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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새 원전 짓는다…2038년까지 3기, SMR도 1기

지난 5월7일 부산 기장군의 고리원전 1호기. 가동정지 7년 만에 원전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뉴스1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탈(脫) 원전’ 정책 폐기에 나선 가운데, 원전 3기를 새로 짓는 청사진이 나왔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는 31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초안을 발표했다. 전기본이란, 전기사업법에 따라 안정(安定)적인 중장기(향후 15년간) 전력 수급을 위해 정부가 2년마다 수립하는 행정계획이다. 이날 대학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초안을 내놓은 것이고, 앞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후엔 공청회,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다.

이번 전기본 초안엔 2038년까지 원전 3기를 짓는 내용이 담겼다. 2015년 7차 전기본에 원전 2기(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이래 9년 만에 신규 원전 계획을 세울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 안팎에선 새 원전 부지로 울산 울주군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또한 2036년까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도입하는 안도 포함됐다. SMR은 원전보다 안전(安全)성 등이 높아 차세대 원전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SMR 도입 계획이 전기본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만일 초안 그대로 실현된다면 2038년 국내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SMR을 제외하고 33기까지 늘어날 수 있다.

원전을 새로 짓자는 제안이 나온 이유는 급증하고 있는 전력 수요를 현재 발전 설비로 감당하기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기본에선 2038년 최대 전력 수요가 129.3GW로 지난해 최대치인 98.3GW보다 30% 넘게 증가한다고 관측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들어서고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수가 많이 늘어나는 등의 사정에 근거한 판단이다. 여러 발전원 가운데 원전을 선택한 건 세계적인 탄소 저감 흐름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값이 싼 데다 전력 공급이 안정적이어서다.



앞서 문 정부 때는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원전을 배제하고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신에너지+재생에너지)를 확대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전력 수요를 커버하려 했다. 그러나 4계절이 뚜렷해 기후 변화가 심한 국내에선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건 불가능하고 발전 비용이 원전보다 3~5배가량 비싸다는 등의 단점이 컸다. 신재생에너지가 비싼 건 전력망을 촘촘히 깔아야 해서다. 이런 이유로 현 정부 들어선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두루 확대하는 ‘친(親)원전’ 기조를 2022년 10차 전기본부터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추세를 유지할 발판이 마련된 모양새다.
지나 5월23일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따. 연합뉴스

다만 직전 전기본과 비교하면 이번 전기본 초안에선 원전의 힘을 조금 빼고 신재생에너지로 넘겨줬다. 2030년 원전 비중을 32.4%에서 31.8%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1.6%로 유지하자는 제안이다. 지난해 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재생에너지를 3배 확대하자”고 합의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야당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29일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전기본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2030년 이후 2038년까지는 원전 비중을 31.8%에서 35.6%로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는 21.6%에서 32.9%로 올리자는 게 전기본 초안에 포함됐다. 이 안이 실현되면 한국은 무탄소 에너지 70%의 시대를 열게 된다. 지난해 수치는 39%에 그쳤다. 원전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아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무탄소 전원으로 분류된다.

이날 전기본 초안에는 2035년 원전·신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 간 경쟁 입찰시장을 도입하는 안도 있었다.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최적의 발전원을 선택하도록 하고 발전원 간 기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전기본 총괄위를 이끈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기본 실현을 위해 전력망을 적기에 확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높이는 국가기간전력망확충 특별법이 지난해 10월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는데도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정 교수는 “(5월30일 개원한) 22대 국회에선 초반에 반드시 전력망 특별법뿐만 아니라 해상풍력보급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이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신재생에너지의 일종인 해상풍력 발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할 목적이다.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은 현재 ‘화장실 없는 아파트’ 신세인 원전을 위해 고준위방폐물처리장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두 특별법 역시 21대 국회에서 끝내 통과에 실패했다.
김영옥 기자

“친원전 정책 유지에 힘 실어…SMR 수출에 탄력”
이번 전기본 초안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현 정부가 집권 초에 예고한 대로 특정 에너지원(원전)을 무리하게 배제하는 대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같이 늘리겠다는 방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건 경제 주체들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SMR 도입안을 넣은 데 대한 호평도 있다.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국내에 SMR이 도입되면 국내 기업의 SMR 연구개발(R&D)과 수출 등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SMR을 개발하면서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경희대 교수)은 “민생을 포기한 초안 같다”고 했다. 전기 요금 인상 압력을 낮추려면 비싼 신재생에너지보다 값싼 원전 비중을 더욱 늘렸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현재 전력 소매상인 한국전력공사는 장기간 ‘두붓값이 콩값보다 싼’ 역마진 구조로 전기를 공급하다 누적적자가 약 43조원에 달하는 등의 재무 위기에 빠져 있어 올해 하반기 이후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기료 인상 압력은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 회장은 “신규 원전을 3기가 아니라 10기 이상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도 신재생에너지의 ‘비용’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또 “새 원전을 3기 늘리는 안의 경우 부지를 어디로 하고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포함한 방법론이 빠져 있어 아쉽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근본적으로 국가가 나서 전력 수급 계획을 짜는 건 세계에서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며 “이제는 전기본 제도를 폐지하고 시장에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시민 사회에선 원전 반대 성향의 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다. 신재생에너지를 더욱 늘렸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녹색연합은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40%였고 독일은 2023년 50%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이번 전기본의 신재생에너지 목표(2030년 21.6%)가 어떤 수준인지를 말해준다”고 비판했다. 에너지기후행동은 “전력 수요 전망이 잔뜩 부풀려졌다”며 “이는 결국 핵 발전 확대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에 토대가 될 뿐”이라고 밝혔다.



김민중(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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