굴을 걸어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땀이 날 정도입니다. 너무 좁은 통로를 보니 땅굴을 통해 탱크나 병력 이동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죠. “사실 어른들은 이런 걸 통해서 조금 북한을 더 무섭게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고 진짜 무서운 건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하고 판단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도라전망대에 있는 지뢰 경고판이 위험 지역임을 알려주고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이곳이 계속 위험한 지역이어야 하는지. 왜 여기가 위험한 지역이 되었고, 위험한 지역이 아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라전망대입니다.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5km 떨어진 해발 167m의 도라산 정상에 있으며 1987년 1월 개방 전까지는 비무장지대여서 출입 불가였죠. 2018년까지 30여 년간 사용되던 옛 도라전망대를 지나 신 도라전망대로 갔습니다.
1987~2018년까지 30여 년간 사용된 옛 도라전망대의 모습.

제3땅굴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어 외국인들이 DMZ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도라전망대에 있는 지뢰 경고판이 위험 지역임을 알려주고 있었어요. “여기가 계속 위험한 지역이어야 될까요. 왜 여기가 위험한 지역이 되었을까, 위험한 지역이 아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가 분단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게 좋아요.”
도라전망대에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망원경을 통해 북측 땅을 살펴보고 있다. 안개가 많은 날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남방한계선, 휴전선, 태극기 깃대 등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도라전망대 옥상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송악산, 개성시, 김일성동상, 북한 선전마을인 기정동 등을 볼 수 있어요. 하필 안개가 많은 날이라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죠, 하지만 남방한계선, 휴전선, 우뚝 선 흰색 고층 건물, 태극기 깃대 등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날씨가 좋을 때는 송악산, 개성시, 김일성동상, 북한 선전마을인 기정동 등도 볼 수 있다.

남 연구원이 “망원경 보는 거 재밌죠. 근데 우리가 집에서 뭘 하고 있는데 누가 저쪽에서 망원경을 가지고 보면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좋지는 않겠죠”라고 답했어요. “내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누군가 날 관찰하고 있으면 되게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항상 반대로 생각해보면 좋잖아요. 여러분이 저런 걸 보고 눈으로 확인하는 건 좋은데 이렇게 하는 게 저들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받은 방문 증명서를 들고 기념 촬영을 남긴 소중 학생기자단.

이제 남과 북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에 관한 출입 업무를 담당했던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방문했죠. 2003년 11월에 건립돼 남북을 오가는 당국자들이나 2013년 3월 이전까지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출입 절차를 관리했어요. 공항처럼 세관·출입 심사·검역 등의 출입 업무를 처리했죠. 황찬숙 실무관이 “해외에 나갈 때 출국, 들어올 때 입국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곳에서는 출경·입경이라고 해요. 남북 간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민족 내부 간 특수관계로 경계를 넘어선다고 해서 출경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곳의 명칭도 남북출입국사무소가 아닌 나라 국(國)자가 빠진 남북출입사무소입니다.” 출경하기 위해 세관 검사를 할 때, 북한에 갈 때 가지고 가면 안 되는 휴대금지 물품들이 안내되어 있었죠. 휴대전화를 비롯해 내비게이션·GPS 같은 경우 북측 지형이 관측되기 때문에 안 되고, 신문·잡지·노트북도 가지고 갈 수 없죠. 노트북 같은 경우 업무용으로 필요하면 사전에 통일부 승인을 받은 후에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해요. 망원 렌즈가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도 가지고 갈 수 없고요. 일반 디지털카메라는 가능합니다. 미신고된 화약 약품류도 금지 품목이죠. 북한에서 가지고 오면 안 되는 반입 금지 물품들도 진열됐죠.
북측에 들어가는 남측 차량은 구별을 위해 ‘림시’라고 적힌 임시 번호판(위 사진)과 황색 깃발을 부착해야 한다.

