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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주의 시선] '헛된 희망'을 위한 변명

임종주 정치에디터
“소풍 가자”(은심), “그만하면, 마 잘 살았다”(금순, 2024 영화 '소풍' 중).

영화는 80대 고령에 파킨슨병을 앓는 은심(나문희 분)과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망가져 대소변 가리기도 어려워진 금순(김영옥 분) 두 친구의 ‘세상 소풍’ 이야기를 통해 존엄사라는 묵직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초고령화시대 사회적 고민을 잘 녹여내면서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34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영화 '소풍'은 어릴적 고향 단짝 친구이자, 사돈 지간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존엄사는 절망 속 희망 존속의 문제와 맞닿는다. 파국이 뻔해 보일지라도 희망의 끈은 절대 놓지 말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희망의 노예 상태에서 탈출해 인생 나들이의 마지막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처사일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딜레마 같은 물음이 꼬리를 문다. 몇 해 전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영국 아기 ‘찰리 가드’ 사례는 후자에 힘을 실어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찰리는 2016년 8월 미토콘드리아 퇴행성 신경질환이라는 희소병을 안고 태어났다. 뇌 손상이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연명 치료 중단을 권유했다. 그러나 부모는 대서양 건너 미국 병원의 실험적 시술이라도 받아보겠다며 거부했다. 영국 법원은 고통만 연장될 뿐 찰리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찰리는 이듬해 7월 27일 호스피스 시설로 옮겨졌고, 그다음 날 11개월의 짧디짧은 이승의 삶을 마감했다.

2017년 희소병 연명 치료 중단으로 11개월 짧은 생을 마감한 영국 아기 찰리 가드. 연합뉴스

찰리의 이야기는 얼마 뒤 미국 국립보건원 등을 통해 공개된 논문에서 ‘희망이 언제 헛된 것일 수 있는지’를 의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주요 사례로 제시됐다. '헛된 희망 현상’을 희망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효능의 부작용으로 간주한 논문은 “헛된 희망이야말로 복지의 감소, 개인·사회적 이익 침해, 의료에 대한 신뢰 약화 등 무수한 해악을 수반한다”며 잘못된 희망을 퍼뜨리거나 그에 동조하는 비과학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환기한다. “말기 환자 소생술, 무익한 치료 등 환자나 가족의 비현실적인 요구에 의료진이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헛된 희망에 따른 해악’이라는 피해를 유발한다”(2020, 『헛된 희망과 의학의 충돌』).

넉 달 전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로 묘사해 관심을 끈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튜버 마크 맨슨은 ‘엉망진창인 세상사에서 벗어나려면 희망을 버려라’라는 도발적 이슈를 제기했다. 과도한 희망을 상정해 놓고 ‘행여 이루지 못할까’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지 말고, 헛된 희망이라는 환상을 걷어내라는 것이다. “희망은 파괴적이다. 희망은 현재 상태를 거부하는 것에 의존한다”(2019, 『희망 버리기 기술』). 과욕·과신으로 작심삼일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헛된 희망 증후군’에 대한 처방인 셈이다.

헛된 희망의 정의와 기준부터 따지고 들어가면 논쟁이 한도 끝도 없을 터지만, 흔히 생물로 비유되는 정치에 그 프리즘을 갖다 대면 어떨까. 다소 뚱딴지같은 자문에 다다른 건 내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의 앞날을 그려보면서다. 국민의 대표가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설 때는 민초들의 기대와 바람이 뒤따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희망보다는 불신과 우려의 시선이 더 많아 보인다. 여야 협치 가능성에 76.7%가 “못할 것이다”라며 부정적으로 답했다는 여론조사도 있다(9일, 데일리안).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총투표수 294명중 가 179, 부 111로 찬성표 3분의 2를 얻지 못해 최종 부결됐다. 국회의장이 정회를 선포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실제 직전 21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다. 거대 야당은 시종일관 입법 폭주와 탄핵 힘자랑을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여당은 번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10차례)로 맞서면서 정쟁과 대결을 불사했다. 정치 실종·정치 혐오는 고착화의 늪에 빠졌다. 거대 야당과 소수 여당의 대결적 구도가 그대로 재연될 판국이니 희망을 갖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웃픈 현실이다.

정쟁과 대결로 얼룩진 21대 국회
내일 개원 차기 국회도 우려 팽배
높은 총선 투표율, 희망·변화의 싹

그러나, 정치는 의학이나 과학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영역이다. 복잡다단하고 다층적인 현대사회 갈등 구조 속에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건 다름 아닌 정치의 몫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운명, 후대의 삶과도 직결된다. 희망 포기에 따른 비용을 ‘나 하나쯤은⋯’이라는 안이한 계산법으로 막아내기엔 감당 불가다. 절망의 골이 깊고, 희망의 빛이 당장은 비치지 않는다고 해도 마지막 기대의 끈을 놓아선 안 되는 이유다. 그 희망은 정치의 주인인 유권자의 참여와 견제, 감시를 전제로 비로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32년만에 최고치(67%)를 기록한 22대 총선 투표율은 ‘헛된 희망’을 ‘진짜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싹이다.



임종주(lim.jongju@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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