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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성취 따른 보상이 공정하다고? 그저 운이 좋았을 뿐 [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이 필요한 이유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의사
내 책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에서도 고백했듯이, 나는 거의 30년 전 연세대 의과대학에 꼴등으로 합격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합격증을 받았다. 기막히게 운이 좋았다. 뒷문을 닫고 들어갔지만 대학에서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받았다. ‘왜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아픈 걸까?’ 고민하던 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공중보건의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경제학 공부를 위해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성공의 8할은 국가·부모 덕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당연해

저소득층 저성취는 환경 탓 커
숨겨진 능력 꽃피울 기회 줘야

사회적 약자, 그냥 불운했을 뿐
모두를 위해 약자와 함께 가야



능력과 노력만으로 성취?

선망의 대상이던 미국 컬럼비아대는 세계 각국의 최우수 대학교 학부 과정의 최상위권 학생들이 입학한다. 내 학점은 그들보다 낮았다. 그런데 그해 컬럼비아대에 한국인 교수가 부임해 박사과정 입학을 주관했다. 그는 한국 의과대학의 입학 성적이 높으니 내 의대 학점이 좀 낮아도 뛰어난 학생일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내 인생은 한 번 더 바뀌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아이비리그 대학인 코넬대 교수로 채용됐다. 지원자 수백 명 중에 최종 후보자 4명을 선발해 사흘에 걸쳐 압박 면접을 한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순간들, 너무 긴장해서 먹은 것을 호텔 방에 토했던 일이 추억으로 남았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내가 교수로 낙점된 데는 사실 지도교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내가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던 때, 안식년을 얻어 코넬대에 초빙교수로 가 있었다. 그때 코넬대에서 내 지도교수를 채용하려 했는데, 그는 본인 대신 나를 강력히 추천했다.

내 커리어는 이렇게 행운의 연속이었다. 또 중요한 순간에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다. 물론 나는 경제학자로서 능력도 있는 편이고,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나만큼 능력 있고, 노력하는 경제학자는 많다. 내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내 성취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능력과 성취에 따라 보상해야 하고, 그것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성공은 개인의 노력에 따른 정당한 결과이고, 실패는 개인의 무능력과 노력 부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인생 성취의 대부분은 주어진 것

차준홍 기자
놀랍게도 우리 성취의 대부분이 주어진 것, 즉 운이다. 태어나면서 처음 만나는 운은 ‘어디서 태어났는가’다. 세계은행 출신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ć)는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였다. 태어난 나라의 평균소득과 불평등지수만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 소득의 최소 50%를 예측할 수 있다.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나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운 좋은 사람들이다.

다음으로 만나는 운은 부모다. 부모는 유전·환경 두 요소를 모두 제공하므로 이 둘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경제학자들은 입양된 아이들과 친자녀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다트머스 대학의 브루스 새서도트(Bruce Sacerdote)가 홀트아동복지재단을 통해 미국에 입양된 대한민국 아이들을 연구했다(Sacerdote, 2007). 입양자녀는 부모에게 환경만을 제공받고, 친자녀는 유전과 환경을 모두 받는다. 이 점을 이용해 유전만의 효과를 밝혀 보았다. 그는 유전이 소득의 약 3분의 1을 설명한다고 결론짓는다.

태어난 나라와 부모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 성취에 나라가 50%, 유전이 30% 이상을 차지하니 “인생 성취의 8할이 운이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럼 나머지 20%는 우리의 노력인가? 그런데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힘조차도 사실 상당 부분 타고나며, 부모에 의해 길러진다. 그리고 내 커리어에서 보듯, 다양한 행운과 불행이 인생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리 인생 성취를 결정하는 것의 대부분은 우리 통제 영역 밖에 있다.

