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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종부세 완화와 초저출생 대책이 만날 때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당 지도부에서 종부세 완화에 대한 공감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화제다. 박찬대 원내대표, 고민정 최고위원, 이해식 수석대변인 등이 관련 발언을 이어갔고, 강경 입장이던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일단 한 걸음 양보한 모양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의제를 주도하지 못하고 야당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정점식 정책위의장의 발언을 통해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환영한다는 스탠스를 취했다.


민주당이 갑자기 이런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이유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의식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많다. 문재인 정부 잘못된 종부세 정책의 대표적 피해 지역인 한강벨트 7개 자치구를 적으로 돌리고선 지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따지자고 들면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의심해야 할 이유는 많다. 당장 이재명 대표의 브랜드인 ‘기본사회 5대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본소득으로 시작한 그의 ‘기본 시리즈’는 이제 기본소득과 기본주택을 포함해 5개로 늘어난 상태이고, 22대 국회에서 우선 추진하겠다고 지금도 홍보하는 중이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사적 노후대책
복지도 낮은데 세금까지 높아서야
집 가진 노인이 복지 의존 줄이면
미래세대 세금부담 감소에도 도움

기본소득 하나만 주장할 때에도 그 재원으로 국토보유세 신설을 내세웠는데, 이는 쉽게 말해 상위 10퍼센트의 아파트가 깔고 앉은 땅에 세금을 매겨 전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얘기다. 이런 정책에 대한 재고 없이 종부세를 완화하겠다면 집에 대한 세금은 깎아주고 그 밑에 있는 땅에 대한 세금은 신설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들이 서로 물려 있다고 해서 개선을 위한 시도를 못 할 이유는 없다. 진정성 있게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고민한다면 얼마든지 박수를 쳐줄 수도 있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의 5대 핵심 과제 중 “저출생은 모든 과제가 다 연결되어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의 종부세 완화와 윤 대통령의 저출생 대책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재정의 관점에서 볼 때 저출생 문제의 핵심은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들고 세금 혜택 받아야 할 사람은 늘어난다는 것이다. 세수는 늘어나야 하는데 인구변동의 방향은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부자들에게 더 걷어야 한다’는 단세포적인 발상은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 문재인 정부 5년의 교훈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서울 집값만 두 배로 올려놓았을 뿐, 부동산 관련 세금 OECD 1위인 현실에서 더 이상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두 정책의 연결 지점은 이것이다. 모든 정책은 다른 정책들과 맞물려서 영향을 주고받게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집값과 관련된 정책은 두 종류가 있고, 관련 정책들은 조세부담율, 복지지출, 가계부채이다. 북유럽처럼 세금을 많이 내고 복지혜택이 많은 나라들은 노후 걱정이 없고 따라서 비싼 집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무상 혜택이 많고 목돈 대출 받을 일도 없으니 부채도 적다. 고세율, 고복지, 저부채, 낮은 집값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반면 과거의 한국처럼 세금이 적은 편이고 복지혜택도 적은 나라들은 노후 대책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비교적 고가의 부동산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 한 채를 마련해놓고 비로소 안심한다. 저세율, 저복지, 고부채, 높은 집값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정책 실패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이 맞물림 고리를 무시한 채 집값만 끌어내리려 했다는 점이다. 집값이 낮아져도 노후 걱정이 없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복지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는데 집값만 끌어내린다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노후대책을 빼앗아가는 일이 되어버린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과거에는 낮은 편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OECD 평균에 근접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은 보편증세의 결과가 아니라 소득 및 자산 상위계층에 대한 집중적이고 징벌적인 과세의 결과였고, 이제는 더 이상 올릴 공간이 없게 되어버렸다. 한국과 같은 시스템에서 집은 국민들이 애써 마련해놓은 노후대책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숨겨진 복지국가’라고 부른다. 저복지 국가에서 개인들이 사적으로 만들어놓은 대책을 국가가 무리하게 빼앗으려 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무리하고 징벌적인 세금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집을 가진 노인은 복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노후를 해결하니 초저출생 국가에서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종부세 완화 움직임과 윤석열 대통령의 저출생 위기 인식은 뜻밖에도 좋은 정책조합이 될 수 있다. 용어조차 권위적인 영수회담(우두머리끼리의 만남)만 자꾸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근사한 협치가 아니겠는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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