엑스레이 검색대를 거친 후에는 법무부 인원 심사를 해요. 입국 심사원에게 방문 증명서를 제시하면 확인 절차를 거쳐 들어가게 됩니다. 통일부 장관이 발급해 주는 방문 증명서는 여권과 같은 역할을 하죠. 기념으로 받은 방문 증명서에 도장을 받고 지나갔어요.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장소는 출경 심사를 모두 마친 인원들이 차량을 탑승하는 곳입니다. 북측에 들어가는 남측 차량에는 번호판 가리개와 황색 깃발을 반드시 부착하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정답은 북측에 들어가 있는 우리 남측 차량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모든 출경 수속을 마치면 북한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른쪽에 개성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였죠. 화살표 방향으로 쭉 나가면 도라 통문이 있고, 도라 통문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북한입니다. “도라 통문은 우리 남방한계선 부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곳에서 군사분계선까지는 우리 남측 군의 호송을 받아서 이동하게 되고요. 군사분계선에서부터는 북측 군의 호송을 받아서 이동하게 됩니다. 도라 통문에서 북한까지 약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굉장히 가깝죠. 그렇게 북한 구경을 모두 마치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하차를 하게 됩니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 심사를 마치면 북한으로 갈 수 있다. 개성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시선을 끈다.

지금은 폐쇄됐지만 남북이 합의해서 만든 개성공단이 가동됐을 때는 그곳에 근무하는 인원들이 있었기에 일평균 약 900명, 차량 약 700대가 이곳을 통해 왕래했었다고 해요.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을 위해 이곳을 통해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고, 2007년 12월에서 2008년 11월 말까지는 개성 관광이 진행되기도 했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측 선수단 및 예술단도 이곳을 통해서 입경과 출경을 했어요. 개성공단 출경차량으로 가득 차 있던 도로가 현재는 아무것도 없이 휑한 모습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남과 북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에 관한 출입업무를 담당해 남북출입 20년의 기록이 담긴 남북출입사무소 역사관을 찾아 문수진(오른쪽)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남북출입 20년의 역사와 기록이 담긴 남북출입사무소 역사관도 둘러봤습니다. 지난해 개관한 역사관에는 남북출입사무소가 문을 열기까지의 과정, 경의선·동해선 도로로 출입하는 모습, 남북 간 육로 개통을 위한 남북 간 합의문서 등 관련 문서·사진·영상 등 모두 250점의 자료들이 전시됐죠. 특히 조금 전 설명만 들었던 차량에 꽂아야 하는 표식도 볼 수 있었어요. 문수진 큐레이터가 “황색 깃발은 차량에 꽂고, ‘림시’라고 적힌 임시 번호판을 달아야 북측에 들어갈 수가 있었어요”라고 설명했죠. 여성 운전자의 경우 여성 운전자 운전증 표식을 차량 앞에 붙이면 북측 여성 세관원이 나와서 검문한다고 해요.
남북출입사무소 역사관에서 체험한 출입증(왼쪽 사진)과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념으로 받은 방문 증명서.

개성공단 투자 안내서, 생산하고 휴식도 취하는 북측 근로자의 사진이 눈에 띄었죠. 남측과 북측이 서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주고받았던 공문서도 있습니다. “‘긴급 출경’이라는 게 보이죠. 남측 관계자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데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긴급하게 다시 입경해야 하니 그때 서로 주고받았던 공문서죠.” 전시장에는 실제 사용했던 방문 증명서와 함께 방문하고자 하는 북한지역, 방문목적 등을 입력하면 출입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간접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죠. 이밖에 금강산 관광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리플릿, 지금은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남방한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사진을 찍는 느낌을 주는 포토존에서 기념촬영도 놓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을 통해 북측 통문을 지나 2007년 열차 시범 운행을 한 판문역의 모습까지 봤어요.
남한의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은 마지막 역이면서 북으로 갈 수 있는 첫 번째 역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다.