코넬대의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교수는 『성공과 운(Succe ss and Luck)』이라는 책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 부작용이 크다. 자기 성취가 스스로 이룬 것이라 믿을수록 세금 납부에 더 적대적이다.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을 운이 나쁘기보다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들을 돕는 일에도 소극적이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성취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런 믿음은 타당하지 않다. 오늘의 내가 될 수 있던 것은 8할 이상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 덕분이다. 그렇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이 미리 정해진다. 국민의 성취도 많은 부분을 국가가 결정한다. 가령, ‘풍요로운 잘사는 국가’ 하나만으로도 국민 성취의 절반이 보장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운이라면 승자 독식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부모를 잘못 만난 불운, 살아가며 만난 이런저런 불운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또 골고루 나누어지지 못한 운을 좀 더 골고루 나누는 것 또한 중요한 국가의 역할이라 하겠다.

저소득층 혁신가 발굴이 국가 몫

우리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에 숨겨진 아인슈타인, 즉 혁신가들이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24년 2월 8일 자 ‘김현철의 퍼스펙티브 : 질문하라, 비판하라 똑똑한 문제아가 사회 발전시킨다’에서 최근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라즈 체티(Raj Chetty)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Bell et al. 2019). 혁신적 발명가 120만명의 삶을 추적해보니 대부분 중산층 이상 출신이다. 소득 수준 하위 50% 이하의 가정에서 발명가는 1000명 중 1명 미만이지만, 상위 1%에선 그 확률이 10배도 넘었다. 그런데 이러한 격차는 타고난 능력 차이보다는 환경 차이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가령 초등학교 시절 수학 시험 점수가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가정 형편에 따라 발명가가 될 확률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어린 시절 혁신에 노출되었다면 중요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잃어버린 혁신가’가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소득층은 자녀들이 능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부모가 이미 충분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개인의 힘으로는 꽃피울 수 없었던 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 사회에 기여하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즉, 저소득층을 돕는 것은 시혜의 차원을 넘어 이들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게 돕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편이다.

양질의 영유아 교육, 범죄예방에 효과

마지막 이유는 약자와 함께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만(James Heckman)은 사람을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연구했다. 그는 인지 기능(Cognitive ability)과 더불어 그동안 우리가 소홀했던 사회성, 자존감, 자신감, 참을성(끈기), 성실성, 개방성, 정서적 안정 등과 같은 비인지 기능(Noncognitive ability)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래픽은 인지 기능과 비인지 기능에 따른 임금 수준을 보여준다.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다. ①은 인지 기능과 소득의 관계를, ②는 비인지 기능과 소득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인지 및 비인지 기능이 좋을수록 소득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 그래프의 기울기가 비슷하다. 즉 인생 성취에서 인지 능력만큼이나 비인지 기능이 중요하다(Heckman, Stixrud, and Urzua, 2006).

그런데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범죄자들의 비인지 기능은 대체로 낮은 편이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가 많다. 경제학은 임신 기간을 포함한 5살 미만 어린 시절 환경이 매우 중요함을 밝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가장 중요한 경로다(Heckman, Pinto, and Savelyev, 2013). 그리고 양질의 영유아 조기교육 프로그램은 불우한 가정 아이들의 비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미래 범죄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가 있다.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폐지 줍는 노인들, 장애인, 재난을 당한 사람들, 북한 이탈 주민, 저개발국가의 아이들 등 다양한 모습이다. 이들의 어려움은 대부분이 나라를 잘 못 만나고,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사회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았음도 아니다. 그저 불운했던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의 함께 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다. 이들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끔 돕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참고문헌
Milanovic, Branko (2015). “Global Inequality of Opportunity: How Much of Our Income Is Determined by Where We Liv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97.2: 452-460.
Bell, Alex, Raj Chetty, Xavier Jaravel, Neviana Petkova, and John Van Reenen. "Who becomes an inventor in America? The importance of exposure to innovation."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34, no. 2 (2019): 647-713.
Heckman, James, Rodrigo Pinto, and Peter Savelyev(2013). “Under-standing The Mechanisms Through Which an Influential Early Childhood Program Boosted Adult Outcomes.” American Economic Review 103.6: 2052-2086.
Heckman, James J., Jora Stixrud, and Sergio Urzua(2006). “The Effects of Cognitive and Noncognitive Abilities on Labor Market Outcomes and Social Behavior.” Journal of Labor Economics 24.3: 41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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