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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엿장수 맘대로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다녀야 했던 골목길이 갑자기 공터를 만나는 곳이 있었다.  
 
집안에 벼슬을 하셨던 조상이 있었을 커다란 한옥 대문 앞이었다. 그 기와집 처마 밑을 지키셨던 뽑기 할머니, 여름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던 에펠탑 빙수차, 겨울을 지켜주던 가게 앞 호빵 찜통들이 터줏대감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엿장수도 공터를 채워주던 단골이었다.
 
딸그락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달려가 숟갈 총 부러진 것, 대꼬라지 떨어진 담뱃대, 병이라면 박카스 병까지 몽땅 들고 나왔다. 멀쩡한 양은 냄비를 들고 나온 녀석까지 온통 손수레에 숨겨진 엿을 보려고 까치발을 세웠다. 고사리손들이 가져온 고물을 밀어 넣으면 엿이 되어 나왔다. 그렇게 받자마자 입에 넣고는 없어질세라 하루 종일 오물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가져다 바친(?) 고물들은 참 사연 많은 것들이었다. 전쟁의 포화를 견뎌냈던 숟가락, 심지어 일제를 지나온 양은 냄비도 있었으리라. 닿고 깨어지고 부러지고 구멍 나버린 쓸모없고 모자랐던 고물들. 다 가져가면 달콤한 엿이 되었다.
 
마치 수고하고 무거운 우리들 인생을 가져 가면 달콤한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처럼 말이다. 꼬리를 물다 보니 불경하게도 예수님이 엿장수가 되셨다. 하지만, 목수셨는데 엿장수면 또 어떠하리. 우리를 향해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시며 우리의 모든 험한 인생을 받아주시고, 달콤한 주님의 은혜를 주신 분이니 말이다.
 
가끔 고물로도 쳐줄 수 없는 것을 들고 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 쓸데없는 천 쪼가리를 가져와 그저 엿과 엿장수 얼굴만 바라보는 쑥 들어간 간절한 눈을 엿장수는 외면하지 않았다. 대팻날을 세워 헐렁한 가위로 엿을 쳤다. 그것도 우리에게는 짧은 한가락이었는데 긴 두 가락짜리로 말이다. 철없던 우리는 왜 얘는 더 많이 주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 녀석들아, 엿장수 맘대로다"
 
요즘은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을 엿장수 맘대로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만난 엿장수는 배를 곯던 퀭한 눈에 맘대로 엿을 주던 아저씨였다. 주님을 만난 이들은 고물조차 못 되는 인생을 엿으로 바꿔 먹은 사람들이다. 달콤하고 살살 녹는 주님의 사랑을 오늘 아니 평생 그리고 영원히 오물거리는 사람들이다.  
 
뭐라도 사라지면 엿 바꿔 먹었느냐고 묻곤 한다. 우리들도 이 땅에서 사라지는 날이 온다. 그날 말하리.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엿으로 몽땅 바꿔 먹었다고.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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