역사관을 나와 남한의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으로 갔죠.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의선 복구 사업이 시작되어 2002년 4월 11일 완공된 역사는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이 서로 마음을 열며 하나로 만나는 모습을 형상화해 설계했다고 해요. 황 실무관이 “남쪽에서는 마지막 역이지만 미래에는 북으로 갈 수 있는 첫 번째 역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라고 설명했죠. 도라산역은 경의선 철도가 실제로 운행되면 북한을 거쳐 중국, 유럽까지 갈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국제선 승강장을 보유한 역입니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이 유라시아 철도를 이용했다고 해요. 평양 205km, 서울 56km라고 쓰인 이정표도 시선을 끌었죠. “철도 아래에 까는 침목이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침목에 함께 서명하기도 했어요.” 플랫폼에 역명을 알리는 입간판에 다음 역을 개성으로 표기해둔 게 보였습니다. 경의선을 타고 북한까지 갈 날이 눈앞에 그려졌어요.
도라산역의 표지판을 보니 경의선을 타고 북한까지 갈 날이 눈앞에 그려진다.

남 연구원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북한을 가는 이유가 뭘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분단됐기 때문에요”라고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분단 때문에 불편한 적 없잖아요. 근데 우린 생각보다 분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그게 잘 안 드러날 뿐이죠. 분단되기 전에는 그냥 왔다 갔다 했던 곳인데 지금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멀리 있는 곳이 되고 망원경으로 쳐다봐야 되는 곳이 되었죠. 여러분이 ‘통일을 왜 해야 돼요?’ 하는 건 적극적으로 동의해요. 통일을 왜 해야 되는지 저도 이제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 분단 때문에 불편해진다는 거죠. 우리가 좀 더 일상생활을 살기 위해서라도 분단을 해결해 내야겠죠. 그 여러 방법 중에 하나가 통일인 거고 통일이 아니어도 분단이 만들어낸 많은 것들을 조금 치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불편한 게 잘 안 느껴지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불편한 걸 수도 있다는 걸 한 번쯤은 알아보면 좋겠고, 이런 곳이 오기 불편한 곳이 아니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던 곳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임진강 독개다리는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전쟁 전 철교의 형태를 재현, 과거·현재·미래 구간으로 구성된 다리를 걸으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다시 임진각으로 넘어와 임진강 독개다리를 방문했습니다.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길이 105m, 폭 5m로 전쟁 전 철교의 형태를 재현, 과거·현재·미래 구간으로 구성된 다리를 걸으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관광형 인도교예요.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 독개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던 거라 독개다리라고 하죠.”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와 미래지향적 의미를 담아 만든 이 다리는 민통선 내 역사·자연 풍광을 별도 출입허가 절차와 인원제한 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죠.
임진강을 완전히 건너가지 못하고 멈춰 선 독개다리 끝자락에는 특수 유리가 설치된 전망대가 있다.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임진강 철교 기둥의 총탄 자국.

임진강 철교 기둥에 새겨진 총탄 자국들은 전쟁이 남긴 상처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한테 전쟁의 위협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 더 많아요. 전쟁을 안 했으면 이렇게 끊어진 걸 보지 않아도 되고, 새로 만들어진 걸 보지 않아도 되고, 그냥 편하게 왔다 갔다 해도 되는 곳이에요. 관광지로 만들어졌지만 원래는 없었어야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임진각에는 신의주로 향하던 도중 연합군에 의해 폭파되어 그 자리에 멈춰 선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의 화통도 전시됐다.

독개다리 근처에 있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도 안 보고 갈 수 없습니다. 6·25전쟁 때 신의주로 향하던 도중 폭탄을 맞아 그 자리에 멈춰 선 증기기관차인데요. 연합군 군수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개성역에서 한포역까지 올라갔던 열차가 중공군에 밀려 장단역까지 내려왔다가, 결국 후퇴하던 연합군이 북한군에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열차를 폭파하면서 화통만 남게 되었죠. 그동안 비무장지대 안 옛 장단역 남쪽 50여m 지점 철로 옆에 붉게 녹슨 채 방치되어 있다가 2005년 임진각으로 옮겨졌고, 보존처리를 거쳐 2009년 6월부터 임진각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와 기념 촬영을 남긴 소중 학생기자단.

