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우왕좌왕하는 정부 정책과 세종의 실사구시 정신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4/05/29/1df6fe99-796c-451c-aa26-aa47ae7b84a2.jpg)
![성태윤 정책실장이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구 정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 실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 대책 발표로 국민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뉴스1](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4/05/29/db31d9ac-91e9-4773-b3da-b5bc4b5cae05.jpg)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과학 발전, 국경 강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경제적으로도 조선의 조세제도와 농업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남겼다. 건국 이후 조선은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기반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다. 한 해 농사 작황을 현지에 나가 조사해 등급을 정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조정해 주는 제도였다. 그러나 재량권을 가진 관리의 부정부패 폐단이 드러났고, 수확량을 평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 결과 오히려 가난한 농민들이 부자들에 비해 세금을 과도하게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세종은 가난한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공법(貢法)’을 새롭게 만들어 시행했다. 공법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른 등급과 농사의 풍흉에 따른 등급을 구분 적용하여 세금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제도다. 세율 등 과세요건이 법으로 정해져서 일선 관리들의 재량권이 대폭 축소되었고, 실제 수확 상황에 따라 공평한 과세가 이루어졌다.
![세종대왕은 조세제도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남겼다. 세종이 만들어 시행한 ‘공법(貢法)’은 세율 등 과세요건이 법으로 정해져서 실제 수확 상황에 따라 공평한 과세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진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연합뉴스](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4/05/29/3b22bded-e7b0-481c-a36e-d9705b2d1645.jpg)
공법은 후대에 훌륭한 제도로 평가받았지만, 당시에는 시행되기까지 많은 신하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특히 황희 정승은 세종 10년부터 공법이 완성될 때까지 시종일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종은 황희와 공법을 15년간 논의했고, 실시하기 전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1430년 3월부터 5개월간 전국에 걸쳐 진행된 조선 역사상 최대의 국민투표였다. 투표 결과 17만여 명의 백성이 참여해 9만8000여 명이 찬성했다. 그 후에도 세종은 지방 단위에서 공법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문제점을 찾고 토론하여 보완하는 등 수차례 개정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시범운영 과정을 거쳐 공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기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세종의 현명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조선에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전해진 중국 농서가 있었다. 그 책은 주로 중국 화북지방의 밭농사 영농법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기후와 토질은 조선의 현실과 맞지 않았고 조선의 농업 생산량은 매우 적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세종이 만든 것이 한국 최초의 농서 『농사직설(農事直說)』이다. 세종은 나이 많은 농민의 농사 지식이 풍부하다고 생각하여 각 지역의 농사 경험이 많은 농사꾼들에게서 검증된 영농기법을 수집했다.
![세종 때 제작된 우리 최초의 실용 농학서 『농사직설』. 각 지역의 농사 경험이 많은 농사꾼들에게서 검증된 영농기법을 수집하여 제작되었다. 중앙포토](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4/05/29/9e625f66-b3a2-43e1-9f60-f2587cc03f63.jpg)
공법은 시행까지 매우 신중하고 꼼꼼한 검증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조선왕조 500년 조세제도의 기틀이 되었다. 수확량이 4배로 늘어난 세종의 농업정책도 정책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증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모든 새로운 정책은 실제로 효과적일지 철저히 검토한 후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퇴임까지 앞으로 남은 3년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실사구시 정신을 본받아 정책 개발 및 결정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하기 바란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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