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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이 가스 18% 더 썼다?…에너지 바우처의 역설

지난달 14일 서울 용산구 한 건물에 가스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정부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가스요금을 월간 기준으로 최대 68만여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최근 가스 소비 관련 통계를 받아 들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 동절기(12~3월) 기초수급자 등을 포함하는 취약계층 약 176만 가구의 월평균 가스 소비량(4699MJ)이 일반 가구(3976MJ)보다 18% 넘게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고소득층일수록 에너지 소비가 많다는 기존 상식과 어긋난다. 고소득층일수록 더 큰 주택에서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스·전기 등의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할 가능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유럽환경정책연구소(IEEP)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는 매년 1인당 70t의 탄소를 배출하지만, 하위 50%는 1t가량에 그친다.

산자부는 혹시 취약계층에 대한 가스요금 지원이 과도해 과소비를 유도한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23년 초 ‘난방비 대란’이 일어나자 취약계층에 대한 가스요금 지원을 대폭 늘렸다. 가스비를 직접 깎아주거나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구당 매월 최대 68만여원을 지원받게 한 것이다. 산자부가 집계한 총 지원액은 1000억원 수준에서 5000억원가량으로 약 5배가 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취약계층 가구가 월마다 최대로 지원받을 수 있는 상한인 68만여원은 실제 소비 금액과 비교해 6배를 넘는다. 취약계층 가구의 지난 동절기 월평균 소비량인 4699MJ에 현재 단위당 가스요금인 23.5원/MJ을 곱하면 약 11만원에 그친다. 취약계층 가구 중 상당수가 동절기 가스요금 전액을 지원받고도 지원 여력이 남아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취약계층 가구에 ‘가스는 필요한 양보다 더 써도 공짜’라는 신호를 주고 가스 과소비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과소비를 막기 위해선 전액 지원을 피하고 조금이라도 일부 부담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취약계층이 가스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일반 가구의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반 가구 입장에선 과도한 지원액만큼 가스 요금과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무 위기에 빠진 가스공사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올해 하반기 이후 가스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13조5000억원에 달한다. 가스공사 회계에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미수금은 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업 손실이다. 만일 미수금을 영업손실 처리했다면 가스공사는 자본잠식 상태일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취약계층 가구가 지나친 지원 탓에 과소비하는 것으로 단정할 순 없다는 게 산자부의 시각이다. 강경택 산자부 가스산업과장은 “취약계층일수록 주택 단열 성능이 떨어져 가스를 더 많이 쓸 수도 있다”며 “지원 제도를 손볼지 결정하기 위해 정확한 실태 파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원 규모를 조정할지와 더불어 취약계층의 주택 단열 성능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민 전반에 대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습관을 갖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스 요금 지원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조언(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나온다. 현행 제도는 가스공사를 통해 직접 요금 감면을 해주고 한국에너지공단을 통해 에너지바우처를 제공하는 구조인데, 관리 주체가 흩어져 있다 보니 적정 지원 수준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허 교수는 “에너지바우처 제도 하나로 일원화해 취약계층이 수요 변화에 따라 유연성 있게 다양한 에너지원을 골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중(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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