남 연구원이 기차가 전시된 걸 보고 북한한테 폭격 맞아서 멈춘 열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했죠. “우리는 북한이 우리한테 공격한 거를 먼저 기억해요. 이 열차는 남한의 열차라고 볼 수 있고, 이거를 폭파한 주체는 연합군이었죠. 그런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면 이게 그런 의미가 있구나 생각할 텐데 일부러 찾아봐야 할 정도로 현판이 작게 있어요. 가짜 뉴스 알죠, 그냥 기차만 보고 전쟁 때 북한한테 폭격 맞아 이렇게 됐나 봐 생각하는 거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요. 어떻게 전시하는지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직접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DMZ를 평화의 장소라고 얘기하면서도 북한한테 공격받았다는 거, 우린 전쟁 중이었다는 거, 우린 피해자라는 걸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쟁 중에 우리만 죽은 거 아니에요. 우리가 죽인 사람한테 우리도 미안해해야죠.”
명절마다 실향민들이 제사를 지내는 망배단에서 남경우(왼쪽에서 둘째)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임연구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남 연구원이 기회가 되면 ‘파주 북한군 묘지’도 찾아가 보라고 추천했어요. “전쟁 때 죽은 북한군들을 묻어준 공동묘지 같은 곳인데, 전쟁하면서 적군의 묘지를 만들어주는 국가는 거의 없거든요. 전 그런 걸 보면 우리는 그래도 화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찾는 곳도 있습니다. 임진각에 있는 망배단은 명절마다 실향민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1985년 9월에 실향민들의 요구로 만들어졌어요. “이쪽이 북한과 가까우니까 임진강 너머 북한을 바라보면서 울고 제사 지내고 그랬던 거죠. 여러분, 내가 잠깐 어디 갔는데 갑자기 지금까지 같이 있던 사람이랑 평생 못 만나게 된다는 게 어떤 감정일까요. 얼마나 슬프겠어요. 그분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에요.”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임진각 표지판과 철조망.

소중 학생기자단이 DMZ를 직접 찾아 그곳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며 새롭게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깝지만 먼 DMZ를 방문하며 직접 보고 느끼는 계기를 마련하는 건 어떨까요. DMZ가 남북의 평화와 소통의 중심지가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망원경을 통해 북쪽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을 거예요.

남경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임연구원 미니 인터뷰
혜원: DMZ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나요.
직접 방문해서 보고 느끼는 걸 추천해요. DMZ에서 완전히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땅이 아닌 곳은 오늘 둘러본 것처럼 관광지로 쓰여요, 제3땅굴·도라전망대 같은 곳도 관광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해서 둘러볼 수 있어요.

서준: 파주 외에 다른 DMZ 접경지역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또 다른 DMZ접경지역 여행지로 추천하는 곳은 철원입니다. 철원평야 대부분이 민통선 내에 위치하죠. DMZ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풍경의 관광지들이 많고, 동시에 전쟁의 상처와 흔적을 가진 유적들도 상당수 있어요. 아름다운 관광지를 관광한 후 소이산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철원평야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평야와는 전혀 다른 감성을 전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관광을 오지만 이곳이 DMZ이며 분단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찾아온 사람들 대부분 이곳이 분단의 한복판임을 감지합니다. 민통선 출입초소나 노동당사, 수많은 대전자 방지건설물 등이 그런 분위기를 명확히 알려주죠. 관광명소와 분단 현실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 철원입니다. 그 모든 곳을 동시에, 그리고 한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소이산 전망대죠.
남경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임연구원

혜원: 통일인문학연구단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에서 만든 연구 집단이에요. 사람들이 점점 통일을 해야 될 필요성도 잘 못 느끼고 정치적·경제적으로만 통일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때 죽었던 사람들의 고통, 그리고 지금 고향을 못 가는 사람들의 고통이 더 크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걸 우린 기억해야 하고 그걸 기억하기 때문에 안 아프게 하기 위해서는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죠. 저는 분단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아프다고 생각하고, 통일이라는 걸 얘기할 때는 사람들의 아픔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생각하는 학문이 인문학이에요. 그래서 통일을 인문학적으로 생각한다 해서 통일인문학이라는 연구단이고 그 연구회 팀에 제가 합류한 거죠. 계기는 옛날에 공부 처음 시작할 때 한국전쟁을 겪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러 다녔었어요. 어떤 할머니가 전쟁통에 아이 둘을 잃고 직접 땅에 묻어준 얘기를 하면서 막 우시는 걸 봤거든요. 그게 너무 마음에 남았어요. 저는 통일을 얘기하기보다는 분단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연구를 많이 해요.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가 아프고 왜 아프며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고 이런 걸 생각하는 일을 많이 해요.

하은: 통일을 할 때의 장단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통일이 아니더라도 분단을 넘어서는 것 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통일은 그 분단을 극복하는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모르게 불편해 왔던 혹은 아프던 것들이 좀 사라질 수 있는 있으니까 좋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동안은 경제적인 성장을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충격들이 좀 약할 수 있게 준비를 많이 해야겠죠. 근데 제일 걱정되는 건 분단을 넘어선다고 그랬을 때 지금 여러분 북한 사람이랑 만나면 이야기 잘될 것 같나요. 언어 다르다고 그러죠. 매년 북한 학자들 만나서 학술대회 하는데 대화가 잘돼요. 휴대폰을 손전화, 아이스크림은 얼음 보숭이 이렇게 얘기한다고 하는 데 아니에요. 우리랑 똑같이 써요. 대신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으니까 먼저 만나서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싸웠잖아요. 70년 동안 싸우고 있다가 갑자기 친해지는 게 쉽겠어요. 먼저 남북 주민들끼리 소통하면서 오해나 아픔을 삭이고 푼 다음에 서로를 이해하고 통일을 해야지, 안 그러면 갈등이 되게 심해질 거예요.

하은: 많은 사람들이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아파요. 그런데 서로 아픈 걸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한테 잘못을 했다면 내가 누구에게 피해를 받았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런 입장이면 사람들끼리 잘 안 싸우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DMZ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자연 생명의 보고, 아니면 무섭거나 왜곡되게만 생각해요. 실제로 와보면 여러 가지 모습이 동시에 있죠. 그러니까 내 눈으로 직접 봐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게 통일 방법에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해요.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서준·권혜원·정하은(왼쪽부터) 학생기자가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살아 숨 쉬는 DMZ와 접경지역을 방문해 그곳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며 새롭게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번 취재는 한마디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처음에 DMZ에 방문한다고 했을 때는 남들이 경험하기 힘든 곳에 가본다는 것에만 집중했었어요. 하지만 많은 장소를 방문하고, 연구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 태도에 반성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저는 DMZ에서 방문한 장소 중에서도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가 인상 깊었어요. 북한에 방문하기 위해 걸쳐야 할 절차들을 자세히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실제 남한과 북한 사이를 연결했었던 도라산역은 기차만 있으면 갈 수 있는 북한에 갈 수 없다는 것을 통해 분단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여러분도 가족과 꼭 DMZ에 방문해 봤으면 좋겠어요.
- 권혜원(서울 당서초 6) 학생기자

통일대교에 들어갈 때부터 군인들이 나와 검문해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무사히 안으로 들어갔죠. 제3땅굴에서는 다이너마이트를 넣는 장전공이 흥미로웠어요.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 갔는데, 여기서는 출입‘국’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죠. ‘국’이란 서로 다른 나라임을 의미하므로 북한과 남한이 한민족임을 고려한 거예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북한군이 폭파한 것이 아니고 연합군이 폭파한 거라는 것도 알았어요. 6·25전쟁은 남한만의 피해가 아닌, 북한의 피해이기도 한 전쟁이었기에, 우리가 당한 일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취재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이서준(경기도 평촌초 6) 학생기자

취재 장소가 민간인통제구역·비무장지역에 위치해 더욱 특별했던 것 같아요. 여러 장소를 다니며 6·25 전쟁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죠. 덕분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해 나가야 할 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장소가 존재하는 이유가 분단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던 연구원님의 말씀은 제가 분단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셨죠. 또한 분단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과 우리가 분단으로 입은 피해가 사라지려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소중 독자 여러분도 DMZ 투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 정하은(서울 당현초 6) 학생기자

동행취재= 권혜원(서울 당서초 6)· 이서준(경기도 평촌초 6)· 정하은(서울 당현초 6) 학생기자, 자료=『DMZ 접경지역 기행 7: 파주』(경인문화사), 한국관광공사



한은정(han.eu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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